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5 23:00:18

프레드 웨스트 & 로즈메리 웨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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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프레드 웨스트, 로즈메리 웨스트
누구나 그런 짓을 하지 않나?

프레드 웨스트(Fred West) - 1941년 9월 29일 ~ 1995년 1월 1일 (53세)
로즈메리 웨스트(Rosemary West) - 1953년 11월 26일 ~
국적 : 영국
범죄 유형 : 감금, 학대, 강도, 강간, 연쇄살인
피해자: 최소 12~13명
범죄 시기 : 프레드: ? ~ 1987년 6월[1] / 로즈메리: 1971년 6월 ~ 1987년 5월
체포 : 프레드: 1994년 2월 / 로즈마리: 1994년 4월

1. 개요2. 생애
2.1. 프레드 웨스트2.2. 로즈메리 웨스트
3. 살인4. 범행의 종말5. 이후

1. 개요

영국연쇄살인범, 성범죄자 부부다.

부부가 연쇄 살인의 공범인 드문 사례이며, 범죄 수법 또한 매우 잔혹하여 영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10여 명에 이르는 여성을 감금하고 잔혹하게 살해하였으며, 자식들까지도 성적으로 학대하고 살해했다.

2. 생애

2.1. 프레드 웨스트

프레드 웨스트는 1941년에 태어났으며, 그의 집안에서는 오래 전부터 근친상간이 빈번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상습적인 절도를 저질렀고, 13세 소녀를 임신시킨 미성년 성범죄자였다.[2]

프레드는 1962년에 매춘부로 일하던 10대 청소년 캐서린 레나 코스텔로와 결혼했는데, 당시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결혼 직후 그녀는 샤메인이라는 딸을 낳았다. 프레드는 무절제한 성생활을 즐기며 여자들을 임신시키고 그 여자들이 다른 남자와 성관계하는 것을 보기를 좋아했고, 레나와의 사이에서 딸 안나 마리를 낳았다.

이 시기, 프레드는 한동안 아이스크림 트럭을 모는 일을 했다. 그 일은 어린 소녀들을 납치할 수 있는 기회를 무한히 제공했다. 나중에 그는 도살장에서도 일했는데, 그것 역시 피해자들에게는 끔찍한 경험이 되었다.

1967년, 남편의 변태적인 성적 요구에 질린 레나는 가출을 했다. 그녀가 집을 나가자마자 프레드는 안나 맥폴이라는 10대 여성과 친해져 그녀를 임신시킨다. 그녀가 그에게 결혼을 강요하자 프레드는 그녀를 살해하고 토막 낸 후 그녀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기념품으로 간직했다. 그는 장차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이런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얼마 뒤 레나는 프레드에게 돌아왔지만 다시 헤어졌다. 그녀는 프레드와의 사이에서 난 아이인 안나 마리와 동복이부 언니 샤메인을 프레드에게 맡기고 떠났는데, 이 아이들은 아버지 프레드에게 일상적으로 강간과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리고 1969년, 28세의 프레드는 그의 혐오스러운 삶의 남은 기간을 함께할 환상의 파트너를 만나게 된다.

2.2. 로즈메리 웨스트

로즈메리는 1953년에 정신분열증 환자인 아버지와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임신했을 당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로즈는 성적으로 문란했으며 입이 거칠어 상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동생과 침대에서 다 벗고 애무하기를 좋아했다.

3.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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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의 나이로 12세 연상의 프레드와 결혼한 지 1년이 지나기도 전에 로즈메리는 프레드의 딸을 낳았고, 헤더라고 이름을 붙였다. 아이를 낳은 직후 그녀는 홧김에 프레드의 수양딸인 샤메인을 살해했다.[3] 프레드도 딸의 시체를 처분했고, 자신이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시그니처이자 기괴한 수집품인 손가락과 발가락을 챙겼다.

