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01 16:23:54

무림맹(용비불패)


1. 개요2. 5대 문파3. 역사
3.1. 구(舊)무림맹(흑백대전~용비불패~대마교전)3.2. 신(新)무림맹(대마교전 이후~고수)
4. 기타

1. 개요

웹툰 고수에서는 용비불패 시절을 구 무림 시절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독자들도 이 방식을 따라 대마교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의 '구(舊)무림', 그 이후의 '신(新)무림'으로 흔히들 구분하여 부르고 그 시기 각각의 정파 무림맹도 자연스레 '구무림맹', '신무림맹'으로 나누어 부르곤 한다.

2. 5대 문파

정파 무림맹 소속 문파들중 가장 큰 중심세력인 5개의 문파로 소림, 개방, 천웅방, 적혈단, 승유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5대 문파'라는 단어는 용비불패 12권에서 현재양의 대사로 처음 등장했는데 "무림맹 소속 5대문파중 하나인 적혈단이..."라고 언급하면서였다. 사실상, 용비불패 연재 당시에 무림맹 소속 5대문파로 확실히 밝혀진 단체는 이때의 적혈단이 유일했다. 그 이외에, 17권에서는 과거 독안룡 고협의 혈사문을 응징하고자 '무림맹 소속 5개 방파의 연합세력'이 총력전을 펼쳤다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5개의 방파가 아마도 5대 문파를 말하는 것이라 강하게 추측되었고, 이후 혈사문의 추종자들을 소탕하는 장면에 천웅방이 있었기 때문에 천웅방 또한 5대 문파중 하나일것이라고 역시 추측되는 정도였다. 또한 용비불패 외전 4권에서는 중원 무학의 본산인 '소림', 그리고 집단세력을 이루는 방파의 뿌리인 '개방'이 무림맹의 양대 축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소림과 개방 또한 5대문파에 포함될 것이라 강하게 추측되었고 당시까지 나머지 하나의 문파는 작중 전혀 묘사된바 없어 추측조차 안 되는 상태였다.
이후에 게임 용비불패M을 통해 5대문파가 확실히 드러나는데 정파 오무제는 대대로 5대문파에서 선출되었다는 설정이 나오며 오무제의 방파가 곧 5대문파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게임에서 새롭게 공개된 오무제 옥수연의 승유문과 함께 역시 각각 오무제가 한명씩 자리하던 상기된 4개의 단체를 합해 용비불패(구무림) 시절의 정파 무림맹 소속 5대문파가 정립되었다.

3. 역사

3.1. 구(舊)무림맹(흑백대전~용비불패~대마교전)

용비불패 시점에서는, 천하를 삼분하던 열두존자 삼존 중 한명인 지존 철혈대제 장륜이 무림맹주로서 무림맹을 이끌고 있다. 소림과 개방이 양대축을 이루는 집단으로,[1] 정파 연맹 단체임에도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것만은 아닌, 다소 사욕과 정치적 음모를 보이기도 하는 단체로 묘사된다.

이 세계관에서 무림맹의 시초는 용비불패 시점으로부터 100년전[2]. 당시 아수라혈교[3]는 총대주교 였던 독고혈후를 중심으로 중원의 패권을 장악하려 했지만, 극단적이고 독선적인 교리 때문에 무림의 공적으로 몰려 정파 연합세력에 의해 궤멸되고, 가까스로 남은 잔당들은 서북쪽 국경근처까지 패주한다. 이것은 이른바 '흑백대전'으로 불리며 정파 무림맹도 그 때 결성되었다.[4] 무림맹의 탄생 자체가 정파 근본인지라 사파와는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묘사된다.[5]

용비불패 시점으로부터 50년전에는 혈사문의 장문인 '독안룡' 고협이 잔인한 방법으로 무림 방파들을 굴복시켜가자 무림맹 소속 5개 방파의 연합세력이 총력전을 펼쳐 이들을 응징했다.

용비불패 시점으로부터 20여년 전에는 중원 최대의 상인 집단 '금천보'의 보주 율목인의 요청에 따라 무림의 안전을 위해 황금성, 뢰신청룡검, 금화경 등에 관한 일을 비밀에 부치고, 율목인을 비호하여 무림인들이 그를 도발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용비불패 시점때는 뢰신청룡검을 노리는 아수라혈교 일부가 중원에 잠입하여 금천보주 율목인을 죽이고 금천보 총단을 궤멸시켰는데, 무림맹은 이에 대응으로 '정공(正攻)이 아닌, 책략(策略)'[6]을 선택하는 실수를 범한다. 공식적으로 사태를 진정시키진 않고 오히려 무림맹조차 뢰신청룡검을 노려, 금화경·무해곡·황금성에 관한 문제가 무림내에서 잔뜩 곪게 놔두었으며, 총감찰로서 파견된 일각을 통해 사태 흐름을 관망하기만 한다.[7] 기회가 오자 총감찰인 일각은 무림맹주의 명을 내세워 상관책에게서 뢰신청룡검을 빼앗으려 했으며, 무림맹 소속 감찰단들은 무해곡에 들어온 모든 이들을 이 사건에 개입한 직·간접적인 용의자로 간주하여 전부 '생포 또는 척살'[8]하고, 뢰신청룡검을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것은 파괴되거나 무해곡에 깊이 묻혀버리고 무림맹은 얻은 것도 없이 관련 방파에 가벼운 징계를 내리는 것으로 사건을 흐지부지 마무리 한다. 다만, 이것은 황금성 사태 당시에 마교가 약 10년뒤 대대적으로 쳐들어올것이라는 예고를 한 뒤라서 굳이 소속 방파에 중징계를 내려 전력을 소진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했다.[9]

