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키 미키[1] (Tatsuyoshi 'Ryuki' Miki, 三木龍喜) | |
출생 | 1904년 2월 11일 일본 카가와현 타카마츠시 |
사망 | 1966년 1월 9일 일본 도쿄 |
프로데뷔 | 1927년 |
신장 | 미상 |
사용 손 | 언노운 (언노운 백핸드) |
세계 랭킹 | 미상 |
개인전 통산 성적 | 220승 66패 (76.9%) |
개인전 타이틀 획득 | 13회 |
그랜드슬램 결과 | 프랑스 오픈 3라운드 (1933) 윔블던 3라운드 (1930-1933) US 오픈 2라운드 (19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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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제국의 전 테니스 선수.2. 커리어
- 개인전 통산 성적 : 220승 66패 (승률 76.9%)
- 통산 타이틀 획득 : 13개
그랜드슬램 대회 단식: 최고 3라운드 - 통산 9승 10패(승률 47.37%)
그랜드슬램 혼합복식 성적
- 윔블던 : 우승 (1934)
3. 생애
1904년 통신성 관리였던 미키 키지로의 아들로 타카마츠시 가가와현에서 출생하였다. 류키 미키의 할아버지가 타카마츠시의 마지막 번주였던 마츠다이라 요리사토를 섬겼던 토족을 지냈고, 메이지 유신에 따라 무사에서 관리로 전향한 집안이였기에 풍족한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오사카부립 중학교[2] 테니스부에 입단하여 소프트 테니스에 두각을 보였고 1922년 오사카시립고등상업학교[3]에 진학하여 선배들로부터 테니스 기술을 전수 받으며 실력을 키운다.
1923년 전일본 테니스 랭킹에 이름을 올리며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고, 1924년부터 1926년까지 3년 연속 전일본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의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당시 일본 테니스의 선수층이 두터웠던터에 그다지 주목을 받지는 못했었다. 1927년 전미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지만 1라운드 탈락한다. 이어 참가한 US오픈에서도 1라운드 탈락하며 비교적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
미키는 당시 대학 테니스 팀에서 만난 선배인 아타카 엔 컴퍼니[4]의 대표인 토미코 아타카와의 인연으로 영국에서 머물고 있었다.[5] 이를 통해 미키는 런던에서 머물며 많은 아마추어 대회를 경험할 수 있었다. 1929년 미키는 세인트 조지힐 오픈에 참가하여 자신의 첫 커리어 타이틀을 획득하였다.[6] 또한 1929년부터 그는 윔블던에 참가하였으며 1930년부터 1933년까지 4년 연속 3라운드 진출이라는 성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또한 1932년 데이비스컵 대표팀으로 활약하며 지로 사토와 함께 일본 제국을 데이비스 컵 4강으로 이끌는 활약을 보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단식 대회에서 활약하며 13개의 커리어 타이틀을 획득하는 성과를 올린다.
류키 미키는 단식 뿐만 아니라 복식에서 또한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그는 1932년과 1934년 윔블던 남자 복식 부분에서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또한 1931년부터 그가 코칭했던 도로시 라운드[7]와 팀을 꾸려 윔블던 혼합 복식에 참가하였고 당대 영국의 남자 테니스를 대표했던 버니 오스틴의 팀을 3-6, 6-4, 6-0으로 완전히 제압하며 4대 그랜드 슬램 단식, 복식, 혼합 복식 통틀어 타이틀을 차지한 최초의 아시아인 인물이 된다. 이 대회의 우승은 류키 미키로 하여금 더욱 의미가 컸는데, 윔블던에 앞서 진행되었던 데이비스컵을 치르기 위해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본 대표팀의 주된 전력이였던 지로 사토가 대회에 부담을 느끼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부담을 덜어주는 영혼을 달래는 등의 의미를 주었기 때문이다.
1934년 셰필드 할람셔 챔피언쉽 우승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고, 조용한 여생을 살다가 1966년 1월 생을 마감한다.
4. 여담
- 1934년 그가 차지한 윔블던 혼합 복식 타이틀은 아직까지도 동아시아 남자 선수 유일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로 남아 있다.[8]
[1] 본명은 미키 타츠요시이지만 류키 미키로 불렸다.[2] 현재의 이마미야 고등학교[3] 현재의 오사카 시립 대학교[4] 현재는 아타카&co[5] 토미코 아타카가 류키에게 그녀의 테니스 코치가 되줄 것을 제안하였고, 이를 계기로 미키는 그녀의 기업에 취직하였으며 영국으로 발령받게 된 것[6] 1930년과 1931년에도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3년 연속 우승자로 이름을 올린다.[7] 1934년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1934년 호주오픈과 윔블던 여자 단식, 윔블던 혼합복식 우승을 일궈낸 영국 여자 테니스 래전드 중 한 명이다.[8] 단식 분야의 경우 자국 후배인 니시코리 케이가 US오픈 준우승의 성과를 낸 것이 최고 성적이며, 남자 복식, 혼합 복식의 경우 인도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타이틀을 획득한 경력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