프레드와 레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안나 마리는 아버지에 버금가는 또라이였던 새어머니가 가세하자 더욱 심한 성적 학대를 당했다. 프레드가 8살짜리 친딸을 강간하는 동안 로즈는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그들은 1971년 자신의 아이들을 보려고 나타난 레나마저 살해했고, 시체 역시 평소처럼 처리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웨스트 부부는 겉으로는 멀쩡한 생활을 유지했지만, 입에 담거나 상상하기조차 힘든 사악한 행위들을 저질렀다. 로즈는 집을 나와 매춘부로 일하기도 했고, 도색 잡지에 자신을 광고하기도 했다. 헤더 이후 그녀는 아이를 7명이나 더 낳았는데, 그 중 일부는 프레드의 아이였고 나머지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였다. 자신들의 변태적 성생활[4]에 더는 만족할 수 없게 된 웨스트 부부는 극단적인 흥분을 얻는 방편으로 가학적인 연쇄 살인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크롬웰 가 25번지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다. 그리고, 이들 부부는 본인들의 막장스러운 생활 덕에 자녀가 매우 많다는 점을 이용해 보모를 구한다는 광고를 지역지에 지속적으로 내보냈다. 적은 돈으로 여행하는 젊은 여성들이 보모로 아이들을 돌보며 숙식도 해결하고, 돈도 벌고, 지역 관광까지 하니 하숙집에 지속적인 문의가 들어왔다. 더불어 길을 가던 젊은 여성을 대담하게 유인하기도 했다. 이 여성들은 이들에게 강간과 각종 변태적인 성고문을 당하고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그 수는 최소 12명으로 추정된다.[5]

하숙집과 단기 보모의 특성 상 들어가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씩만 묵었기 때문에 보모들이 갑자기 없어지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또, 웨스트 부부는 차를 타고 무전 여행객들이나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 여성들까지 집으로 유인하는 등 다양한 수법까지 사용했다.[6] 그들에게 붙잡힌 여성들은 며칠 동안 잔인한 성고문을 당했고, 살해된 후 시신은 절단되어 지하실에 매장되었다. 지하실이 꽉 차자 웨스트 부부는 그 곳을 아이들의 육아실로 개조했고, 이후 시신들을 뒤뜰에 매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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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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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가 25번지 지하실과 정원.

4. 범행의 종말

1986년, 웨스트 부부의 사이에서 난 첫째 딸인 헤더 웨스트는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성폭행을 견디다 못해 친구에게 이 사실을 홧김에 털어놓고 만다. 친구가 자기 부모에게 이 일을 알리자 평소 겉으로는 평범한 이웃으로 생활하고 있었던 웨스트 부부와 친분이 있었던 이 부부는 사건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프레드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만다.

이듬해 1987년, 헤더가 갑작스럽게 실종되자 경찰은 당연히 웨스트 부부를 조사했으나 부모라는 인간들이 그 애는 원래 레즈비언매춘부라 그저 단순 가출일 거라는 소리나 지껄이며 찾을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 모습에 의심, 수사에 착수했지만 이들을 연관시킬 만한 증거를 찾기는 어려웠다.[7]

1994년, 프레드는 술집에서 술에 취해 친구들에게 첫째딸 샤메인을 자기집 앞마당에 묻었다고 웃으며 얘길한다. 친구들은 이 말을 그냥 넘기지 않고 경찰에게 전달했고, 샤메인과 헤더의 실종과 관련해 웨스트 부부를 지속적으로 수사하던 경찰은 판사를 설득하여 앞마당만 파 볼 수 있는 수색 영장을 발부받고, 포크레인으로 그들 집의 앞마당을 파게 된다.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자 예상대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놀랍게도 3구의 시신이 발견됐고 이에 대해 경찰이 추궁하자 프레드가 결국 자백하며 영국 전체가 뒤집어졌다.

이윽고 집 전체를 수색 할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었고, 시신이 있따라 발견되었다. 수색하자 지하실에서 다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집안에 공간이 없자 뒷산에도 시신을 묻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사건이 순식간에 커지자 여러 방송사가 몰려들어 상황을 생중계 했는데, 방송을 시청하던 타 지역 경찰이 해당지역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집 안에 더 이상의 시신을 숨길 수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앞마당에 묻은 것이 분명하니 반드시 집 전체를 수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사건은 세계적 이슈로 번졌으며, 일본에서도 생중계를 할 정도였다. 경찰이 끈질기게 프레드를 심문한 끝에 그가 딸 살해와 암매장 사실을 자백하면서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경찰은 1994년 2월 26일 웨스트 부부의 친딸 헤더 웨스트(16)의 유골을 크롬웰 가 25번지 뒤뜰에서 발굴했고, 그 후 1년 동안 현장을 정밀히 수색, 발굴한 유골을 분석해 다른 피해자들의 신원을 공개했다. 크롬웰 가 외에도 2곳에서 3명의 유골이 추가로 발굴되어 공식적으로는 12명이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들의 유골이 100여 구에 이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는데, 위에 나와 있는 범행 내용이나 범행 기간을 보면 전혀 신빙성 없는 이야기도 아닌지라 경찰은 영국 범죄 수사 역사상 가장 많은 인원과 장비를 투입해 끈질기고 지루한 탐문 수사와 발굴 작업을 계속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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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된 증거품을 옮기고 있는 경찰.

