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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타 이치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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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역사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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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에서도 독특한 갑옷 착용 시의 발도술을 전문으로 하는 유파다. 정식 명칭은 쇼짓켄 리카타 이치류 갑주발도술(初實劍 理方一流 甲胄拔刀術).

2. 상세

일본에서 남아있는 고류검술유파는 많지만 갑옷을 착용하고 전투하는 것을 가르치는 유파는 매우 적으며, 그중에서도 갑주 발도술을 표방하는 매우 특이하고 유일한 유파. 더군다나 다른 거합 유파들이, 심지어는 타치를 사용하던 시절에 정립된 가토리신토류까지도 우치가타나를 허리띠에 차고 하는 데 비해 타치를 착용한 상태에서 발도하고 적을 베며, 독특한 납도를 수행하는 특징적인 이치를 가르치고 있다.

리카타 이치류의 대표적인 특징은 다음 4가지로 나뉜다.
  • 갑옷을 착용하고 연무하는 것.
  • 첫 공격은 반드시 칼날을 아래로 향해 발도하여 올려베는 것.
  • 상대를 벤 다음 반드시 목을 찔러[1] 절명시킨 다음 마무리를 한다.
  •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칼날면에 대어 피를 닦아내면서 납도한다. 즉 휘둘러 터는 식이 치부리[2]가 없다. 납도할 때에도 칼날을 아래쪽으로 하여 납도한다.



다만 리카타 이치류가 정말로 전쟁에서 갑옷을 입고 싸우면서 생긴 동작이냐면 그건 아니다. 창시자인 이마에다 사츄 료다이(今技佐仲良台)는 전국시대가 끝난지 한참 지난 1646년 태어났고, 무술경력도 가문의 검술인 이마에다류(今枝流)를 배운 다음 잠시 무사로 재직하다 낭인이 되어 전국을 떠돌면서 야규신카게류, 기도류, 카시하라류 등을 배우고 에도에 도장을 열어 가르친 것이며 전쟁에 나선 적은 없기 때문이다. 갑주 발도술은 가전검술인 이마에다류의 독자적인 발도술을 기반으로 개발된 것이며, 한다리로 서는 동작, 정좌가 아닌 한쪽 무릎을 세워 앉은 상태에서 시작되는 발도술, 목을 찔러 끝을 내는 동작 등 눈에 띄는 특이한 동작들은 모두 이마에다류의 발도술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즉 진정한 전쟁터 무술이라기보다는, 엄밀히 말해 이마에다류를 바탕으로 갑옷을 입고 시연하면서 갑주발도술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치 발도술이라고는 해도 정작 쓰는 건 카타나라는 것도 특징. 다만 전국시대 중/후반에 많이 쓰인 끈매듭으로 허리에 고정하는 방식 혹은 타치다이(太刀帶)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칼날이 아래로 가게 착용한다. 그외에 독특한 것으로 은중적(隱中敵)이라는 기술이 있는데, 칠흑같은 밤중에서 적을 탐색하여 베는 기술이다. 칼을 허리에서 풀어 칼집을 절반 정도 발도한 상태로 길게 빼어 주위를 휘휘 저으면서 적을 찾다가, 칼집 끝에 뭐가 걸리면 즉시 칼집을 던지고 베어버리는 기술.



시연을 할 때에는 항상 갑옷을 입고 하는데, 가끔씩 연무할 때마다 투구의 마에다테(장식물)이 빠져서 굴러다니는 사태가 벌어진다. 일본 갑옷 자체의 문제라곤 하지만 어떻게든 해야 할 문제. 원래 120cm정도의 봉을 쓰는 장술(杖術), 유술, 나기나타술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드물게 공개하기도 한다.


(2011년 일본고무도연무대회 영상. 자체적인 평복 거합술과 검술, 봉술을 공개하였다.)

