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1:32:11

박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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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관
파일:박윤관 상병.png
출생 1956년
사망 1979년 12월 13일 (향년 23세)
서울특별시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제2묘역-38281호
가족 아버지
어머니 변수남
남동생 박태관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1]
? ~ 1979년
최종 계급 상병[2] (대한민국 육군)
근무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과 헌병[3]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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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 측인 수경사 33헌병대 소속 사병으로 육군참모총장 공관 초소를 지키다가 초소를 탈환하려는 해병대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사망 당시 계급은 일병이었고, 사후 1계급 추서되어 최종계급은 상병이다.

2. 생애

반란군이 우경윤 대령의 지휘 하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뒤 박윤관 일병에게는 육군참모총장 공관 초소를 점령 후 경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명령에 따라 초소를 지키던 박 일병은 12월 13일 새벽 공관 경비 병력인 해병대가 초소를 탈환하려는 과정에서 머리에 총격을 당해 숨졌다.

사후 1계급 추서되어 최종 계급은 상병이 되었다.

사망 당시 가족은 아버지[4], 어머니 변수남씨[5], 남동생 박태관씨 등이 있었다.

시신은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3. 여담

  • 비록 반란군 측으로 활동했지만 사병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것이기 때문에 12.12 군사반란의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다.[6]
  • 반란군 소속 부대에서 활동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12.12 군사반란을 다룬 대중매체에서 등장하거나 언급된 적이 없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는 건 그 또한 신군부 측의 피해자로 보는 것도 적잖아 있다.


[1] 군번 63068102[2] 전사 당시 계급은 일병[3] 현재 군사경찰이다.[4] 아들이 사망하고 나서 화병에 시달리다 2년 후인 1981년 사망했다고 전해진다.[5] 2013년 4월 27일 사망.[6] 일반 사병들은 상황을 알 수 없었고 상관의 명령에 의해 움직였을 뿐이다. 박윤관 상병은 단지 반란군에 가담한 부대 소속이었을 뿐이며 자기가 반란군인지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목숨을 잃은 데다 반란군으로 역사에 영원히 이름이 남게 되었으니 개인과 가족으로서는 억울한 불명예일 것이다. 정선엽 측 유족과 박윤관 측 유족들이 상대방의 묘지에 가서 서로 추모해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세간의 평가도 일반 병들을 함부로 동원한 반란군을 욕한다던지, 징병제의 폐해라고 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