상기된 사태 당시, 무림맹의 음모를 얼머나 뻔히 알 수 있었는가 하면 무림 정보에 어둡다는 사흑련 요원들조차 무해곡에 나타난 무림맹 감찰단들을 보고 "금천보가 그꼴이 됐을 땐 뒤에서 미적거리다가, 이제 와서 여긴 왜 나타난거야?", "황금성의 존재가 밝혀질때까지 기다리고 있었거나..." 등으로 수군거리며 정곡을 찌른다. 이 말을 들은 무림맹 감찰단들은 갑자기 흥분하며 전부 칼을 뽑아드는데, 이를 본 사흑련 요원 장룡이 "정곡을 찔린 모양일세"라며 비웃을 정도.[10] 구휘가 말하길 "소위, 정파라고 하는 것들은 언제나 명분 타령에 말만 앞서는 것들"이라고 하는데, 정파 연맹인 무림맹이 금화경 사태를 두고 벌인 행적을 보면 그 말이 아주 틀린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용비불패 외전에서는 탈영 장수 신분인 용비 체포 작전을 지휘중이던 황실의 대장군이 무림맹에 찾아와 협조를 부탁하지만, 정확히 어느쪽 편도 들지 않는 중립을 지킨다. 무림맹 소속 문파들에게 용비를 도와주지 말라는 명만을 내렸을 뿐, 잡으라는 명 또한 내리지 않는 방법으로 대장군의 요청을 거절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협조한 것도 아닌 입장을 유지한 것.[11][12]

용비불패~외전 시점에서 약 10년 후에 마교가 대대적으로 무림에 쳐들어와 대마교전이 벌어지는데, 정파와 사파를 가리지 아니하고 결성된 무림연합은 오랜 싸움 끝에 승리를 거두기는 하나 참전인원의 8할 이상이 희생되고, 살아남은 이들은 다툼에 대한 염증과 죽은 동료들에 대한 애도 등의 이유로 무림에 등을 져, 무림맹은 괴멸된다.

3.2. 신(新)무림맹(대마교전 이후~고수)

용비불패의 시점에서 약 60년 후인 고수에서의 무림맹은 대마교전 당시 후일을 기약하며 참전하지 않았던 군소문파들이 중심이 되어 전쟁 뒤 재결성된 조직이다. 신 무림맹은 빠른 세력 확장을 위해 정사의 경계선에 있던 중립성향의 문파들까지 대거 영입했다고 하는데, 구 무림 시절의 무림맹에 비하면 힘의 수준은 처참할 정도로 약한 것으로 보인다.[13] 아무튼 출범 이후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듯 했으나, 평화는 20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파천신군이 이끄는 남방 세력인 파천문에 정복당해 불과 3년만에 괴멸되기 직전까지 가기도 한다.

파천신군의 (사망을 가장한) 은거 이후에는 암암리에 파천문 사천왕들과의 동맹을 통한 공존을 추구하여 온 것으로 보이는데, 강룡이 사천왕 최약체(...) 막사평을 해치우자 백마곡과 손을 잡고 파천문 잔당들을 일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무림맹을 통해 구 무림의 고수들을 움직이려 마침 찾아온 환사에 의해 이 사실을 들키고 말았고, 이에 부활 파천문이 대 무림연맹전을 개전, 천곡칠살을 내보내 무림맹 소속 주요 문파를 매우 손쉽게 괴멸시켜버린다. 이후 부활 파천문의 문주 혈비가 직접 무림맹 본단을 습격, 무림맹주 '곽염'을 일격에 죽이고 '묵륜마환'을 써서 무림맹 본단에 있는 무림맹 인원을 학살, 무림맹 본단 또한 묵륜마환에 전부 파괴되면서 신 무림맹은 사실상 괴멸당한다. 압도적 위용을 보여주었던 구 무림맹과 비교해보면 실로 처참한 몰락.

