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로메오 멘티 (Romeo Menti) |
생년월일 | 1919년 9월 6일 |
사망년월일 | 1949년 5월 4일 (향년 29세) |
국적 | 이탈리아 |
출신지 | 이탈리아 왕국 비첸차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69cm | 67kg |
소속팀 | LR 비첸차 (1935-1938) ACF 피오렌티나 (1938-1941) 토리노 FC (1941-1949) → AC 밀란 (1944 / 임대) → AC 스타비아 (1944-1945 / 임대) → ACF 피오렌티나 (1945-1946 / 임대) |
국가대표 | 7경기 5골 (1947-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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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멘티는 LR 비첸차에서 1935년에 데뷔했고 1938년에 ACF 피오렌티나에 팔렸다. 멘티는 피오렌티나에서 3년을 보내면서 피오렌티나를 세리에 B(1940)와 코파 이탈리아(1941) 챔피언으로 만들고 1941년에 토리노 FC에 합류했다.토리노에서 2년을 보낸 후 멘티는 제2차 세계 대전 으로 세리에 A가 중단되었을 때 AC 밀란, AC 스타비아, 피오렌티나 등 여러 구단을 돌아다녔다. 1946년에 토리노로 돌아온 멘티는 1949년까지 토리노에서 활약하며 그란데 토리노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멘티는 1949년 5월, 토리노와 SL 벤피카의 친선 경기에서 페널티 킥 득점으로 경기의 마지막 득점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그란데 토리노 멤버들의 마지막 득점이 되었는데 귀국길에 비행기 사고로 멘티를 포함한 알리탈리아 비행기에 탔던 멤버들이 전원 사망했기 때문이다.
멘티의 사망 후 그의 고향팀이자 데뷔팀인 LR 비첸차는 그의 이름을 자신들의 홈구장에 헌정했다.
2.1.2. 국가대표
멘티는 1947년 4월 27일, 스위스와의 경기로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는데 데뷔전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5:2 승리를 이끌었다.멘티는 대표팀에서 1949년까지 7경기 5골을 기록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멘티는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빠른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날카로운 드리블과 골 감각을 가진 선수였다다. 멘티는 킥 능력이 뛰어나서 프리킥과 페널티 킥, 코너킥 등 각종 세트 피스와 크로스의 스페셜리스트였고 슈팅도 뛰어났다.멘티는 크로스를 올리기 위해 공간을 벌려서 플레이하는 방법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중앙으로 파고드는 것도 능숙하게 처리했다. 특히 발렌티노 마촐라가 멘티의 이 스타일을 잘 이해해서 멘티를 많이 도왔다. 멘티가 상대 골문을 겨냥하고 있으면 마촐라는 거의 윙어 포지션에 가까운 측면까지 나가서 자신을 마킹하는 수비수를 유인, 멘티가 직접 또는 다른 동료 공격수들이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곤 했다.
또한 멘티는 경기장에서 심판에게 항의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 정도의 깨끗한 매너를 가진 선수였다.
4. 사생활
멘티의 두 형이 이미 유벤투스 FC와 LR 비첸차에서 뛰고 있었기 때문에 로메오는 이탈리아에서 보통 멘티 Ⅲ로 불렸다. 조카 루이지는 멘티 Ⅳ로 불렸다.5. 수상
5.1. 클럽
- 세리에 A 우승 3회: 1942-43, 1946-47, 1947-48(토리노 FC)
- 코파 이탈리아 우승 2회: 1939-40(ACF 피오렌티나), 1942-43(토리노 FC)
- 세리에 A 준우승 1회: 1941-42(토리노 FC)
- 세리에 B 우승 1회: 1938-39(ACF 피오렌티나)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