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세계대전Z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인도군의 장군이었으며, 별명은 '델리의 호랑이 장군'. 성이 싱인 걸로 보아 시크교 신자인 듯하다.
2. 상세
작중 시점에선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되었으며, 미군이 좀비와의 싸움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 '라지 싱 전술'[1]을 최초로 고안해낸 인물이다. 이 라지 싱 전술은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희망 전투를 비롯해 여러 전투에서 진가를 발휘했다.[2] 이 인물에 대한 증언은 인도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사다르 칸이 풀어나간다. 칸의 회상으로는 찢어진 군복과 피에 절은 터번을 감고 오른쪽 눈에 안대를 착용했었다고 한다. 영웅을 마주해서 놀란 가슴에 거인처럼 보였다고 하긴 했지만 꽤 체격이 있는 인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전쟁 초기, 라지 싱은 휘하의 중대를 이끌고 델리의 축구장에 갇힌 시민들을 구출하려 했으나, 전세가 불리해지자 간디 공원으로 퇴각한 다음 부하들로 하여금 정사각형으로 진형을 만들어 싸우게 하였다. 이 방법은 효과적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탄환이 바닥나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해졌고, 헬기를 타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라지 싱은 "나는 여기에 남겠다. 먼저 떠나라"면서 버티다가, 보다 못한 부하 한 명에게 개머리판으로 한방 맞고 기절한 다음에서야 겨우 탈출했다.[3] 이 사건에 대해 진위논란이 있는 듯 하지만, 호주의 우주 비행사인 테리 녹스의 증언에 따르면 위의 일화는 의심할 바 없는 사실[4]이라고 한다. 라지 싱의 마지막을 지켜 본 당시 병사였던 사다르 칸도 코에 반창고가 붙여져 있었다고 증언을 하는데, 아마도 이 사건으로 생긴 상처로 보인다.
이후 산악지대의 피난지 내로 좀비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한 도로 폭파 임무를 지휘했는데, 이때 도로에는 피난 행렬이 끝도 없이 밀려있었다. 폭파장치를 들고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무커지 병장을 보고서, "내가 모든 죄를 감당하겠다"면서 자신이 버튼을 누르지만, 폭탄에 문제가 생겨 폭발하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피난민들로 북적이는 산 아래까지 내려가 매설된 폭탄을 터뜨린다. 칸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무커지 병장과 함께 그를 지키기 위해 나섰지만 인파에 밀려 어느 순간부터 그를 놓쳤고, 허공에다 총을 쏴도 공포에 질린 피난민들은 말을 듣질 않았다고.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폭탄이 폭발한 것은 분명하나 라지 싱 장군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정황상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
만약 라지 싱이 희생해서 도로를 폭파하지 않았다면 이미 명령을 받고 상공에서 대기하던 인도 공군의 SPECTAT 재규어 공격기가 핵무기로 타격하는 '시바의 천벌'을 실행했을것이고, 그랬다면 산까지 날아가서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좁은 길목이 아니라 넓직한 직행도로가 생겨 그 통로로 더 많은 좀비들이 몰려들어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을 것이다. 칸도 이 작전을 두고 멍청한 짓거리라고 디스했다. 다행히 라지 싱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최악의 상황을 막아낸 셈이었다. 칸의 증언에 의하면 폭파 이후, 좁은 산길이 끊겨 몰려든 좀비들이 계곡 아래로 끝도 없이 추락했다고.
전후에는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칭송받고 있으며, 싱 장군이 전사한 곳엔 현대식 4차선 산길 도로와 함께 장군의 동상이 세워졌다. 인터뷰를 했던 칸은 장군이 자신의 동상을 보며 자랑스러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1] 이 전술은 18~19세기 대기병 방어용으로 사용된 보병들의 사각방진과 동일하다. 당시 방진과 다른 점은 얇은 전열을 기병이 돌파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당시의 목적이었다면, 이 방진은 압도적인 물량으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좀비들에게 후방을 잡히지 않고 전방향에서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2] 지형적 여건, 충분한 탄약과 더불어, 인력도 교대조로 운용해서 피로로 인한 전투력의 손실도 막았다. 라지 싱 전술의 완성판이나 다름없었고, 그 결과 밤새도록 벌어진 전투에서 아군의 피해는 없이 좀비의 시체로 산을 쌓는 전과를 얻게 된다.[3] 이때 그냥 버틴 정도가 아니라 살아남은 병사들이 라지 싱을 살리기 위해 단체로 달려들어 그를 헬기에 밀어넣으려 하고, 라지 싱은 헬기에 타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저항했다고 한다. 어찌나 몸부림이 거셌던지 개머리판으로 기절시키고 난 후에야 헬기에 태울 수 있었다는 것. 라지싱이 사후 뿐 아니라 전쟁 때에도 부하들에게 존경받고 부하들을 아끼는 참된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4] 인공위성의 감시 카메라를 통해 직접 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