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3 13:37:25

김건우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이인인 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에 대한 내용은 김건우(쇼트트랙)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명이인인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에 대한 내용은 김건우(농구선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김건우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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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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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KBO 리그 신인왕

MBC 청룡 / LG 트윈스 등번호 28번
최정우(1982~1985) 김건우(1986~1994) 신동수(1995~1997)
LG 트윈스 등번호 81번
결번 김건우(1995~1997) 이순철(2001~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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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건우(金健友 / Gun-woo Kim)
생년월일 1963년 8월 30일
출신지 경기도 파주시
학력 봉천초-선린중-선린상고-한양대
포지션 투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1차지명 (MBC 청룡)
소속팀 MBC 청룡-LG 트윈스(1986~1993, 1997)
지도자 청담고등학교 감독 (2017~)

1. 소개2. 학창 시절3. 프로 시절4. 은퇴 이후5. 역대 성적

1. 소개

한국 프로야구 선수, 지도자, 해설가.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할 정도의 에이스 투수로 주목받았지만, 뜻밖의 교통사고와 이후에도 계속된 불운들로 인해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비운의 선수.

2. 학창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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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상고 시절의 김건우, 좌측은 박노준

선린상고 재학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하는 등 투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1980년대 초반 선린상고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 이었지만, 인기 면에선 정작 동급생인 박노준에게 밀려 2인자 자리에만 만족해야 했던 비운을 맛본 적이 있었다.[1] 1981년에는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선동렬[2], 조계현등과 차출되어 1981년 제1회 IBAF 청소년야구대회의 초대 우승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한양대학교로 진학한 이후 김건우는 투수보다는 타자로 활동하며 강한 어깨를 살려 주로 3루수를 보았고, 덕분에 고교시절 혹사당한 어깨가 많이 회복되면서 프로 초반 성공할 수 있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3. 프로 시절

파일:external/www.koreadaily.com/195911093.jpg

1986년 서울지역 신인 지명 때 OB 베어스MBC 청룡이 지명 우선권을 동전 던지기로 가렸고, 여기서 승리한 OB가 당시 신인 중 최대어였던 고려대학교박노준을 의기 양양하게 지명했다. 내심 박노준을 노리고 있던 MBC는 어쩔 수 없이 차선책으로 한양대의 김건우를 선택했는데, 1년 후 양측의 희비는 완전히 엇갈렸다.

계약금 2천 5백만원[3]에 MBC 유니폼을 입은 김건우는 애초 외야수로 기용할 계획 이었지만, 일본인 투수 코치이던 미즈타니 히사노부가 전지훈련 때 투수로서의 가능성을 간파하고[4] 김건우와 김동엽 감독을 설득하여 김건우를 투수로 전환시켰고, 결과는... 대박.

1986년 시즌 전 야구인들과 야구팬 대부분은 OB 베어스박노준을 신인왕 후보 0순위로 꼽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신인으로 당당히 MBC 선발진의 한 자리를 차지한 김건우가 청보 핀토스와의 정규시즌 홈개막전(선발 데뷔전)에서 1안타 완봉승[5]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연전연승을 거두며 맹활약을 보였다. 반면 박노준은 김성근 감독이 투타겸업을 시킨다고 했지만 투수도 타자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헤메기만 할 뿐이었고.

친구이자 라이벌인 그 둘의 그해 성적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김건우 37경기, 18승[6] 6패, 평균자책 1.81, 탈삼진 102개
박노준 33경기, 5승 6패 7세이브, 평균자책 2.28(투수)
17경기, 타율 0.173, 1타점(타자)

당연히 그 해 신인왕은 김건우의 차지였다. 다만 플레이오프 진출권 한장을 놓고 후기리그 막판까지 MBC와 OB가 치열한 다툼을 벌인 끝에 시즌 최종일인 9월 17일, OB가 롯데를 극적으로 꺾고[7] 플레이오프 진출을 결정지었는데 그날 구원승을 거둔 투수는 바로 박노준이었다. 김건우로선 플레이오프에 나설 기회를 놓친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듬해인 1987년, 김건우는 지난 시즌 무리한 탓이었는지 4월 26일 잠실 해태 타이거즈 전에서 어깨 부상을 당하며 초반에 선발 로테이션을 몇번 거르기도 했지만 복귀한 이후 2년생 징크스는 "그게 뭐임? 먹는거임?" 이라는 듯 지난 해와 같은 페이스의 쾌투를 보이며 후기리그 중반까지 12승을 거두는 괴력을 보였고, 이번에야말로 MBC를 가을야구의 문지방을 넘게 하는가 싶었는데... 그해 9월 13일 밤 대치동 우성아파트 앞에서 여자친구를 집으로 바래다 주려 횡단보도를 건너다 뺑소니 차량에 치여 양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8] MBC가 이 사건의 여파로 지난해에 이어 플레이오프 문턱에서 또 미끄러진건 논외로 하더라도, 김건우에겐 잔여시즌은 물론이고 선수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파일:김건우_LG.png
부상 후 타자로 전향한 시절의 김건우(좌측). 오른쪽은 베트콩 김인식 코치.

