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레뀌돈(Lê Quý Đôn, 黎貴惇)은 후레 왕조 찐주(鄭主, Trịnh) 통치기 대월(大越)의 사상가이다. 18세기, 19세기 대월 사상 지형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거칠게 말하면 대월식 실학, 북학파의 중심 인물로서 홍대용이나 박지원과 유사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물론 이런 피상적 유사성에 현혹되면 레뀌돈이 보여 준 대월 특유의 경세치용 사상과 주자학의 접점을 놓치게 되므로 그의 사상을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2. 생애 및 사상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나 14세에 사서오경에 통달했다고 한다. 26세에 한림원에 들어갔고, 청나라 연경(燕京, 베이징) 사절단의 부사(副使)로 임명되었다. 이때 처음 한역된 유럽 과학 서적을 접하게 되었고, 조선 사절단을 만나 창화시(唱和詩)를 주고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귀국 직후 법치에 기반한 통치 체제를 주장했으나, 정계의 역풍을 맞아 지방 말직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국자감에 복귀해 학술활동을 이어갔다.레뀌돈이 활동한 시기는 경전과 현실 사이 괴리가 컸던 혼란기였다. 명목상으로 후레 왕조가 황제로 남아 있었지만, 실제로는 남부와 북부에 독립적인 권력자인 주(主)가 존재하여 왕자무외 이념이 무색했다. 그마저도 1770년대-1780년대 떠이선 혁명이 일어나면서 무너지고, 대월은 전국적인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이에 주자학 교리를 암송하는 기존의 공부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레뀌돈의 사상이 받아들여질 지적 토양이 마련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기억되는 백과사전 운대류어(Vân đài loại ngữ, 芸臺類語)는 1773년에 간행되었다. 다른 한자문화권에도 백과사전류 저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편찬한 사례는 드물어 희소성이 높다. 운대류어에서 그는 이기론(理氣)에 기반한 송학적 우주론을 정리하는 한편, 서양 서적에서 나온 물리, 천문 지식도 수록했다. 또 각국의 언어와 풍속, 사회와 고대 중국의 지리를 묘사하고 정리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理)와 기(氣)를 통합된 하나로 파악했다는 점이다. 주지하듯 주희는 이를 만물을 포섭하는 형이상의 원리로, 기를 형이하의 층위에서 구체화된 질료이자 그릇(器)으로 이해했다. 둘이 서로에게 필수적이라 하면서도 이를 기보다 상위의 존재로 놓았는데, 레뀌돈은 둘을 같은 선상에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관찰 가능한 기의 비중을 초월적 원리인 이와 같은 수준이나 그 이상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경험적 과학의 정당성을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