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문 배경
어지러울 정도로 눈부신 슈리마의 태양 아래에는 언제나 예언의 힘이라는 축복을 받은 자들이 존재해 왔다. 그중 한 명인 말자하는 원래 나이 많은 행상인의 외동아들이었고, 부모가 병에 걸려 한꺼번에 사망하는 바람에 뭐가 뭔지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아마크라 시의 길거리에 나앉게 되어서야 자신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음을 깨달았다. 어린 말자하는 점을 쳐주고 받는 동전 한 푼이나 빵조각으로 도시 뒷골목에서의 삶을 이어갔다. 점괘가 잘 맞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말자하의 명성이 올라가자, 자신이 누구와 결혼할지 궁금한 낙타 몰이꾼이나 시장 바닥에서 벌어지는 칼 던지기 놀이에서 칼이 어디에 꽂힐지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얼마 안 가 말자하의 손님들은 저잣거리의 흙이 묻은 더러운 샌들이 아니라 보석 박힌 실내화를 신은 사람들로 바뀌었다. 하지만 예언자로 이름을 떨치면서도, 말자하는 자신의 운명은 내다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미래는 숨겨진 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말자하는 차츰 예언자로서의 삶에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부의 격차가 너무나 당연시됨을 깨닫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악질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였다. 사람들은 절대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고통과 번뇌의 순환에 매여 있고, 더구나 대개는 스스로 그런 상황을 초래했다. 아무리 희망찬 예언으로도 그 고리를 깰 수는 없었다. 말자하의 눈에는 너무나 뻔한 모습이었다. 그는 곧 허무감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예언자로 쌓은 부와 명성을 모두 팽개치고 아마크라를 영원히 떠났다. 말자하는 몇 년 동안이나 길도 없는 사막에서 옛 슈리마의 유적지에 이르기까지 방방곡곡을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한사코 피했고, 결국 자신만의 생각에 깊이 침잠했다. 말자하에게는 사람들이 얼마나 냉혹하며 그 때문에 앞으로 이 세계가 얼마나 타락하게 될지가 눈에 선하게 보였다. 잠들지 않았을 때는 불처럼 뜨거운 환상이 그의 머릿속을 온통 지배하기 시작했고, 전쟁과 불화, 영원한 고통을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전을 괴롭혔다. 이리저리 헤매던 말자하는 이윽고 사막을 벗어나 온통 소금이 깔린 땅에 이르렀다. 그는 몰랐지만, 그곳은 아주 오래전 전쟁으로 유린당하고 역사에서 잊혀진 도시 이케시아였다. 말자하는 그곳에서 피폐해진 심연의 깊디깊은 바닥을 들여다보았다. 환상과 환청에 시달리던 그의 정신은 그 심연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러자 공허가 그에게 답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났겠지만, 말자하는 아니었다. 심연의 어둠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 쇠약해진 예언자의 영혼을 스쳐 지나갔다.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했으나, 그 기이하고 알 수 없는 힘이 말자하의 정신을 완전히 적셔 버렸다. 이윽고 이케시아에서 홀로 성큼성큼 걸어 나온 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말자하는 그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말자하는 일찍이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목격했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그 심연 속에서 끝나 있음을 보았던 것이다. 과거에는 자신의 미래가 숨겨져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 세계를 필연적인 망각으로 인도하는 것,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미래이자 사명이었다. 그는 인간들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신성한 ‘무’의 말씀을 퍼뜨려 그 아무것도 없음이 인간들을 기꺼이 감싸줄 것임을 알려야 했다. 자신의 말을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까지도. 말자하는 세계의 구원을 알리는 전조가 될 것이었다. 말자하는 사막 한가운데의 유목민들을 첫 번째 제자들로 삼았다. 그는 놀란 유목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허가 자신에게 준 힘을 사용하여 대지를 찢어발기고 악몽에나 나올 법한 생명체들을 소환했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나타난 괴물들은 감히 말자하의 능력을 부정하는 자들을 땅밑으로 끌어가 버렸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사막을 오가는 상인들 사이에 기이한 소문이 퍼졌다. 수많은 남녀가 이전에 본 적 없는 힘을 경배하며 스스로를 제물로 바치고, 강력한 지진이 일어나 슈리마의 기반층에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단층이 생겼다는 소문이었다. 