일주일 후 웨스트 부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고, 각자 별개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교도소에서 로즈메리는 프레드와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 버렸고, 이에 충격을 받은 프레드는 1995년 1월 감방에서 침대 시트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며 향년 53세로 생을 마감했다.[9]

결국 로즈메리 혼자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1995년 10월에 시작된 재판에서 10건의 살인 혐의에 대해 그녀는 일관되게 프레드가 주범이며, 자신은 무죄임을 주장했고 상황은 로즈메리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방송으로 재판 소식을 본 생존자가 등장해 적극적으로 증언에 참여한다. 이 피해자는 프레드보다 로즈메리가 더욱 주도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사실을 증언하였다. 그녀가 증언한 그들의 범행 수법은 이렇다.

길을 걷고 있던 중 웨스트 부부가 차를 타고 접근해 간단한 대화를 시도한다. 프레드 옆자리에 있던 로즈마리가 괜찮다면 오늘 저녁에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차에 타라,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한다면 여성들은 당연히 경계할 것이다. 그것을 옆자리의 로즈마리가 대신 말하니 그저 선량한 부부 정도로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상 로즈마리의 지시대로 프레드가 움직였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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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을 주장하는 로즈메리 웨스트.

이런 정황이 인정되어 판사는 로즈마리가 연쇄살인의 공범이라고 판단하여 종신형을 선고했고, 같은 해 영국 내무부 심사에서 가석방 불가 대상자로 선정되어 2021년 현재도 68세의 나이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5. 이후

로즈메리의 재판이 끝나고 1년 후 프레드의 형 존도 동생 프레드와 같이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존 역시 재판이 시작되기 전 자신의 집 차고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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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주소를 나타내는 사인도 괴기스럽다.

이후, 악명 높은 크롬웰 가 25번지는 당국의 결정에 의해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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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된 크롬웰 가 25번지.

여담으로 표창원은 자신이 영국 엑세터 대학교로 유학을 갔을때, 한창 이 사건의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하루종일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기 때문에 가장 인상에 남은 사건이라고 밝혔다.
[1] 최초의 살인은 1967년인데, 범죄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2] 그는 법정에서 “누구나 그런 짓을 하지 않나요?”라고 말했다 한다.[3] 그 이유가 단순히 짜증이 올라와서라고 한다.[4] 일례로, 프레드는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 그들과 딸 안나 마리의 집단 섹스를 관람하는 것을 즐겼다.[5] 이들의 범죄 기간이 거의 20년 가까이로 꽤 긴 것을 볼 때 실제로 12명뿐이라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프레드가 1967년에 여성을 죽였고 로즈마리가 홧김에 샤메인을 죽였듯이 기본적으로 살인마 성향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기에 각자 다른 수법으로 얼마나 죽였는지도 모른다.[6] 피해 여성들은 프레드가 길에서 차로 유인할 때 안심하고 차에 탔는데, 이는 차 안에 있던 로즈메리 때문이었다. 그들에게서 살아남은 유일한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거리에서 당시 21세였던 로즈메리가 웃는 얼굴로 숙식과 일자리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하자 아무런 의심 없이 그들의 차에 올라탔다가 크롬웰 가 25번지로 끌려갔다고 한다.[7] 그러나 이후 한 소녀가 웨스트 부부에게 강간당했다고 신고하는 등 이들의 파렴치한 범죄도 점차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고, 1992년에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으나 증인들이 증언을 포기하면서 풀려났다.[8] 실제로 프레드가 자백한 곳 중에서 시신을 못 찾은 곳이 많다.[9] 공식적으로는 이렇지만 사실은 아내를 보호하려 모든 죄를 혼자 뒤집어 쓰고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위의 범죄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녀들은 사랑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 도구로만 인식하였으나 유독 아내 로즈메리만큼은 끔찍히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