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카를로스 페이스 주니어 Don Carlos Faith Jr. | |
출생 | 1918년 8월 26일 |
미국 인디애나주 워싱턴 | |
사망 | 1950년 12월 2일 (향년 32세) |
함경도 장진호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복무 기간 | 1941~1950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중령 |
학력 | 조지타운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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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이다.2. 생애
원래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 했으나 자신과 맞지않아 포기했고 조지타운 대학교에 입학했다.2차세계대전 당시 장교로 육군에 입대해 북아프리카, 이탈리아전선에서 전투를 치렀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 마켓 가든 작전, 벌지 전투등 서부전선의 굵직한 전투를 모두겪었다. 이 당시 활약으로 동성훈장을 수여받았고 진급도 상당히 빨랐다. 종전후 국공내전으로 인해 중국에 배치되었고 미군이 모두 철수한 후 7보병사단에 배치되었다.
6.25전쟁 당시 32보병연대 소속 1대대장이 되었고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치렀다. 이후 북진하며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에 후퇴를 거듭했고 UN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는 10군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에게 북진할것을 명령했다. 알몬드는 해병 1사단, 육군 제7보병사단을 주력부대로 장진호방향으로 북진했다.
페이스의 부대는 선발대가 되었고 페이스 특수임무대라는 명칭이 붙었다. 하지만 북진 상황, 계획자체가 완벽한 오판이였고 보급의 문제도 겹쳤다. 중공군역시 11월 27일 해병대를 고립시키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선발대 페이스 부대역시 치열한 전투를 치렀고 적절한 중화기사용과 공중지원으로 선전했고 일부 방어선을 회복했다. 하지만 타 부대들은 고전을 면치못했다. 맥클린 중령이 이끄는 부대는 와해되어 맥클린이 포로로 잡혔고 맥클린 부대의 잔존부대원들을 추스려 통합지휘하게 되었다.
이후 이틀간 중공군의 야간공세를 공중보급에 힘입어 성공적으로 저지했다. 하지만 장진호의 추위는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렸고 비전투손실이 많이 발생했다. 다음날 일부 방어선이 뚫려 감제고지가 점령되었고 주간공격을 감행했다. 항공지원도 불가한 상황에서 퇴각을 했고 그 과정에서 장병들이 얼음이 깨져 익사하는등 피해를 입었다. 뒤늦게 콜세어기가 도착해 네이팜탄을 투하했으나 피아식별이 제대로 되지 않아 미군 15명이 사망했다.
집결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1221고지를 공격하기위해 전투를 거부한 카투사 두명을 즉결처형시키면서까지 전투를 지휘했다. 하지만 어느정도 고지를 점령한 상황에서 매복한 중공군이 던진 수류탄 파편에 가슴을 맞고 절명했다.
1951년 명예 훈장을 수훈했다.#
시신은 장진호에 묻혔으며 2004년 미-북 합동유해발굴단에 의해 유해가 발견되었다. 이후 미국으로 옮겨져 2018년 최종적으로 페이스 중령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