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디비키아쿠스 (Diviciacus) |
출생 | 미상 |
사망 | 기원전 44년 이전 |
직위 | 하이두이족의 부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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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켈트계 하이두이족의 부족장.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을 본격적으로 벌이는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다.2. 생애
중앙 갈리아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인 하이두이족의 부족장으로, 기원전 72년경 세콰니 족과 전쟁을 벌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세콰니족은 이에 맞서고자 라인강 건너편의 강력한 게르만족인 수에비족의 지도자 아리오비스투스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아리오비스투스는 즉각 라인강을 건너 하이두이족과 맞붙어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그들은 세콰니족을 도운 대가로 상당한 영역을 뜯어낸 뒤, 더 많은 동족을 불러들여 본격적으로 갈리아를 공략하려 했다.수에비족의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자, 그는 기원전 63년 로마로 찾아가 키케로와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접촉해 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키케로는 그가 점, 천문학, 자연 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선보이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고 저서에 그를 드루이드라고 칭했다. 카이사르 역시 갈리아 전기에서 그가 웅변술이 뛰어났다고 기술했다. 그러나 원군을 받아내려는 그의 목적은 실패했다. 원로원은 그에게 "로마인의 친구"라는 칭호를 부여할 뿐, 원군을 보내주지 않았다. 이는 하이두이족이 갈리아에서 패권을 확립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이두이족으로 돌아온 그는 아리오비스투스와의 전쟁을 계속 이어갔으나, 마게토브리가 전투에서 하이두이족이 참패하였고, 그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워졌다. 동생 둠노릭스는 이 때를 틈타 헬베티 족의 오르게토릭스의 딸과 결혼하여 든든한 뒷배를 마련하고 형의 권위에 도전했다. 급기야 기원전 58년 헬베티 족이 하이두이족의 영역으로 쳐들어와 심한 약탈을 자행하자, 그는 갈리아 키살피나, 갈리아 트란살피나, 그리고 일리리아 속주의 총독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카이사르는 즉시 개입하여 헬베티 족을 물리쳤다. 이때 둠노릭스가 헬베티족에게 우호적이며 로마군이 그들과 맞붙을 때 일부러 보급을 지연시켜 로마군을 곤란하게 만든 걸 알게 되자 그를 처형하려 했지만, 친 둠노릭스 일파에게 공격당할 걸 우려한 그가 눈물로 호소하자 둠노릭스를 용서하기로 했다. 뒤이어 수에비 족을 몰아내달라는 그의 부탁 역시 들어줬다. 이후 카이사르의 도움을 받아 부족장으로서의 권위를 회복했고, 둠노릭스는 기원전 54년 카이사르의 브리타니아 원정에 끌려가다가 도중에 탈출했으나 끝내 추격병에게 피살되었다.
기원전 52년까지 하이두이족의 지도자로 활동했으나, 콘빅톨리타비스와 코티우스가 그를 카이사르의 앞잡이로 매도하며 공격하자 결국 물러나야 했다. 이후 하이두이족은 베르킨게토릭스와 손을 잡고 카이사르와 맞섰지만, 알레시아 전투에서 베르킨게토릭스가 패망하자 도로 카이사르에게 항복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으나, 키케로가 기원전 44년경에 쓴 편지에서 그를 과거형으로 언급한 걸 보면 기원전 44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