몇 년 후, 말자하의 전설은 북부의 항구도시들까지도 퍼져나갔다. “예언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인근 마을 주민들은 그를 만나면 흉흉하기 짝이 없는 환상이 심장 깊숙이 파고든다는 소문에 몸서리를 친다. 공포는 미신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척박한 황무지에서 살아가느라 굳세게 단련된 마을에서조차도 땅밑 공허충들을 진정시킨다며 가축을 제물로 바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런 행동은 말자하가 공허의 목자로서 이 세계를 종말로 이끄는 일을 더욱 가속화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
2. 예언자의 만찬
광신도 무리를 따라 예언자의 천막 도시 밖으로 나온 메이어는 사막 가장자리에 있는 골짜기 밑으로 내려갔다. 이게 옳은 결정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오늘 밤 설교 장소인 툭 튀어나온 바위 너머는... '구멍'이라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슈리마의 모래 밑으로 깊숙이 내려가는 그 구멍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처럼 점점 더 커지는 듯한 텅 빈 공간으로 이어졌다. 이 광신도 무리는 온종일 구멍에 가축을 던져 넣었다. 서로를 던져 넣었다. 가끔 스스로 몸을 던지는 자도 있었다. 듣기로는 구멍이 점점 커지면서 그에 응답한다고 했다. 그럼 더 많은 광신도가 더 많은 동물과 사람을 던져 넣을 수 있었다. 그 끊임없는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거대한 것을 집어삼킬 만큼 구멍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도시를 집어삼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시라미라든가." 메이어가 중얼거렸다. 항구를 포함해 나시라미를 통째로 쓰러뜨린다고 해도 가장자리조차 스치지 않을 것 같았다. 메이어는 앞서 구멍을 슬쩍 확인한 상태였다. 구멍은 비현실적으로 컸다. 하지만... '여기 이런 게 있다는 건 아무도 모르지.' 메이어는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을 적으로 돌리면 위험했다. 사실 '사람'이라는 것도 아주 조심스러운 표현이었다. 그중 일부는 짙은 연보랏빛 안광을 번득였다. 그 빛은 핏줄처럼 뒤틀린 형태로 얼굴 곳곳에 퍼져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계속해서 이케시아... 또는 '공허'라는 것에 대해 중얼거렸다. 고향으로 돌아갈 순 없었다. 아직 고향이 존재하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대지가 잿빛으로 변하고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괴물의 이름을 딴 존재가 바위 사이를 기어 다니는 머나먼 남쪽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메이어는 계속해서 달려야 했다. 멈추는 순간 녹서스에 발각될 것이다. 장교를 공격한 메이어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었다. "예언자를 보러 왔나?" 사람들이 극장 무대와 비슷한 공터로 몰려들자 한 남자가 물어 왔다. 다 해진 망토 밑으로 보이는 남자의 피부가 역겹게 움직였다. 남자의 입속에서 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네." 메이어는 순순히 답했다. 광신도 무리는 그 설교라는 걸 듣지 않으면 자신을 보내 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신입이구먼! 이름 없는 도시를 찾아오는 이들은 많지. 누군가는 예언자를 찾고, 누군가는 아무것도 찾지 않아. 하지만 그 둘은 결국 같은 것이라네." 남자는 밤기운에 어렴풋이 빛나는 그의 얼굴을 가리켰다. "걱정하지 말게, 친구. 곧 이해하게 될 테니. 예언자가 자네에게도 보여 줄 거야." 사람들이 조잡하게 만든 등불 위로 검게 아가리를 벌린 저녁 별들이 전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와 불길하게 깜빡였다. 이 빛 너머에는 사막이 있었다. 그 너머에는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구멍 너머에는 자유가 있었다. 벌써 자유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슈리마는 세 방향에서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북쪽에서는 녹서스가 해안을 따라 암처럼 퍼지며 거대한 도시 국가부터 사람이 몇 명 살지도 않는 농촌 마을까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고대 수도에서는 오래전 죽었다 부활했다는 황제 아지르가 불가피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남동쪽에서는... 여기가 바로 그 남동쪽이었다. 이 사람들이 슈리마를 '갉아먹고' 있었다. 구멍 너머에 틀림없이 무언가 있을 것이다. 이케시아 반도 최남단에서 죽은 듯한 잿빛 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밀수업자들의 항구나 빌지워터에서 오는 어선의 정박지가 나올지도 모른다. 거기서 배를 얻어 타면 바다뱀 군도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도— "그만 생각하게." 