괵왕의 태비 부여태비 | 扶餘太妃 | ||
작호 | 괵왕비(虢王妃) ➝ 태비(太妃) | |
성씨 | 부여(扶餘) | |
이름 | 미상[1] | |
증조모 | 증조부 의자왕 증조모 은고부인 | |
조부모 | 조부 부여융 | |
부모 | 부 부여덕장 | |
남편 | 괵왕 이옹(李邕)[2](711년 결혼 / 727년 사별) | |
자식 | 괵왕 이거(李巨) 이승소(李承昭) 이승희(李承曦) 이승준(李承晙) 이승질(李承晊) | |
생몰년도 | 음력 | 690년 ~ 738년 (향년 49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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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증손녀. 아버지는 부여덕장이다. 태비는 최종 책봉명이며, 그녀의 성씨가 부여씨이기 때문에 부여태비로 불리는 것이다. 본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2. 생애
“남국(南國)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 단풍 같았다. 아주 좋은 집에 살았으나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움직여 드러나지 않으니 세상에 드물게 어진 사람이며 덕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같았다.”
부여태비의 묘지명 中
부여태비의 묘지명 中
690년, 부여융의 아들인 부여덕장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711년 당나라 황족 이옹(李邕)의 두번째 부인이 되었고, 719년 이옹이 괵왕으로 책봉되면서 부여태비도 괵왕비로 책봉되었다. 727년 이옹이 사망한 후 아들 이거(李巨)가 괵왕이 되면서 731년 태비(왕의 어머니)에 책봉되었다. 괵왕 이거, 이승소(李承昭), 이승희(李承曦), 이승준(李承晙), 이승질(李承晊) 등의 다섯 아들을 두었다.
7년 뒤인 738년, 49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이옹의 묘에 합장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