이후 수술과 재활을 거듭하며 약 2년을 보낸 끝에 김건우는 1989년 그라운드로 복귀 하였지만 예전에 마운드에서 보여준 위력은 온데간데 없었다. 다만, 그 해 9월 19일 태평양 돌핀스와의 동대문 홈경기에서 0-0이던 연장 10회말 1사 1, 3루에서 타자로 나와 끝내기 내야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그러나 MBC는 20~21일 경기에서 4-8, 1-2로 패했다).

이후 구단이 매각되며 LG 트윈스로 바뀐 후 김건우는 결국 1992년 타자로 전향하여 팀의 4번타자를 맡아 시즌 초반 맹타를 날리며 재기에 성공하나 싶더니, 그해 7월 빙그레 이글스 와의 시합 도중 1루수 장종훈과 충돌하면서 왼쪽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시즌 아웃 당하는 불운에 시달렸다. 이듬해인 1993년 시즌 부상에서 복귀하였지만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벤치 신세로 전락하며 그 해를 끝으로 쓸쓸히 유니폼을 벗고 이후 4년간 LG의 2군 투수 코치로 재임하였다.

그렇게 투수코치로 지내던 어느 날 훈련 중 시범삼아 공을 던졌는데 꽤 빠른 구속이 찍혔다고 한다. 2년간의 공백이 휴식이 되었던 것인지 부상 이후 잃어버렸던 구속이 돌아와 있었던 것,. 이에 고무받아 1997년, 최후의 전의를 불태우며 전격적으로 마운드 복귀를 선언했으나, 7경기 등판에 승패없이 평균자책 4.63이란 초라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끝내 유니폼을 벗고 말았다.[9] 그래도 그 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긴 했다. 현역 통산 투수로서는 94경기 등판, 36승 19패 3세이브, 평균자책 2.73의 기록을 남겼고 타자 통산 기록은 150경기 출장, 117안타, 13홈런, 60타점, 타율 0.255 였다.

그때 뺑소니 사고만 아니었으면 김건우는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을 명투수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것이 야구계에서의 중론이지만, 그래봤자 만시지탄(...).

4. 은퇴 이후

파일:attachment/김건우/c9.jpg

은퇴 후 김건우는 LG에서 코치로 재임하다 퇴단 후에는 트레이닝 센터를 운영하며 부업으로 야구해설[10]을 하기도 했으며, 2010년 부터는 KBO의 운영위원을 맡았고, 강동구 리틀 야구단의 감독으로 재직하며 유소년 야구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2017년 3월 창단한 평택시 청담고등학교 야구부창단 감독으로 취임했다.

김건우의 투수훈련법 이란 책을 저술한 바 있는데, 동호인 및 아마추어 사이에서 읽으면 140km을 던질 수 있는 책으로 더 유명하다. 그렇다고 진짜 140km을 던질 수 있는건 아니지만 그만큼 아마추어 야구의 바이블로 통할 정도로 충실한 내용이라는 의미. 심지어 절판된지 오래 되었음에도 복사본을 통해 매뉴얼로 사용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여담으로 카드깡야구 매니지먼트 게임 프로야구매니저 덕분에 본인만 모르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업데이트를 통해 유명선수들의 커리어하이 시절의 능력치를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발급되었는데, 김건우가 1994년도에 뛴 기록이 없음에도 94년도에 사용 가능하게 발급이 된 것이다.[11] 안 그래도 강력한 덱인 94년도 LG에 김건우가 추가되면 선발진이 모두 10성으로 채워지는 희대의 사기덱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유저들은 실제 기록을 찾아내어 한 게임도 출전한 적 없는 94년도 김건우 카드 적용을 취소해달라며 반발했고 우여곡절 끝에 94년도에서 김건우 커리어 하이카드가 빠지게 되었다. 반대로 잔뜩 기대하던 LG 유저들은 더 격하게 항의하며 이번에는 거꾸로 14송지만 커리어 하이 카드를 삭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5. 역대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6 MBC 청룡 37 229⅓
(5위)
18
(4위)
6 0 0 1.81
(5위)
170 71 101
1987 26 163⅓ 12 7 0 0 2.64 170 54 56
1988 1군 기록 없음
1989 10 38⅓ 3 2 2 0 3.76 40 15 13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0 LG 트윈스 12 37⅔ 2 3 1 0 6.21 47 21 13
1991 2 5 1 1 0 0 9.00 5 6 2
1997 7 11⅔ 0 0 0 0 4.63 11 4 11
통산 6시즌 94 485⅓ 36 19 3 0 2.73 443 171 197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6 MBC 청룡 10 34 .147 5 2 0 0 3 2 0 1 .206 .17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2 LG 트윈스 54 196 .276 54 8 1 8 30 28 2 16 .449 .327
1993 86 229 .253 58 8 0 5 27 20 1 18 .354 .306
통산 3시즌 150 459 .255 117 18 1 13 60 50 3 35 .383 .306


