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레네 오를란도 멜렌데스 브리토 (René Orlando Meléndez Brito) |
생년월일 | 1928년 12월 29일 |
사망년월일 | 2002년 11월 14일 (향년 73세) |
국적 | 칠레 |
출신지 | 마리아 엘레나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173cm |
소속팀 | 에베르톤 데 비냐 델 마르 (1948-1956)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57-1958) 오이긴스 FC (1959-1960) 우니온 라 칼레라 (1961-1962) CD 콜차과 (1963) CD 루이스 크루스 마르티네스 (1964) |
국가대표 | 39경기 10골 (1950-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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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칠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멜렌데스는 1947년까지 이키케 리그에서 아마추어 축구를 하다가 에베르톤 데 비냐 델 마르의 눈에 띄어 에베르톤에 영입되었다. 1947년 11월에 멜렌데스는 비냐 델 마르의 아마추어 클럽과 친선 경기 겸 입단 테스트에서 4골을 넣어 에베르톤 코칭 스태프들의 눈도장을 받았고 1948년부터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뛰게 되었다.에베르톤은 1950년에 최초로 칠레 프리메라 디비온 정상에 올랐고 1952년에도 2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이 당시 에베르톤에서 멜렌데스의 공헌은 컸고 그의 업적은 1952년의 득점왕으로 대표된다. 멜렌데스의 활약에 자극받은 다른 클럽들은 계속 그의 영입을 추진했지만 멜렌데스는 1956년까지 에베르톤에 남았고 그의 이적은 1957년에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로 이뤄졌다.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에서의 2년간 멜렌데스는 준우승 1회를 추가했고 1959년과 1960년의 2년은 오이긴스 FC에서 보냈다. 1961년부터 멜렌데스는 당시 칠레 프리메라 B 소속이었던 우니온 라 칼레라에서 뛰게 되었는데 라 칼레라는 1961년에 프리메라 디비시온으로 승격에 성공했다. 멜렌데스는 라 칼레라에서 1년간 프리메라 디비시온 경기를 더 뛰고 CD 콜차과를 거쳐 CD 루이스 크루스 마르티네스에서 은퇴했다.
2.1.2. 국가대표
멜렌데스는 1950년 월드컵의 칠레 대표팀에 발탁되는 것을 기대했지만 본선 엔트리는 호르헤 로블레도에게 돌아갔고 그는 대표팀 명단에서 빠졌다. 이후 월드컵들에서 멜렌데스는 지역 예선에 참가했지만 이번엔 칠레가 지역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멜렌데스는 남아메리카 챔피언십에 참가해 아쉬움을 풀어냈다. 칠레는 1955년과 1956년에 각각 준우승을 거뒀다.
3. 수상
3.1. 선수
3.1.1. 클럽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2회: 1950, 1952(에베르톤 데 비냐 델 마르)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준우승 1회: 1957(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 칠레 프리메라 B 우승 1회: 1961(우니온 라 칼레라)
3.1.2. 국가대표
-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준우승 2회: 1955, 1956
3.1.3. 개인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 1회: 1952(에베르톤 데 비냐 델 마르)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