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남군 사람으로 월기교위, 노국의 상을 지냈고 공자를 모시기 위해 공묘의 제사를 성대히 지냈으며, 장사 이겸과 함께 이를 신청해 허가받은 것을 설명한 것과 건립의 유래와 제사를 성대하게 지내어 관리들의 공적을 칭찬한 것이 새겨진 비석을 세웠다.
본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거의 없으나, 이 때 세운 사신비는 예서의 전형으로 서예 역사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공묘에서 세워진 것이라서 을영비, 예기비와 함께도 공묘삼비로 언급되기도 한다.
사신비는 하나의 비석을 앞면이 169년, 후면이 168년에 새겨서 각자 쓴 시기는 다르지만, 글씨를 적은 사람은 같다. 당시 채옹이 서예로 유명하기 때문인지 한대의 다른 비석들처럼 사신이 세운 비석의 글씨를 적은 사람은 채옹이라는 설이 있지만 근거는 없다. 여기에 적힌 글씨에 대해 왕수의 허주제발에는 한대 예서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사신으로부터 시작해 바른 방향을 잡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