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문일만(文一萬) |
생몰 | 1904년 11월 9일 ~ 1955년 5월 6일 |
출생지 |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 |
사망지 | 전라북도 옥구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대통령표창 |
문일만은 1904년 11월 9일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10월 2일 옥구군 서수면에서 일본인 지주의 횡포에 대항해 소작인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장태성(張台成)·박상호(朴相浩) 등의 주도로 옥구 농민조합 서수지부(瑞穗支部)가 결성되었을 때 참여했다. 그해 11월 25일 서수면 서수리 소재 주식회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이 소작인들에게 수확량의 75%에 달하는 소작료를 요구하자, 농민조합 지부의 간부들이 나서서 45%로 감액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되었고, 지부장 장태성이 농장의 일본인 지배인을 협박했다는 혐의로 일경에 피체되었다.
장태성이 서수면 임피 경찰관출장소에서 일시 대기하며 군산 경찰서로 압송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한 문일만은 박상호, 김행규, 문일만, 오승천, 신문관, 최봉엽, 이성순, 정연운, 한기석 등과 함께 500명의 농민들을 이끌고 임피 경찰관 출장소를 습격하고 장태성을 구출했다. 이 일로 조합원 80명과 함께 체포된 그는 1927년 2월 29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해 5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구금자 탈취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0개월이 화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옥구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5년 1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문일만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0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