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2 03:12:02

방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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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2. 문제점3. 기타

1. 정의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자행되던 공납 방법의 한가지로, 중앙의 서리나 상인이 공물을 대신 내주고, 해당 군현의 백성들에게서 그 대가로 이익을 붙여 받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이건 불법이다. 방(防) 납(納)의 한자만 봐도(납부를 방해 한다는 뜻) 바로 알 수 있다.

2. 문제점

중앙의 관리나 상인이 백성들에게 비싸게 팔고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고려시대부터 방납은 불법이었으나, 그 이익이 짭짤해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당연히 백성들의 삶은 고달파졌다.

가장 큰 문제는, 멀쩡한 물건도 갖은 이유를 들어 퇴짜놓고(이를 점퇴(點退)라고 한다.) 자신과 결탁한 방납업자에게서 구매할 것을 강제하여 부당이득을 챙기는 수령들이 적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심한 경우에는 강원도 산골의 백성에게 전복이나 상어 지느러미를 진상하라고 하는 식으로 그 지역의 것이 아닌 특산물을 바치라고 하거나, 명령도 내려오지 않았는데 허위로 걷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도 방납업자를 통해 이익을 챙기는 건 덤. 사실 방납의 등장은 본래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 때문이었다. 이런 진상품을, 대상 백성들 대신 마련해 바치고 대가를 받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3. 기타

탐관오리가 방납을 자행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잡채라는 민간학자들의 의견이 존재한다. 조선시대의 잡채는, 왜정때 나온 당면과 간장을 사용한 현대의 잡채가 아니라 궁중요리였으므로,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재료 역시 팔도에서 진상된 온갖 재료를 아울렀는데, 잡채에 들어간 재료를 보면 왕이 지역별 상황을 알 수 있었던 만큼, 탐관오리들은 고을의 사정이 좋은 것처럼 속이려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 물론 주류사학자들은 그냥 민간 속설로만 여기고 있다. 조선의 행정 제도는 요리만으로 왕이 평가할 만큼 허술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