얼굴이 일그러진 남자가 위협했다. 고개를 들자 불안정한 빛을 내는 십여 쌍의 눈이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너무 시끄럽잖아. 조용히 하게." 남자가 바위 위를 가리켰다. 그곳은 어느새 한 수척한 사람의 설교단이 되어 있었다. "말자하가 왔어." 예언자는 옛 이케시아의 상징을 투박하게 새긴 스카프와 망토로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맨발이었고, 손은 마치 괴물이라도 막으려는 듯한 모양새로 사후 경직이 일어나 얼어붙은 것처럼 보였다. 얼굴을 긴 보라색 천으로 가린 그의 머리는... 메이어는 머리에 구멍이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언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려는 찰나 예언자의 이마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가늘고 두꺼운 띠로 이루어진 말자하의 머리 안에... 뭔가 '끔찍한 게' 들어 있었다. 빛 속의 빛이 밖으로 고동치며 굶주린 듯 퍼져 나갔다. "나의 아이들아." 말자하의 말은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메이어의 내면을 비추는 투영, 매끄럽고 반짝이며 잘못된 예언자의 빛이 연장된 것이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 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광신도 무리가 주변을 빽빽이 둘러싸고 있었다. 거대한 구멍을 돌아가기도 전에 붙잡혀 구멍으로 내던져지고 말 것이다. "오늘 밤은 고백의 밤이다." 이제 너무 늦었다. 말자하가 메이어를 본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수백 명의 인파 속에서 말자하의 시선이 정확히 꽂히자 메이어는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미약한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 새로운 얼굴이군. 그럼 내가 각성하게 해 주마." 메이어의 내면에 섬광이 번쩍였다. 예언자의 뒤에서 거대한 형체가 나타나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건물... 아니면 건물 '같은' 뭔가가 드넓고 부자연스러운 바다 밑에서 뒤틀린 채 거꾸로 박혀 있었다. 수천 마리의 게걸스러운 생물이 무리를 지어 헤엄쳤다. 어찌나 거대한지 물인 듯 물이 아닌 곳에서 직접 흐름을 만들며 태양이 아닌 것에서 비치는 아른거리는 빛까지 차단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름... 머릿속에서 이름 하나가 곡예사처럼 춤을 추며 떠오를 듯 말 듯 애를 태웠다. "신자들이여." 말자하가 말을 이어 갔다. "난 늘 끝이 다가온다고 얘기해 왔다. 공허가 와서 이 세계와 이 세계에 있는 모든 불행, 그리고 너희 모두를 쓸어 갈 것이다." 메이어는 정신이 갈가리 찢기는 듯했다. 생각이 너무 빠른 속도로 떠올랐다가 사라져 지금 자신이 경험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었다. 날개. 늑대만 한 거미. 슈리마 밑에 떠다니는 형체. 대립. 미친 듯이 밀려드는 괴물 떼가 녹서스를 집어삼키고 기괴하게 금이 간 불멸의 요새가 부서지며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얼음이 깨지며 모든 게 뒤집혔다. 메이어는 다시 말자하를 바라봤다.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형체가 말자하 위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왜 저렇게 큰 것일까, 왜 그녀는— ...그녀? "하지만 우리 모두는 경험을 통해 바뀌기 마련이지. 난 아마크라에서 부모님이 병마에 시달리며 죽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라진 게 아니야. 그들의 존재는 결코 헛되지 않았지. 그들이 내게 남긴 기억은 지금의 날 만들었고, 난 지금의 너희를 만들었으니까." 형체가 더 커졌다. 물리적인 형체는 아니었지만 메이어의 정신은 뭐든 붙잡으려고 필사적이었다. 정신을 다잡아 숨을 조여 오는 예언자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 "공허는 그 기억을 맛봤다. 그리고 더 원하고 있다." 광신도들이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리자 별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깜빡였다. 버텨야 했다. '저 틈만 넘어가면 자유야.' 메이어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물 흐르듯 빠져나갔다. 자신의 앞에는, 모두의 앞에는 말자하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허가 새로운 형태,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였다. 난 한때 세상이 빛도 어둠도 없는 완전한 무의 상태로 끝나는 것을 보았다. 그건 잘못된 것이었지. 나의 아이들아, 그러니 오늘 밤 너희에게 고백하겠다. 공허가 입을 열었다. 이제 그녀는 연보랏빛 바다 밑에서 원하고 있다. 너희와 너희의 기억, 경험, 존재까지. 그녀는 모든 걸 원한다." 메이어는 발밑에서 땅이 흔들리는 걸 느끼고 나서야 달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틈이 갑작스레 확장하며 천막 도시부터 광신도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위로 떠오른 말자하는 모든 게 살아 있는 듯 울렁거리는 무의 세계로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원하는 것을 가지게 될 것이다." 