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김달하 金達河 | |
| |
출생 | 1868년 |
평안북도 의주군 | |
사망 | 1925년 3월 30일 (향년 67세) |
중국 베이징 | |
가족 | 배우자 김애란[1] 슬하 5남, 2녀 처제 김활란 |
1. 개요
일제강점기의 밀정, 친일반민족행위자.2. 생애
그는 1868년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 아래에서 밀정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서우학회는 평안남북도와 황해도 출신 관료·신지식층 집단이 설립한 애국계몽운동단체다. 을사조약(1905) 이후 이른바 일본 보호국 체제하에 합법·공개적으로 활동했다.
그래서 학교 설립과 잡지 발행 등 비정치적 영역 활동만 허용됐지만, 관서지방을 무대로 애국주의 열기를 고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달하는 서우학회 임원진이었다. 재정 총괄 직책인 ‘회계원’으로 선임됐고, 일반 회무의 의사결정 과정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단체 설립 이듬해에는 모든 업무를 지휘하는 ‘총무원’이자 부회장에 선출됐다.
기관지 발행에도 주도적이었다. 월간지를 냈는데, 전체 15개 호 가운데 6회분 글을 썼다. 기자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빈번하게 투고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주로 중화민국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가와 독립단체에 접근하여 정보를 캐내어 일제에 알려주거나 밀고하고, 이들을 회유했다. 그는 안휘군벌이자 중화민국 국무총리인 돤치루이의 비서로 잠입하기도 했다. 한국근대사료 데이터베이스
3. 밀정 발각
그는 김창숙을 은밀히 만나 귀국하여 경학원 부제학에 취임할 것을 제의하였다. 경학원은 일제가 유림들을 회유하고자 설립한 어용기관이었다. 그는 이미 조선총독부로부터 내락을 받았다고 덧붙혔다. 독립운동가들이 타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느라 궁핍한 실정을 파고들어 전향시키려는 고급 밀정이었다. 김창숙은 독립운동 진영에 김달하의 실체를 알렸다.4. 사망
1925년 3월 30일 박용만과 심산 김창숙 귀순공작을 시도한 혐의로 다물단의 이규학[2]과 이규준(李圭駿)[3]그리고 의열단 단원 이인홍(李仁洪)[4]과 이기환(李箕煥)[5]의 합작으로 피살 당한다.처형 장소는 김달하의 자택이다. 주소는 베이징 안정문 차련호동 서구내로 북문패 23호다. 식구 10여 명이 사는 규모가 큰 집이었다. 두 집행자는 권총으로 가족 구성원을 위협해 결박했고, 나머지 두 명은 그를 외떨어진 공간으로 이끌고 갔다고 한다.
처형 방법은 교살이다. 권총을 사용하면 총소리가 집 밖으로 울려퍼질 것을 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검 목에는 한 오라기 새끼줄이 감겨 있음이 발견됐다.
5. 여담
| |
1909년 촬영된 김달하와 김애란의 약혼 사진.[6] |
아무튼 김달하·김애란 부부는 결혼 뒤 5년 만에 베이징으로 이민 갔으며, 그곳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처갓집 식구를 불러들였다. 1921년 가을 장인, 장모, 처남 식구가 대거 베이징으로 이주했다. 사건이 일어날 때 그 집에는 김달하·김애란 부부가 낳은 두 딸 외에 전처 소생의 다섯 아들과 처갓집 식구까지 모두 12명이 살았다. 뒷날 미국 유학 이후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은 바로 김애란의 여동생이다.
6. 참고 문헌
1. 국사편찬위원회 편, 33책, 774쪽, 1972년.2. 臨時統監府總務長官事務取扱 統監府參與官 石塚英藏, ‘機密統發第536號, 金東億의 身分取調 照會에 대한 回答’, 1909년 4월8일.
3. ‘회록’, 제1호, 45쪽, 1906년 12월1일.
4. 支那特命全權公使 小幡酉吉, ‘公제92호, 獨立紀念日에서의 鮮人의 行動 報告의 件’, 1, 1921년 3월5일.
5. ‘尋訪왔던 괴청년, 一去후에 流血慘屍’, 1925년 8월6일치 2면. 박태원, 초판, 174~179쪽, 1947년 9월.
6. KBS, 2019년 8월20일.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1]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여성운동가인 김활란의 언니다.[2] 우당 이회영의 차남이자 이종찬 광복회장의 아버지[3] 독립운동가 이석영선생의 장남, 이규준의 공적정보[4] 김원봉의 의열단계의 인물들로 『황포군교동학록(黃埔軍校同學錄)』에 따르면 이인홍과 이기환 둘 다 황포군관학교 4기이다. 이인홍은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제 1지대에선 이집중이란 이름을 사용한다.[5] 황해도 개성 출신, 황푸군관학교 관리부 직원, 무정부주의자 전향, 샤먼 선전원 양성소 교관, 천영이송민단편련쳐 교관, 샤먼 태백삼상점에서 체포됨, 한국으로 압송[6] 가운데 소녀는 훗날 희대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는 김활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