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1 20:23:40

다비트 1세(클라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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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제티 공국 2대 공작
დავით | 다비트 1세
제호 한국어 다비트 1세
조지아어 დავით
라틴어 David I
생몰 년도 미상 ~ 954년
재위 기간 889년 ~ 943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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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라제티 공국 2대 공작.

2. 생애

클라제티 공국 초대 공작 숨바트 1세의 아들로, 88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동생 바그라트 1세와 함께 클라제티를 분할했다. 그는 아자라와 니갈리를 맡았고, 클라제티 본토는 바그라트 1세가 맡았다.

900년 바그라트 1세가 사망했다. 당시 바그라트 1세에겐 3명의 아들 아다르나세, 구르겐, 아쇼트가 있었다. 콘스탄티노스 7세의 기록에 따르면 900년 바그라트 1세가 사망했을 때 아다르나세, 구르겐, 아쇼트가 아버지의 영지를 3개로 나눠가졌다. 그러다 구르겐이 곧 죽자, 아쇼트는 구르겐이 가지고 있던 클라제티의 무역도시 아르타누지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쇼트의 딸과 결혼했던 타오 공작 구르겐 2세가 아르타누지에 눈독을 들이자, 아쇼트는 동로마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도시를 제국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로마노스 1세 황제는 콘스탄스에게 칼디아 군대를 맡겨 아르타누지를 점거하게 했다.

졸지에 도시를 잃게 된 것에 분노한 다른 조지아 왕자들이 당장 아르타누지를 돌려주지 않으면 아랍인들과 손을 잡겠다고 위협했고, 로마노스 1세는 아랍과의 전쟁에서 조지아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계획을 취소했다. 그 후 구르겐 2세는 아르타누지를 점령하고 장인에게 자파케티 서부와 안자라를 명목상 영지로 삼게 했다. 그 후 아쇼트는 구르겐 2세의 궁정에서 조용히 지내다 사망했다. 한편 바그라트 1세의 장남 아다르나세 역시 구르겐 2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삼촌 다비트 1세에게 영지를 내준 뒤 수도자로 살았다.

이리하여 클라제티 전역을 단독 통치하던 그는 943년 아들 숨바트 2세에게 양위한 뒤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그 해에 사망히였다.

그에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이 있었는데, 제8대 타오 공작 아다르나세 4세와 결혼하여 바그라트 2세다비트 3세를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