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6-29 10:57:00

민영환(성군 순종대왕 일대기)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성군 순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민영환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2. 작중 행적

1881년 성균관 대사성으로 이척의 스승 역을 맡게 된다. 빙의 후 똘똘해진 세자에게 사서오경 따위나 가르쳐야 하는 현실을 착잡하게 여기고, 대화 중 이척이 임오군란을 예견하는 모습을 보이자 감탄해 친아버지 민겸호에게 이를 알리나 무시하는 모습에 정말로 자신의 선대 민씨 척족들이 무능하고 부패함을 인정한다. 강백산의 포부를 듣고 감명을 받아 충성을 맹세하고, 강백산도 민영환을 신뢰하고 있다. 고종의 평에 따르면 원래는 적당히(?) 부패하고 유능한 여흥 민씨 총아였지만 강백산을 만난 뒤 갱생했다고 한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민씨를 다 죽이려는 이하응의 계략에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이척이 자신에게 온 혼수품을 성균관에 보관시키게 한 것을 이용,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효를 지키고 불충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위기를 회피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자신의 행동이 세자의 뜻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서 대신들과 경화사족들에게 세자의 존재를 주목받게 만들기도 했다.[1] 이전까지 가문 빽으로 너무 젊은 나이에 대사성에 올라 민영환을 무시하던 성균관 학도들이 이걸 보고 "그래, 대사성 맞네."라며 그 정치력을 인정하고 민영환을 커버해준 건 덤.

이후 이척의 예상이 하나둘씩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며, 최후의 승자가 청나라라 예상한 후, 지시대로 무엇보다도 귀한 것을 사기 위해 이척의 혼수품을 처분할 준비를 한다. 이 무엇보다 귀한 것은 다름 아니라 명분으로, 고종이 멋대로 비단을 팔아서 도성 쌀값 방어를 할 거라는 걸 예측한 이척의 계획대로, 비단을 고종이 멋대로 손댈 수 있게 대사성 자리를 물러나는 것으로 계획을 실행한다. 이후 이 비단은 돌고 돌아 최익현에게 도달하여, 최익현이 상소를 올리기 위해 지필묵을 준비하게 만든다.

은퇴한 후에 집에서 민겸호가 죽은 것에 대해 부친상을 가지나, 임오경장으로 정치 분위기가 바뀌며 조선 조정의 신하들이 당파를 안 가리고 조문을 오며 정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민영환도 차후 세자가 대권을 잡을 때 민씨 세력의 수장이자 조정의 중심으로서 떠오르고자 하며, 중추원이 개설되자 곧바로 민씨 세력을 향한 대숙청이 진행될 것임을 예감하고 민씨 일족에게 지방에 내려간 민씨들은 모두 수도로 올라올 것이며 뒤가 구린 가산들은 미리 다 팔라고 지시하였다. 원로들은 무시하다가 된통 당했지만 젊은 민씨들은 민영환의 의견을 따라서 대부분 무사했다.

이후 1년상을 치른 뒤 1883년에 조정에 복귀하는데, 원 역사와 달리 보빙사에 다녀오라는 고종의 지시를 받는다. 강백산은 민영환에게 이 시대 미국은 믿을 수 없으니 미 조정에 이권을 넘겨주지 말 것이며, 바둑판에 숨겨놓은 금광 계약서를 영국에게 주고 영국과 프랑스에서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전들을 수집해올 것을 지시한다. 특히 강백산은 법전의 종류별로 구매 국가를 지정해서 민법과 상법은 영국에서, 헌법과 형법은 프랑스에서 수집하라고 지시하는데, 이는 대륙법계와 영미법계의 법률의 특징을 고려한 것이다. 헌법과 형법같이 성문화된 법은 대륙법계의 특징이며, 반대로 영미법은 관습과 판례가 전부로, 모든 법은 관습과 판례에서 파생되는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쌓인 판례로 인해 민법과 상법이 잘 발달되어 있다.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영국과 프랑스에서 보낸 대리인이 운산 금광 입찰을 노리고 경쟁하는 걸 보고 경악하지만, 이내 강백산이 마련해온 계약서를 확인하고 영어도 프랑스어도 모르는 자신이 개입하기보다는 저들이 알아서 합의할 때까지 강백산이 지시한 쇼핑이나 하면서 금광 계약서가 있다는 암시를 주고 영국과 프랑스에서 이면 합의 끝에 마련해온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준다. 일본인 통역관이 중간에 수작 부릴까 봐 중국어 역관을 서로 대동해서 밀어버린 건 덤.

서양 시찰의 경험 때문에 급진개화파가 되지만 김옥균이 1884년 새해부터 다짜고짜 논란을 일으켜 조정 여론을 분열시켜 놓자 임오군란 때 어린 세자가 얼마나 고생해서 여론을 하나로 수렴시켜 놨는데 네가 이럴 수가 있냐고 김옥균을 두들겨팬 뒤 민영익이 세자빈을 통해 "중추원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백산의 조언이 전해지자 총선을 열라는 뜻임을 깨닫고 세자파의 젊은 관료들을 모아 논의한 끝에 동아시아 최초의 근대적 정당인 공민당(公民黨)을 창당한다.

이후 민영익을 제치고 민씨 가문의 차기 수장이자 조정의 중진으로서 활동 중이지만 민영익과의 사이는 괜찮은 편으로, 제헌 가지고 고민하던 민영익에게 강백산이 헌법 제1조 가지고 고민 되면 성종 시대의 기풍을 참고하라는 조언을 건네줘서 민영익이 간접적으로 헌법 제1조에 인민주권을 명시하도록 도와주었다.

청나라와의 전쟁이 임박하자 강백산이 북양군과의 전장이 될 평양으로 가 백성들을 독려하고 향군의 사기를 고취하기 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할 사람을 모집하는데 세자의 스승이 되어서 제자에게 가르친 건 한줌이고 그저 제자로부터 배우기만 했는데 이럴 때라도 스승다운 일을 해야한다고 자청하여 평양으로 간다. 조청전쟁에서는 평양 방어를 맡은 도원수로서 평양부윤 이경직과 함께 이홍장이 직접 지휘하는 북양군 본대에 맞서 평양성을 사수한다.

3. 기타

처음으로 강백산에게 충성을 맹세한 측근이라서 강백산도 스승님이라 부르며 신뢰하고 있다. 작중 묘사를 보면 가문빽과 별개로 본인 자체도 유능한 건 맞다고.


[1] 조선시대에 대놓고 세자의 뜻 운운하는데 그게 거짓말이면 반역죄와 동급의 기군망상죄로 본인을 포함한 삼족멸을 당한다. 이 정도로 대놓고 세자의 뜻 운운한다는 것은 최소한 세자와의 합의가 있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