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2:14:01

벨 거너스

<colbgcolor=#000><colcolor=#fff> 벨 거너스
Belle Gunness
파일:Belle Gunness.jpg
본명 벨라 페울스다테르
Bella Paulsdatter
or
브린힐 페울스다테르 스퇴르세트
Brynhild Paulsdatter Størseth
출생 1859년 11월 11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 쇠르트뢰넬라그 주 셀부[1]
사망 1908년 4월 28일 (?)[2]
미국 인디애나 주 러포트시
국적 파일:노르웨이 국기(1844).svg.png 스웨덴-노르웨이 연합 왕국령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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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3cm, 91kg
혈통 노르웨이계 미국인
범죄 정보
기간 1884년 ~ 1908년
피해자 최소 14명

1. 개요2. 생애
2.1. 초기 생애2.2. 보험금을 노린 살인행각2.3. 사망?
3. 여담4.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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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웨이계 미국인 여성 연쇄살인마. 미국의 여자판 푸른 수염이라는 별칭도 있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1859년에 노르웨이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브륀힐드 페울스다테르 스퇴르세트(Brynhild Paulsdatter Størseth)였지만 1881년 미국으로 이민하면서 미국식 이름 벨(Belle)을 사용하였다.

고국에서 17세까지 살았던 브륀힐드에 대해서는 당시 이웃들도 별로 기억하는 바가 없었고 살인마로 유명해진 후에야 어릴 때부터 사이코패스적인 소녀였다는 신빙성 없는 기억들이 갑자기 쏟아졌다. 그녀의 과거는 확실하지 않지만 미국으로 건너와 벨라, 벨 등 미국식 이름으로 개명한 그녀는 일찍부터 돈에 굉장한 집착을 보였고 1884년 시카고에서 같은 노르웨이 이민자인 마스 디틀레브 소런슨(Mads Ditlev Anton Sorenson 1854-1900)과 만나 결혼했는데 그는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그와 함께 사는 이유는 돈 밖에 없다고 공공연히 떠들었고 1886년에는 과자가게를 냈으나 영업은 신통치 않았다. 이듬해 가게와 집이 원인불명의 화재로 불타 버리자 보험금을 받아 새 집을 마련하였다.

일부 연구자들은 벨-마스 부부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다고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 대부분은 1남 3녀를 낳았다고 본다. 사실 벨이 갑자기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놀란 이웃들이 절대 어젯밤 출산한 산모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서 어디선가 아이를 몰래 입양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친자식이 몇 명이었고 누가 누구 자식인지의 여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특기할 점은 벨은 혼전부터 유난히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친언니 넬리의 딸을 달라고 졸라 대 짜증난 언니와 싸우고 연락하지 않았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벨은 근처에 살던 앤턴 앤슨 부부의 딸 제니 올슨을 갓난아기 때 입양했는데 위독했던 올슨 부인이 제니를 맡기고 죽은 후 벨은 아이를 데려가 키웠고 올슨은 제니를 만날 땐 아이가 깨끗한 옷을 입고 행복하게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재혼한 생부가 제니를 되찾으려 했지만 양육권 싸움에서 이긴 벨은 제니를 데리고 떠나 버렸다. 그리고 제니는........

2.2. 보험금을 노린 살인행각

1896년에 딸 한 명, 1898년에 아들 한 명이 급성 대장염으로 영아가 사망했다고 하는데 실은 독살되지 않았는가 의심받는다. 구토, 발열, 설사, 아랫배 통증 등 증상이 스트리크닌(strychnine)[3] 중독 증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벨은 이번에도 보험금을 모두 받았다. 남편 마스도 1900년에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는데 어떤 의사는 혹시 스트리크닌 중독이 아닌가 의심했지만 소런슨 집안의 주치의는 심장비대증에 맞춰 처방하였다. 벨이 남편에게 도움이 되라고 약을 복용시켰다고 했는데, 이 때문인지 부검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마스가 죽은 날은 마스 이름으로 가입된 생명보험들의 유효기간이 겹치는 단 하루였다. 그가 하루만 일찍 죽었다면 다른 보험금은 못 받았겠지만 남편이 딱 때맞춰 죽어 준 덕분에 보험회사는 마스의 장례식 다음날 보험금 8,500달러(오늘날 24만 달러 상당)를 모두 벨에게 지급하였다. 남편 마스 소런슨의 가족들이 살인을 의심하여 조사를 요청했지만 조사는 되지 않은 듯하다 벨의 범행을 발각되지 않았다.

