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16:29:03

글렌 커티스

<colbgcolor=#000,#000000><colcolor=#fff,#dddddd> 글렌 커티스
Glenn Curtiss
파일:1000140624.jpg
본명 글렌 해먼드 커티스
Glenn Hammond Curtiss
출생 1878년 5월 21일
미국 뉴욕주 해먼스포트
사망 1930년 7월 23일 (향년 52세)
미국 뉴욕주 버팔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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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기업인, 파일럿
자녀 10명

1. 개요2. 생애3. 라이트 형제와의 특허권 분쟁

1. 개요

미국의 기업인, 파일럿.

2. 생애

뉴욕주 해먼스포트에서 태어났고 코닥사에서 일을 하다가 자전거, 오토바이쪽으로 관심을 가져 각종 경주대회에 출전해 기록을 세웠다. 이후 1904년 비행기에 관심을 가져 AEA소속 테스트 파일럿이 되었다. 1500m 상공을 비행하기도 했다.

1910년 해군 소속 시어도어 G. 엘리슨에게 비행기 교육을 전수했고 엘리슨은 최초의 해군 항공대 파일럿이 되었다. 이후로도 해군과의 관계는 지속되어 해군사관학교에서 파일럿을 육성하기도 했고 1차대전 당시 대서양을 횡단하기도 했다.

1909년 또다른 항공 기술자 오거스트 헤링[1]과 합작하여 항공 전문 기업 헤링 커티스를 차렸고, 1920년애는 플로리다로 이주해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했으나, 동업자였던 오거스트 헤링에게 소송을 당해 법적다툼을 진행 중 맹장염이 발병하여 1930년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사망 직전 커티스사가 경쟁자였던 라이트 형제에게 넘어가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2]

3. 라이트 형제와의 특허권 분쟁

라이트 형제는 1906년에 3축 기술[3] 로 특허를 확보했다. 그러나 커티스는 이를 무시, 특허료를 내지 않고 1909년에 비행기를 판매했다. 이에 라이트 형제가 소송을 제기했고, 형제는 1913년에 1심에서 승소했고 1914년 항소심에서도 승리했다.

이 같은 결과는 라이트 측과 커티스 측의 견해 차이로 부터 비롯되었다. 형제는 비행 기술을 자신들이 특허를 가진 고유한 기술이라 생각했지만, 커티스는 전반적인 이론에서 나온 기본적인 발상은 특허가 아니라고 생각했다.[4]

특허 분쟁을 피하기 위해 커티스는 라이트 형제의 3축 조합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비행하겠다 선언, 실제로 1910년 LA 항공 대회에서 비행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시도로 대중은 커티스가 라이트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라이트 형제는 소송 과정에서 큰 부담을 겪었다. 특히 윌버 라이트는 소송중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는데, 소송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건강에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또한 라이트 형제와 커티스의 특허 분쟁은 미국 항공 산업 발전을 몇 년간 지연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

끝내 특허 분쟁은 라이트 형제의 승리로 끝났으나 오빌은 이때의 분쟁으로 커티스에게 앙심을 제대로 품었는지 훗날, 부도로 휘청이던 커티스 사를 사들이면서 복수하게 된다.
[1] 일부에서는 라이트 형제보다 먼저인 1898년 동력비행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당시 그의 비행기에 달린 엔진의 추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비행이 아닌 글라이딩으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다.[2] 다만 1920년에 플로리다로 이주하면서 커티스 항공의 주식을 모두 처분했기 때문에 금전적 손실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3] 수직타,수평타,날개 비틀기[4] 다시 말해, 라이트 측은 자신들의 고유한 기술에서 나온 응용물들이 모두 특허권에 해당된다고 생각했고, 커티스는 그 반대로 생각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