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특별시 출신 독립운동가, 박경하
성명 | 박경하(朴敬夏) |
생몰 | 1874년 ~ ? |
출생지 | 서울특별시 남문외 연화봉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박경하는 1874년경 서울특별시 남문외 연화봉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음력 9월부터 10월 사이에 기산도, 김석항, 김성초, 송창영, 이근철, 이종대, 박종섭, 안한주와 함께 을사오적을 암살할 계획을 짜고 이민승(李敏承)과 이근택을 암살하기로 했다. 그러나 1906년 2월 16일에 감행된 기산도의 이근택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그는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재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의 생애는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박경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성주군 출신 독립운동가, 박경하
성명 | 박경하(朴京夏) |
생몰 | 1883년 12월 22일 ~ 1929년 9월 26일 |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매수동 |
사망지 | 경상북도 성주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대통령표창 |
박경하는 1883년 12월 22일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매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성주군 장날이 열리자 장터에 참여했다가 송인집(宋寅輯), 이기정(李基定) 등이 주도한 기독교인과 유림의 합동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3천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고, 일본 경찰의 강제 해산 시도에 맞서 밤늦게까지 인근의 산과 시내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석방된 그는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29년 9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경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