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2 02:48:13

보량

保良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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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의 인물.

2. 생애

중랑장으로 1010년에 거란이 고려를 침공하면서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켰고, 1011년에 성종이 개경을 침입해 궁궐을 불사르고 퇴각하자 김숙흥과 함께 거란군을 습격해 10,000여 명을 죽였다.

3. 대중매체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에서는 김숙흥의 아버지가 자신의 상관이라 김숙흥과 친한 것으로 나오며, 김숙흥의 무예와 상황판단력이 좋은 것을 보고 그를 별장으로 삼아 기용했다. 최사위가 이끄는 고려군이 거란군을 기습하려 하는 것에 대해 김숙흥과 이야기하며, 최사위의 군사가 기습에 실패해 퇴각하자 귀주성으로 군사들을 들인다.

김숙흥이 정찰을 나가겠다면서 멋대로 자신의 깃발을 들고 가는 군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고 패배한 고려의 군사를 도운 것을 알게 되어 최원신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면서 김숙흥이 처벌받을 것을 우려했으나, 김숙흥을 찾기도 전에 최사위가 먼저 와서 공을 칭찬하고 전시라 평시에는 휘할 수 없는 조치도 취해진다면서 구주부방어사로 임명하겠다고 하자 유야무야되었다.

거란군이 고려에서 철수하면서 안의진에서 김숙흥과 함께 주둔하고 있다가 군사들에게 거란에게 당한 희생을 갚아주고 귀주의 힘을 보여주자고 했으며, 김숙흥과 병력을 나누어서 보량은 군사 3백을 이끌고 산에 매복했다. 자신이 매복한 곳 근처에 거란군이 숙영하는 것을 확인했지만 겨울비 때문에 화공을 할 수 없어서 움직이지 않다가 거란군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철수했으며, 비가 그치자 다시 산에 매복했다.

새벽에 거란군이 출발하기 위해 움직이자 갈대밭에 불을 질렀고 비가 와서 습기 때문에 불길보다는 연기가 많았지만 적들의 대열이 혼란에 빠지자 화살을 날려 거란군을 추격해 공격했으며, 거란군이 불길이 잦아든 곳에 도달해 반격하려 하자 안의진으로 철수했고 보량보다 앞 지점에서 매복한 김숙흥의 군사가 거란군을 공격해 거란의 선봉대를 섬멸할 수 있었다.

거란군을 추격하기 위해 양규와 합류하면서 김숙흥이 귀주의 군사들이 매복하는 것을 시험해 채굉이 분노하자 보량은 상관이 된 김숙흥을 욕보인다며 칼을 뽑아 들고 소리쳤다. 양규가 나타나서 채굉이 구주부방어사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면서 김숙흥에게 방어사인 것을 잊었다며 아량으로 이해해달라고 하면서도 자신에게 눈짓을 보내자 상관 앞에서 허락 없이 무기를 빼든 군법에 어긋난 행동을 한 것을 깨달았기에 양규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양규의 군사와 함께 배나무고개 남쪽 근처까지 거란군을 추격하다가 귀주의 군사들이 지쳤다는 것을 양규에게 이야기하고 등장이 끝나지만, 거란의 포로로 잡혀있는 염가칭이 진소곤이 하공진에게 도순검사와 구주라고 적힌 깃발을 내밀고 물어보면서 전원 전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통해 보량도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김숙흥이 흥화진을 도와 맞서야 하는 주장에 대해 성을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기로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며 항명하는 김숙흥과 대립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자세한 것은 보량(고려 거란 전쟁)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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