최근 수정 시각 : 2025-02-11 12:01:37

사피예 술탄



사피예 술탄 (Safiye Sultan, 1550년경 ~ 1618년)

1. 개요2. 생애3. 정치적 영향력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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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만 제국의 12번째 술탄인 무라트 3세의 정실부인이자, 13번째 술탄인 메흐메트 3세의 어머니이다. 17세기 초, 아들 메흐메트 3세가 사망한 후 손자 아흐메트 1세가 즉위하면서 1603년부터 1618년까지 섭정 황태후로서 오스만 제국의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2. 생애

사피예 술탄의 정확한 출생지와 본명은 알려져 있지 않다. 베네치아 귀족 출신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1569년, 무라트 3세의 총애를 받으며 후궁으로 궁에 들어왔고, 1574년 메흐메트 3세를 낳아 후일 태후가 되었다. 무라트 3세 사후 아들 메흐메트 3세가 즉위하자 1595년 1월 17일에 쉴레이만 1세의 아내 휘렘 술탄 이후 약 50년 만에 발리데 술탄, 즉 황태후가 되었다. 아들의 짧은 재위 기간 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정치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1603년 아들 메흐메트 3세가 사망하자 손자인 아흐메트 1세가 즉위하여 1618년까지 섭정 황태후가 되었다. 1618년 아흐메트 1세가 죽고, 사피예의 딸의 남편인 다마트 됴르트뤼 메흐메트 파샤가 대재상에 오르면서 다시 권력을 잡았다. 그러나 얼마 못 가 1618년 사촌 동생인 무스타파 1세가 옹립되며 권력을 잃고, 이스탄불의 구 궁전인 에스키 사라이로 쫓겨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3. 정치적 영향력

사피예 술탄은 오스만 제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여성 통치자 중 한 명로 손꼽힌다. 1595년부터 1618년까지 23년간 실질적인 국정을 운영하며,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임명하고 정적들을 제거하는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또한, 외국과의 외교 관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베네치아 공화국과 프랑스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사치스러운 생활과 부정부패를 조장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4. 가족 관계

남편: 무라트 3세
아들: 메흐메트 3세
손자: 아흐메트 1세
딸: 아이셰 술탄, 파트마 술탄, 미흐리마 술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