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Accidente ferroviario de Benavídez de 19701970년 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어난 열차 충돌 사고.
2. 사고 내용
당시 21량의 화물 + 승객열차 제너럴 바르톨로메 미트레(General Bartolomé Mitre) 철도 소속 급행 에스텔라 델 노르테(Estrella del Norte) 1016번 열차가 승객 260명을 태우고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기관사는 후안 디오즈케즈(Juan Diozkez)였다. 열차는 투쿠만(Tucumán)에서 출발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티로(Retiro)로 향했다.반대편에선 승객 1,090명이 탑승한 객차 8칸, 기관차 2량의 엘 자라테노(El Zarateño) 3832번 여객 열차가 레티로 역에서 출발했다. 기관사는 알프레도 아모로소(Alfredo Amoroso)였다. 열차는 중간에 엔진 내 연료 분사기 문제로 40분 가량 멈췄다. 기존에 약간 늦은거 까지 더해서 48분가량 늦게 됐다.
오후 20시 2분, 3832번 열차가 베나비데즈(Benavídez)역과 제너럴 파체코(General Pacheco)역 사이에서 엔진 문제로 멈춰섰다. 열차 점검하는 사이 다른 열차에게 경고하거나 하는 것을 세워두지 않았다. 밤이라 어두운데다, 그 지역은 마을이 발달하지 않아서 가로등도 없고, 풀밭과 늪지대만 무성해 밤에는 제대로 안보여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거기다 바로 앞에 커브길이 있어 더욱더 안보였다.
앞서 3832번 열차가 정차한것도 모른 채 1016번 열차가 달려갔다. 그러다 80m 앞에서 3832번 열차글 목격하고 급히 브레이크 작동시켰으나 너무 늦었다. 몇몇 승객은 충돌 피할수 없단거 알아채고 열차에서 뛰어내렸다. 오후 8시 15분 경, 1016번 열차는 시속 104km로 3832번 열차와 충돌, 충격으로 폭발 일어나고 두 차량은 탈선했다.
비행기가 인근 지나다가 사고 목격하고 관제탑으로 구조 요청해 인근 공군기지의 헬기가 구급대원들 데리고 먼저 출동했다. 당시 아르헨티나에선 전화가 적었으나 파일럿이 이렇게 신고한 덕에 구조는 빠르게 이뤄졌다. 사고 소리를 들은 마을 주민들도 달려와 도왔다.
파체코(Pacheco)역에 임시 병동 세웠고, 파체코와 베나비데즈역에는 임시 시신 안치소가 생겼다. 인근을 지나던 열차가 급히 와서 열차를 임시 병동으로 사용해 부상자들을 병원과 가까운 역으로 이송했다. 몇몇 사람은 시신에서, 또는 소방차에서 소방관의 새인 물건 훔치기도 했다. 경찰이 출동해 물건을 훔친 절도범 10명을 체포, 군대가 와서 임시 울타리를 치고 현장을 관리해 절도범을 막았다. 사고 후 2일이 지나서야 전체 사망자 수 파악할 수 있었다.
사고로 236명이 사망했고, 500명 이상이 부상입었다. 사고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열차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사고 규모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르헨티나 독재정권 때문에 사고는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 Así라는 주간지에서 사고 현장 사진을 포함해 32페이지 짜리 사고 관련 기사를 냈으나 당시 독재에 의해 검열되기도 했다.2024년 2월 1일, 당시 구조에 참여한 사람들이 참가한 사고 54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