3. 역사

쇼호 3년(正保3年/1646)년 태어난 이마에다 사츄 후지와라 료다이(今枝佐仲 藤原良臺)가 창시하였다. 이마에다는 성, 사츄는 이름이며 후지와라는 본관[3]이고 료다이는 호이다. 다만 이후 후손들은 모두 이마에다 사츄라고 똑같이 칭하며, 호만 바뀐다.

아버지인 이마에다 료켄(今枝良堅)이 창시한 이마에다류[4] 를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백부 이마에다 료세이(今技良政)에게서 배웠고, 셋츠노쿠니(摂津国)타카즈키 성주인 나가이 나오키요(永井直清)밑에서 임관하여 일했지만 뜻을 품고 사직, 낭인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야규신카게류(柳生新陰流), 기도류 유술(起倒流柔術), 카시하라류 창술(柏原流), 잇텐류 거합(一傳流居合)을 배웠다. 이후 에도의 코이시카와(小石川)토자키쵸(戸崎町)에 도장을 열어 이마에다류 발도술 50본을 20본으로 정리하여 새롭게 유파를 열었다.

초창기에는 쇼짓켄 리카타 이치류가 아니라 이마에다 리카타 검술(今枝理方劍術), 짓켄 리카타 이치류(實劍理方一流)라고 불렀지만, 3대 종가 이마에다 사츄 료신(今枝良眞) 대에 이르러 쇼짓켄 리카타 이치류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형태도 지금과 같이 변했다고 한다. 원래는 유술, 장술, 나기나타술, 하나네지리[5]술, 분동추를 달아놓은 봉을 쓰는 기술도 있었다고 한다.

리카타 이치류 이외에도 몇종류의 분파가 있다. 츠야마 번(津山藩)에서는 리카타 이치류와 더불어 이마에다류 검술 아키모토파(秋元派)가 존재했으며 여기서 장술(杖術)인 이마에다 신류(今技新流)가 분파되었다. 그외에 오오노 번/쵸후 번(大野藩/長府藩)에서 이마에다류 검술이라는 유파가 전해졌고, 코쿠라 번(小倉藩)에서는 이마에다류 쇼짓켄쥬츠(今技流初實劍術)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이 분파들은 이마에다 료다이에게서 배운 제자들이 분파해 나간 것이다. 제제 번(膳所藩)에서도 이마에다류 검술이 전해졌으며 여기에서 다양한 분파가 발생하였는데 이 계통은 이마에다 료다이의 백부 이마에다 료세이가 가르친 계통으로, 리카타 이치류의 기본이 된 고전 이마에다류에 해당한다.

4. 관련 문서


[1] 止を揷す(도도메오 사스)라고 표현한다. 흔히 현대 일본어에서는 끝장을 낸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 뜻은 목줄기(도도메)를 찔러 상대를 완전히 절명시킨다는 의미.[2] 거합에서 동작을 완료할 때 칼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는 것. 매우 멋이 있어 사람들을 혹하게 한 주범이기도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정말로 피가 털리느냐는 대체적으로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결론으로 나가는 분위기이다. 흥건한 피가 어느정도 날아가긴 하지만 칼날 면에는 피가 어느 정도 남아있기는 한다는 것. 가토리 신토류의 치부리는 말만 치부리이지, 칼자루를 튕기면서 주먹으로 탁 치는 방식인데 원래 칼날이 덜그럭거나 고정이 헐거워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동작이라고 한다.[3] 일본 헤이안 시대의 귀족 가문이었던 그 후지와라[4] 료다이의 고조부에 해당하는 료쥬(良重)가 잇텐류(一傳流), 호오키류(伯耆流), 힛다 카게류(疋田陰流)를 배워 정리한 것을 료쥬의 양자 료류(良隆)가 연구하여 정리한 것이 리카타 이치류의 원형에 해당하는 이른바 고전 이마에다류이다.[5] 말고삐의 고리에 걸어 돌리는 봉으로 말이 날뛸때 이 봉으로 진정시켰다. 굵은 목제 단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