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요안니스 콤니노스 (영어:John Komnenos, 그리스어: ωάννης Κομνηνὸς) |
별칭 | 비만자 (영어: the Fat, 그리스어: ὁ παχύς) |
출생 | 미상 |
사망 | 1201년 7월 31일 |
직위 | 황족 |
반란 대상 | 알렉시오스 3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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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앙겔로스 왕조의 반란자. 알렉시오스 3세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당했다.2. 생애
알렉시오스 악수흐와 마리아 콤니니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요안니스 2세 시대의 핵심 장성으로서 무수한 전공을 거둔 요안니스 악수흐의 아들 알렉시오스 악수흐이며, 어머니는 요안니스 2세 황제의 장남이자 공동 황제였던 알렉시오스 콤니노스의 딸 마리아 콤니니다. 그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지만, 불가리아 제2제국과 투르크족의 연이은 침략으로 알렉시오스 3세에 대한 민심이 좋지 않게 흘러가면서, 그를 황위 후계자로 눈여겨보는 이들이 늘어났다. 음모를 주도한 이는 수도자 요안니스 카마테로스로 기록되었지만, 일각에서는 알렉시오스 두카스 무르주플로스가 배후에 있으리라고 본다.1201년 7월 31일, 요안니스 카마테로스 수도자를 비롯한 음모가들이 아야 소피아에 모여들어 요안니스 콤니노스를 황제로 선포하고 황관을 씌웠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시민들은 이에 호응하여 여러 교회에 불을 질렀고, 뒤이어 궁전을 향해 행진했다. 그들은 칼케 대문을 거쳐 히포드룸에 진입한 뒤, 그곳에 배치된 마케도니아 경비병들을 물리치고 궁전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궁전의 서쪽 구역을 차지한 그는 황좌에 앉았으나, 몸무게가 너무 나가는 바람에 황좌가 부서졌다고 한다. 그의 지지자들은 건물을 마음껏 약탈하고 파로스 성모 교회로 쳐들어갔지만 니콜라스 메사리테스가 이끄는 군대에게 격퇴되었다.
그러다 밤이 찾아오자, 군중은 다음날 약탈을 재개하고자 히포드룸으로 돌아갔다. 알렉시오스 3세는 이 틈을 타 사위 알렉시오스 팔레올로고스에게 칼케 대문 주변에서 버티고 있던 바랑인 친위대와 접촉하게 하였다. 그는 아직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무리를 규합한 뒤, 히포드룸으로 진격하여 반란군을 모조리 격파하고 반란자 요안니스를 잡았다. 그는 즉시 목이 베어져 다음날 아침 포룸에 전시되었다. 그 후 음모에 가담했던 이들은 모조리 학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