1901년 벨은 인디애나주 러포트(LaPorte)시에 새 집을 구입하여 남은 딸들을 데리고 이사하였는데 여기서 노르웨이 이민자 피터 거너스(Peter Gunness 1872-1902)와 만나 1902년 4월 1일 재혼하였다. 피터는 정육업자이자 홀아비였다. 둘 다 재혼이라 피터에게도 자식이 세 명 있었는데 그 중 아직 영아인 막내딸 제니가 식을 올리고 1주일 뒤에 원인불명의 이유로 죽었으며 피터마저 바로 결혼한 그해 12월 16일에 죽었다. 벨은 피터가 부엌 선반에 있는 고기 가는 기계가 그만 머리 위로 떨어져 죽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살인이었는데 심지어 자식들에게 숨길 생각도 없었던 듯하다. 다섯 살 난 딸 머틀이 학교 친구에게 "엄마가 아빠를 죽였어. 고기 써는 칼로 공격하니까 아빠가 죽었단 말이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딸이 보는 앞에서 아빠를 살해한 것이다. 아무튼 피터가 죽은 덕분에 벨은 3천달러에서 혹은 4천달러(오늘날 7만 달러 상당)를 얻었다.

이듬해 6월 벨은 아들 필립 거너스를 낳았으며 보험금으로 농장을 샀다. 한편 피터의 장녀 스완힐(Swanhild)의 삼촌 거스트[4]는 형의 죽음이나 보험금 상속 여부를 따지다가 벨에게서 영 좋지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그날 밤 묵어간다고 둘러대고 한밤 중 조카딸을 들고 튀었다. 그들이 없어진 것을 아침에 알았지만 벨은 딱히 찾을 생각도 없었던 것 같고 그 덕분에 아이는 벨의 마수를 피해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과 함께 천수를 누려 1961년에 64세로 숨을 거두었다.

피터가 죽고 나서 벨은 1903년에 농장을 마련하여 1906년까지 혼자 운영하면서 신문에 광고를 내 구혼자들을 모집하였는데 광고를 보고 남자들이 편지를 보내면 벨은 후보자를 골라 답장하였다. 벨은 자기를 찾아오려는 남자들에게 '돈을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도 말고' 농장으로 찾아오라고 일렀다. 이 광고를 보고 남자들 십수 명(또는 수십 명)이 찾아갔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분명히 살해는 했는데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일부는 농장에 묻고 일부는 조각내 농장에서 키우는 돼지에게 먹였다고 추측된다.

1906년부터 벨은 이웃들에게 10대가 된 양녀 제니 올슨이 LA에 있는 루터교 재단 학교에 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살해당하여 농장 어딘가에 묻힌 뒤였다. 한밤중에 말도 없이 사라진 제니를 찾아온 썸남에게는 네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하지 않는다고 둘러댔고 소년이 결혼한 건 형이고 자신이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벨은 제니가 결혼했다느니 허니문 중이라고 둘러대기만 했다. 유언장에는 재산의 기부처나 분배가 적혀 있었지만 제니에게는 왜인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서 편지로 연락을 지속하던 제니의 언니는 의아해했지만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죽였기 때문에 남겨줄 필요가 없었다.

1907년 벨은 농장에서 허드렛일을 할 일꾼 레이 램피어(Ray Lamphere)라는 남자를 고용했다. 레이는 그만 사랑에 빠져 벨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온갖 끔찍한 일이라도 다 한 듯하며 벨과 관계를 맺은 다른 남자들을 질투하였다.

그해 12월 앤드루 헬겔리언(Andrew Helgelien)이란 사람이 벨의 광고를 보고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은 뒤 기뻐하며 벨의 농장에 갔다. 이후 러포트 은행에서 두 사람이 나타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한 뒤 앤드루는 실종되었다. 그러나 앤드루의 동생 애슬 헬겔리언(Asle Helgelien)은 벨에게 편지를 보내 도대체 자기 형이 왜 안 돌아오느냐고 물었다. 애슬은 형이 벨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벨은 애슬에게 형은 자기 농장에 없으며 아마 노르웨이에 간 것 같다고 답장했지만 애슬은 그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언이 러포트에서 목격되었고 자기는 형이 러포트에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벨은 자기가 수색작업을 도와줄 수 있지만 실종자를 찾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므로 돈을 챙겨 오라고 뻔뻔하게 답했다. 애슬은 1908년 4월까지 찾아가지 않았는데 벨을 강하게 의심한 듯하다.

애슬의 편지에 비록 벨이 뻔뻔하게 답하긴 했지만 벨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듯하다. 이 때문인지 램피어는 1908년 1월부터 벨과 관계가 틀어져 2월에 해고당했다. 벨은 러포트 지방법원에 레이가 제정신이 아니고 공공에 위협에 되는 인물이며, 해고당한 뒤 자길 찾아와 위협하고 말다툼을 벌였다고 주장했으며 변호사를 만나 램피어가 자길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다고 하며 공증서를 남겼다.

2.3. 사망?

1908년 4월 28일 아침에 벨의 농장에서 불이 나서 주변을 태웠다. 경찰들은 화재현장에서 벨의 세 자식들(전남편 마스와 낳은 딸 2명, 피터와 낳은 아들 필립)의 시신과 머리 없는 성인 여자의 시신을 발견하였다. 자식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머틀 소런슨(Myrtle Sorenson)조차 고작 11살이었다.[5] 경찰들은 처음에는 가련한 과부가 혼자 아이들을 키우다가 살해당한 줄 알았고 아이들을 구하려고 분투했던 불쌍한 과부로 알려졌으나 며칠 뒤에 애슬 헬겔리언이 찾아오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애슬은 자기 형이 벨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이 말을 듣고 불타버린 농장을 조사해 보니 돼지우리 자리에서 시신 11구가 발견되었다. 발견된 시신 중에는 벨이 LA에 있는 학교에 갔다고 둘러대었던 제니도 있었다. 벨이 평생 동안 사람을 얼마나 죽였는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17명, 최대로는 40명 정도로 잡는다.