[1] 그래서인지 둘은 고교 동창에 팀메이트, 그리고 라이벌 관계 였지만 정작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2] 이때 선린상고 동기였던 박노준은 차출되지 않았는데 이유는 1963년생인 선동렬, 김건우와 달리 박노준은 1962년 생으로 1살이 많아서 나이제한에 걸렸기 때문.[3] 박노준은 김건우의 두 배인 5천만원을 받고 OB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결과는(...) 김건우가 계약 조건이 너무 박하다며 투덜대자 MBC 조광식 단장은 "박노준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면 시즌 후에 계약금을 더 주마"라고 조건을 걸었고, 김건우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며 입단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그 해 김건우가 신인왕을 따내자 MBC 구단은 2천만원을 추가 지급하며 약속을 지켰다.[4] 당시 김건우가 투수로 전환하는데 비화가 있었으니, 입단 후 첫 전지훈련 때 배트를 10자루만 들고 갔었는데(배트를 포함한 개인 경기용품은 선수 자신이 자비로 충당하던 시절이었다) 며칠만에 전부 부러뜨렸고 팀 선배인 김재박에게 빌린 2자루 마저 부러지면서 타격 연습을 못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투수조에 끼어 롱 토스 연습을 하던 차에 미즈타니 코치가 "어깨가 정말 강하다. 잘만 키우면 크게 되겠다" 라고 감탄하며 강력하게 김건우의 투수 전환을 주장하였고, 남은 전지훈련 기간 김건우는 투수로 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즌 개막 후 데뷔전 에서 대뜸 1안타 완봉승을 거두며 김건우는 완전히 투수로 돌아서게 되었다.[5] 경기 당일 아침 김동엽 감독은 김건우를 불러서는 "너 밤새 긴장할까봐 일부러 지금 얘기해 주는 거다. 김건우, 너 오늘 선발이야" 라고 갑작스럽게 등판을 통보했다.[6] 신인 최다승 신기록이었다. 1989년 태평양의 박정현이 19승을 거두면서 이 기록은 깨졌지만, 당시 박정현은 1년 앞서 데뷔했기 때문에 순수 신인으로서의 최다승은 계속 김건우가 갖고 있었다. 2006년에 한화 류현진이 김건우와 타이기록을 수립하였다.[7] 최동원의 호투로 9회초 까지 롯데가 3-1로 앞서고 있었으나 9회말 김형석의 극적인 2점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고, 이어서 신경식이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날렸는데 망연자실한 최동원이 커버플레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3루수 뒤로 송구가 빠지면서 신경식이 그대로 홈까지 파고들어 끝내기 득점을 올렸다. 최동원이 만약 그날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면 선동열도 이루지 못한 3년 연속 20승 이란 대기록을 세울 상황이었다.[8] 그 때 여친도 같이 차에 치였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발가락 골절상만 입었는데, 오히려 더 크게 다친 김건우가 땅바닥을 기어오며 괜찮냐고 물었다 한다. 이에 감동을 먹었는지 그 여친은 지금 김건우의 아내로 같이 살고 있다.[9] 정작 자신은 자신이 쓴 트레이닝 교본에서 이때 147km을 찍었다고 자위하는 내용의 글을 썼다. 덤으로 요즘 젊은 투수들이 너무 변화구 중심의 피칭을 한다고 디스를 했다...[10] LG 트윈스의 자체 중계 해설가를 거쳐 엑스포츠로 이직하였다. 엑스포츠 시절에는 엘빠질이 심해서 타팀 팬들에겐 무한까임을 당한 바 있다(...) LG 트윈스의 자체 중계를 하던 시절에는 구단의 공식 홈페이지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였다.[11] 커리어-하이 카드를 쓰려면 해당 선수가 해당 연도에 한 게임이라도 출전한 기록이 있어야 원하는 연도에 넣어서 사용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