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 (영어: Nikephoros Bryennios, 그리스어: Θεοδόσιος Μονομάχος)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마케도니아 테마 외국인 용병 지휘관 |
반란 대상 | 미하일 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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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의 반란자. 이사키오스 1세에 호응하여 미하일 6세를 타도할 음모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실명형에 처해졌다.2. 생애
아드리아노폴리스 출신의 동로마 장군으로, 대(大) 니키포로스 브리엔니오스의 아버지다. 1050년 마케도니아 테마의 외국인 용병들을 이끌고 수년 동안 발칸 일대를 약탈하던 페체네그를 섬멸했다. 1055년 초 콘스탄티노스 9세가 사망할 때 유력한 차기 황제 후보로 지목되었으나, 테오도라 황후를 지지하는 이들이 근위대를 움직여 황궁을 장악한 뒤 테오도라를 여황제로 선포되면서 무산되었다. 그는 이 일로 해임 및 추방되었다가 1056년 8월 31일 테오도라 황제가 사망한 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귀환했다. 그러나 후임 황제 미하일 6세는 그의 직위를 회복시켰지만 몰수된 재산을 돌려주길 거부했다.1057년 카파도키아에서 3천 명의 병력을 이끌고 수도로 돌아오라는 지시를 받들어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하지만 황제에게 불만이 있던 그는 이사키오스 콤니노스를 황제로 세우기 위해 수도로 진격할 기회를 엿보았다. 미하일 6세는 낌새를 눈치채고 사절을 보내 그에게 귀환을 명령했다. 그러자 그는 사절을 구타하고 감옥에 집어넣었다. 이에 장교들은 그가 곧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걸 눈치채고 즉시 사절을 감옥에서 구출한 뒤 그를 체포하여 실명형에 처한 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보냈다. 이사키오스는 자신을 추대하려던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대로 가면 자신 역시 체포될 것을 직감해 봉기를 일으켜 수도로 진격해 미하일 6세를 퇴위시키고 황위에 올랐다. 이후 그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