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초명 | 남건순(南健淳) |
족보명 | 남대순(南大淳) |
자 | 호언(浩彦) |
본관 | 영양 남씨[1] |
출생 | 1857년 2월 8일 |
경상도 의성현 점곡면 윤곡동 (현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윤이실마을)[2] | |
사망 | 1925년 2월 27일[3] |
경상북도 의성군 | |
묘소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윤이실마을 옥곡산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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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9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남규우는 그의 장남이다.2. 생애
남승순은 1857년 2월 8일 경상도 의성현 점곡면 윤곡동(현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윤암리 윤이실마을)에서 윤이실마을 입향조이자 정3품 통례원우통례(通禮院右通禮)를 지낸 이계(伊溪) 남몽뢰(南夢賚)의 8대 종손인 아버지 남원진(南元鎭)과 어머니 아주 신씨 신사주(申思周)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 2대 독자로 태어났다.그는 1919년 3월 18일 점곡면 사촌동에서 김태호(金太鎬)의 주도로 7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때 그는 62세의 고령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 장남 남규우에게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지시했다. 이에 남규우는 황금종과 함께 주민들을 모아 독립만세시위를 이끌었다. 이로 인해 아들과 함께 체포된 남승순은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옥하였다.
이후 1925년 2월 27일 자택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남승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