옥천비 편 이후 양정학 조장의 언급에서 과거 신 무림맹 창설 초기의 더러운 면이 부각되는데, 대마교전에서 괴멸적 피해를 입은 천웅방의 터를 자기들끼리 "누가 돈을 더 많이 지불했냐?" 식으로 경매하는 등 이권침탈에만 눈이 가 있기에 당시 조력자로 나온 독고룡에게 일갈을 당하나 당시의 신무림맹주[14]는 오히려 자기들은 잘못한 것 없고 대마교전에 참가한 자들을 개무시하는 발언을 하여 독고룡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리게 되면서 이후 자기들의 크나큰 불행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다. 환사의 과거에서도 보면 환사나 송예린 같이 무공을 제외한 환술이나 용안,진법,동물교감 같은 전문가를 천시하고 등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집단.[15]

당연히 해당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혈비에게 개작살난 이유가 따로 있었다면서 희대의 쓰레기 집단이라는 평과 더불어 이런 한심한 집단을 다 청소해버린 부활 파천문의 천곡칠살과 혈비의 평가가 상승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될 정도로 한심한 작태를 보였기에 팬들 사이에서는 동정여론따위 없는 그냥 한심한 꼴로 마무리되었다. 생존자들이 있다고해도 혈비의 부활 파천문과 싸워서 큰 피해없이 이긴 백마곡과 풍진방이 건재한 이상, 과거의 권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거기다 백마곡은 구무림의 적통으로 신선림이 인정하였고 풍진방은 백마곡과 같이 부활 파천문과 아수라혈교로 부터 무림을 지켰기에 백마곡은 사파대표,풍진방은 정파대표로 인정받았다. 어떤 면에서는 파천신군 독고룡이 바라던 무림정화가 이루어진 셈.

4. 기타


[1] 소림이 중원 무학의 본산, 개방이 방파를 이루는 집단 세력의 뿌리라고 한다.[2] 웹툰 고수 기준으로는 약 160년 전[3] 중원 무림인들은 흔히 '마교', '혈교'등으로 부른다.[4] 용비불패 7권에서 묵장로가 언급한다.[5] 무해곡에서 사흑련 요원들과 무림맹 감찰단들이 맞닥뜨렸을 당시, 서로에게 대놓고 적대감을 표시하던 것만 봐도.[6] 이 말은 현재양의 독백으로, 무해곡에 들어선 구휘가 황금성을 목적으로 할까봐 걱정하는 대사였는데, 사실 구휘는 황금성이나 뢰신청룡검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결국 무림맹의 '책략'은 그와는 차원이 다른 총체적인 문제점을 드러낸다.[7] 일각은 중간중간에 부상자를 치료해주고 목적지로 향하는 길에 약간의 도움만 주는 등, 결코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는다.[8] '생포를 원칙으로 하되, 여의치 않으면 척살하라'는 명령인데, 그 상황에서 제한된 감찰단 인원으로 무해곡에 들어선 수많은 사람들을 생포할수는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사실상, 그냥 척살하라는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본인들의 추악한 면을 목격한 이들을 전부 없앰과 동시에, 불순한 이들을 무림맹이 처단했다는 명분까지 가져가겠다는 의도.[9] 지나간 일을 들춰 중징계를 내리기 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다같이 힘써 대비하자는 명분.[10] 본편 22권 참조.[11] 대장군 왈, "그런가...그 정도로 선을 그었단 말이지...내 설명이 부족했다는 뜻인가, 아니면 말귀가 어두운 척 하겠다는건가..."[12] 다만 정파가 방관하는 사이, 사파가 용비를 돕거나 마교가 개입해 그를 포섭할지도 모른다는 현재양의 우려를 받아들여, 용비의 뜻도 떠볼 겸 개방의 용천개를 시켜 용비에게 잠시 근거지를 제공해준다.[13] 당연히 구 무림맹에는 그 시절에 한가락하던 강자들이 죄다 모여서 마교랑 죽을 둥 살둥 전투를 벌이며 이겼지만 그 와중에도 참전 인원의 8할이 죽어나가고 생존한 강자들 역시 여러 이유를 들어 빠져나가서 신 무림맹에 끼지 않았다. 그리고 신 무림맹은 대마교전이 열릴 당시 참전 안 하고 안전한 뒷방에 빠져있던(...) 군소(群小, 규모와 세력이 별볼일없이 하찮은 사물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말) 파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니 그 시기를 겪어는 봤지만 그 시기에 직접 싸워본 자들에 비하면 턱없이 약한 놈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니 그 선부터 질적 하락은 예고된 바였다.[14] 이 시기의 무림맹주는 곽염이 아닌 다른 인물이었다.[15] 아수라혈교와 전쟁에서 많은 문파와 같이 환술사나 동물교감 같은 자들도 죽거나 맥이 끊어져 현재는 황실이나 대장군부에 소속된 집단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