광신도 몇 명이 공중에 그대로 멈췄다. 피부에서 어둡게 빛을 발하는 산호가 피어나더니 곧 물결처럼 흔들리는 구멍의 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이상한 물고기 떼가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그보다 많은 사람을 잡아먹었다. 다른 이들은 비명을 지르더니 갑자기 세상에서 지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메이어가 빠르게 추락할수록 메이어의 기억은 위에 있는 별처럼 하나씩 빛을 잃어 갔다. 녹서스의 침공, 장교를 가격하던 순간, 가족, 친구, 어린 시절, 꿈. 메이어는 흉측하게 살아 있는 공허의 하늘 너머 빛이 아른거리는 무의 세계에서 마구잡이로 튀어나온 뒤집힌 모양의 이상한 건물들을 지나 연보랏빛 바다 밑으로 점점 가라앉았다. 그때 태어나기 직전의 거대한 무언가가 언뜻 보였다. 그 형체는 메이어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는 것과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다. 메이어, 광신도, 동물, 천막 등 모든 게 희미해지며 현실이라는 잔잔한 해안에서 완전히 사라져 새롭고 끔찍한 무언가로 다시 태어나는 동안 그것은 새로운 자양분에 반응하듯 점점 강해졌다. 한때 메이어라고 불린 남자가 모든 것을 비우고 눈을 감았다. 그의 몸이 공허 밑바닥에 닿았다. 그렇게 그는 사라졌다. |
3. 구 배경
슈리마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을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미쳐버렸다. 그러나 광기에 사로잡힌 이들도 이제는 모두 잠들었을 무렵,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비로소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사내의 이름은 말자하, 탁월한 예지력을 지니고 태어난 예언자였다. 아직 능력이 완전히 다듬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가 룬테라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자가 될 것임은 분명해 보였다. 허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밀려드는 운명의 파도를 감지하는 말자하의 남다른 능력은 비단 현세의 인간들만이 아니라 다른 세상, 다른 차원의 존재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잠이 들 때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목소리에 시달렸다. 차원과 차원 사이의 경계가 가장 얇아지는 꿈속에서, 사악한 존재가 말자하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얼마간은 이런 부름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목소리는 더 커지고 깊어지기만 했고, 그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말자하는 홀린 듯 빈 손으로 터벅터벅 사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동쪽, 고대 문헌에 이케시아라고 기록된 잃어버린 도시였다. 문명의 단서가 책 속의 기록밖에 남아있지 않았으므로 이케시아가 정말로 존재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곳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조차도 이케시아가 이미 오래전에 사막의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두 발이 부르터 더 이상 걸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을 때,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은 말자하의 앞에 부스러져가는 기괴한 오벨리스크의 기단석이 나타났다. 그의 시선 너머에는 기괴한 구조의 도시와 풍화작용으로 파손된 사악하고 흉측한 신들의 석상이 서 있었는데, 이는 다른 이들은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말자하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공허의 정수, 절대 보지 말았어야 할 파멸의 원천이었다. 이 순간부터 말자하의 눈앞에 펼쳐지는 미래의 풍경은 오직 하나, 공허의 존재들로 인해 고통에 가득한 발로란의 모습뿐이었다.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약속을 안고 그는 사막의 모래 언덕에 혼자 서 있었으나…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모래 바람의 메아리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리그 오브 레전드. 공허의 힘 그 자체를 몸속에 가득 담은 채, 말자하는 그의 운명에 따라 북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대지가 갈라지고, 바다가 끓어오르고,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결국 그들은 오고야 말 것이다." - 말자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