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주 광한군 면죽현 사람으로 모시에 통달하고 삼례를 익혔으며, 검소하고 청결해 이익이나 명예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군의 공조를 지내 매우 착하면서 격식에 법도가 있었다. 주에서 종사로 벽소되었다가 상서좌선랑으로 승진했다가 비서랑으로 옮겼다.
당시 촉나라의 주 서좌는 군의 공조와 함께 철거로 선발했으며, 종사와 태랑은 비서랑과 동격이었으므로 특별히 여러 차례 찰거를 시행해 사마승지는 조정의 요직에 있었지만 귀향했다. 경요 말에는 군에서 깨끗하다고 해서 효렴으로 뽑혔다.
통일 후에는 양주자사의 벽소로 별가종사가 되었으며, 수재로 천거되었다가 광도령, 신번령을 지냈고 정치를 하는 것은 뛰어났고 산기시랑으로 부름을 받아 종실의 예로 대우받았다. 병을 핑계로 관직을 떠났다가 한가태수에 임명되었지만 사자들이 끊임없이 와도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으며, 한적하게 살면서 깨끗하고 겸손했다.
세상 사람들은 도덕을 닦지 않고 작위와 봉록을 얻는 것에만 급급하지만 자신의 명예의 여분을 받는 것만이라도 충분하다고 했으며, 고향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에는 경건함을 중시했고 65세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