벨이 변호사를 만나 작성한 서류도 있어 유력한 용의자로 램피어가 체포되었으나 방화 혐의만 나왔을 뿐 살인은 증명되지 않았다. 램피어는 방화 혐의만 유죄로 인정되어 감옥에 수감되었으나 1909년에 죽었는데 임종하는 자리에서 벨이 거짓으로 죽음을 위장했다고 고백했다. 램피어에 따르면 벨이 자기를 부르더니 함께 밖에 나가서 시카고에서 가정부 한 명을 고용하여 데리고 와 죽이고 머리를 잘랐다고 한다. 벨의 자식들도 다 죽이고 머리 잘린 시체를 옆에 놔두고 불을 질러 증거를 은폐한 뒤 벨은 도피하고 자기는 이렇게 잡혔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들은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 없는 시신이 벨이라고 판단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도 과연 그 시신이 벨이 맞는지 의문이 있다. 벨이 죽은 지(?) 100년이 되는 2008년에 벨이라고 생각된 머리 없는 시신을 꺼내 DNA 검사를 실시하였으나 샘플이 너무 오래되어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부정확했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여자가 혼자 저질렀다기에는 너무 잔혹하게 토막나있고 엄청나게 저항한 흔적 그대로 묻혔다. 거구의 벨은 몸집이 작은 남자 정도는 혼자 충분히 해치울 수 있었지만 도저히 여자 혼자 했다고 믿기 힘들어서 공범 여부나 해부학 전문가의 짓이라고 의심받기도 했다. 희생자 중에는 외지에 가있다던 양녀 제니가 있었다. 여섯 토막 난 그녀가 발견된 날은 18세 생일인 5월 5일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벨과 생년이 비슷하고 역시 남자를 독살하다가 체포된 살인자 에스터 칼슨(Esther Carlson)이 벨이라고 주장한다. 벨이 돈을 들고 도피하여 에스터 칼슨이라는 가명으로 살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또 남자를 독살하다가 체포되었다는 것이다. 에스터는 1931년 오거스트 린드스트럼(August Lindstrom)이라는 남자를 독살한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된 중에 병사하였다. 에스터가 벨이라는 말은 에스터가 잡힌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벨을 만난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부터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에스터가 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벨을 만났던 사람들도 에스터의 사진을 보고 벨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다.

이 사건으로 러포트는 '거너스빌'로 순식간에 명성을 떨쳤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은 거너스 집터에서 가지를 꺾어 기념품으로 삼거나 주민들도 "거기 남자들 다 죽은 거 아니었음ㅋㅋ?" 같은 인사를 받았으며 기차 여행 중 티켓에서 지명을 읽고 슬며시 도망가서 접근도 안 한 승무원도 있었다고 한다.

3. 여담

소설가 박민규는 벨을 매력적인 여성으로 Axt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현 시점에도 여성 치고는 엄청나게 크고 19세기 중반 기준으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거구로 신장은 183cm, 체중은 91kg이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 유럽~북미 남성들 평균 키가 167cm 정도[6]였음을 고려하면 덩치로 보면 현대 남성급의 거구였던 셈이다. 참고로 21세기 노르웨이인 여성의 평균 신장이 167cm이다.

영화 배드 시드가 벨의 이야기를 차용해 만들어졌다는 후일담이 있다. 자식들마저 차례로 죽인 사이코패스 살인마 베시 덴커[스포일러]의 피를 이어받은 로다 펜마크가 주변인을 죽이는 내용이다.

4. 더 보기

  • 엄 여인 보험 살인사건 - 보험금을 노려 살인 행각을 벌인 공통점이 있어 한국판 벨 거너스 사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1]노르웨이 트뢰넬라그 주 셀부[2] 벨 거너스의 죽음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남아있으나 벨거너스의 행방에 대한 조사가 현재 진행중이며 아직도 계속 찾고있다.[3] 스트리크닌은 알칼로이드성 독으로 서부개척시대에 쥐약이나 농장을 습격하던 늑대들을 독살하기 위해 많이 유통되었던지라 구하기 쉬웠다.[4] 풀 네임은 Gustav Marthinius "Gust" Gunness. 피터의 3살 연하 동생이다.[5] 피터의 딸 스완힐과 동갑내기다.[6] 계층에 따른 신장 차이가 지금보다 컸음을 감안해야 한다. 상위 계층일수록 커지고 하위 계층일수록 작아진다.[스포일러] 로다 펜마크의 외조모이자 크리스틴 펜마크의 생모다. 크리스틴이 어린 아기였을 때 크리스틴의 오빠를 살해하고 크리스틴도 살해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