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권경대(權景大) |
생몰 | 1875년 ~ 몰년 미상 |
출생지 |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오리리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권경대는 1875년생이며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오리리 출신이다. 그는 1908년 5월부터 이화집(李化執)ㆍ오경화 등 의병 수 명을 모집하여 박기장(朴己長)ㆍ여국명(呂國明) 의진의 권성삼 등과 함께 경상도 일대에서 활약했다. 1908년 음력 6월 10일경 오경화 외 의병 8~9명을 이끌고 경남 합천군 숭산면 수전동 문진사에서 군자금으로 금 30관문(貫文)을 모집했으며, 1908년 음력 8월 5일에는 권성삼 외 8~9명의 의병을 이끌고 경북 성주군 청파면 우수동에 거주하는 손선달(孫先達)의 집에서 군자금으로 한전(韓錢) 9관 300문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이후 1908년 9월 3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 및 폭동죄로 종신징역을 받고 공소했으나, 같은 해 10월 31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2년 칙령 23호에 의해 징역 12년, 1914년 칙령 104호에 의해 징역 9년, 1915년 칙령 205호에 의해 징역 8년 2일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