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47:27

박규징

성명 박규징(朴奎徵)
중명(重明)
본관 밀양 박씨
생몰년월일 1879년 3월 13일 ~ 1947년 12월 9일
출신지 평안북도 정주군 마산면 옥야동[1]
사망지 서울특별시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규징은 1879년 3월 13일 평안북도 정주군 마산면 옥야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3월에 정주군에서 양조회사를 경영해 많은 돈을 벌면서 비밀리에 동지 수십명과 회합해 친우회(親友會)를 조직하고 부회장에 취임해 회원을 모집했다.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벌어지기 기미독립선언서가 친우회에 전달되자, 그는 동지들과 회동한 뒤 독립선언문을 복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했다. 이후 3월 31일 정주 시내 장날을 이용해 군중을 동원해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몇 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0년 5월에 상하이로 망명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내의 실태를 파악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며 통신업무를 관장하는 연통제를 실시했을 때 정주군 경감에 임명되어 활동했다. 이후에는 임시정부를 따라가면서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해방 후에는 임정 요인들과 함께 서울로 귀환했다가 1947년 12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박규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박효근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