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김경문(金敬文) |
이명 | 김영규(金永奎), 김용규(金容奎) |
생몰 | 1862년 ~ ? |
출생지 | 평안남도 중화군 동천면 삼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김경문은 1862년생이며 평안남도 중화군 동천면 삼리 출신이다. 그는 1908년경 박관실(朴官實)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했고, 음력 5월 총기로 무장하고 충남 목천군에서 군자금 수합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같은 해 8월 8일 체포되어 충남 병천군의 일본군 헌병분견소에 감금되었지만, 하재명(河在明) 등과 합세하여 탈출에 성공하여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피체되어 1910년 3월 10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0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경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