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裨王. 고조선의 관직 중 하나.2. 상세
비왕이 정확히 어떠한 직책이었는지는 불명이나 고대 동아시아에서 裨/卑의 호칭이 붙은 관직은 원래 직위에 버금가는 대우를 해주는 관직을 의미[1][2]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비왕은 군주보다는 낮고 승상/영의정/재상 같은 최고위 관직보다는 높은 관직, 즉 군주에 버금가는 관직이었거나[3] 고조선 왕에게 소속된 제후왕의 지위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노태돈 교수의 경우 비왕 직책이 흉노에서도 사용되었는데 흉노의 비왕은 각 왕들의 분봉지 내의 부족장 정도의 성격으로 이해되는 것과 섭하를 호송해준 비왕 장의 사례에서 비왕이 무관과 관련된 관직으로 추정된다는 것을 토대로 비왕을 왕 아래의 상(相)의 통제를 받는 읍락의 족장으로 보았고, 평시에는 자신의 읍락을 통치하다 유사시에 소속 읍락원들을 이끌고 전쟁에 참전하는 장수로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4]
이를 종합하면 고조선의 지방 행정은 왕(국가) > 상(자치 집단) > 비왕(읍락) 구조로 운영되고, 읍락의 비왕들은 상의 지배를 받고, 여러 상들은 왕의 지배를 받는 누층적인 지배구조에 속했을 것이라고 노태돈 교수는 분석했다.
3. 여담
[1] 실제로 중국 장군관직 중에 비장군이 제일 낮은 장군직이었으며 비장군은 오늘날의 군대 부사관에 해당될 정도로 하위직 군인이었다.[2] 현대에서는 준(準)을 많이 사용하는데 군대 계급의 준위는 정식 장교는 아니나 장교 대우를 받는 부사관으로 해석된다. 반면 원스타라 불리는 준장의 경우 장성급 장교에 버금간다는 것이 아닌 장성급 장교임을 비준해준다는 의미라 엄연히 장성급 장교에 속한다.[3] 비슷하게 고구려에서 연개소문이 역임한 대막리지와 신라 내부에서 오직 김유신 혼자만 역임했다는 태대각간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4] 기록에서 섭하는 비왕 장을 살해한 뒤 한무제에게 조선의 장수를 죽였다고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