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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왕국 6대 군주 Gunthamund | 군타문드 | ||
제호 | 한국어 | 군타문드 |
라틴어 | Gunthamund 또는 Gunthamundus | |
생몰 년도 | 450년경 ~ 496년 | |
재위 기간 | 484년 12월 23일 ~ 49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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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반달 왕국 6대 군주. 정교 박해 정책을 완화하고 내치에 전념했다.2. 행적
반달족이 북아프리카에 정착하는 걸 이끌어낸 가이세리크의 넷째 아들 겐토의 아들이다. 아버지 겐토는 용맹한 전사로서 가이세리크의 전쟁에서 활약했다. 특히 468년 본 곶 해전에서 서로마-동로마 연합 함대 궤멸에 한 몫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가이세리크보다 일찍 죽었고, 그는 가이세리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후네리크가 잠재적인 왕위 경쟁자들을 숙청할 때 은거했다. 484년 후네리크가 사망했을 때, 그가 살아남은 왕실 구성원 중 나이가 가장 많았기에 왕으로 선포되었다.그는 왕위에 오른 뒤 후네리크에 의해 추방된 정교 주교들이 교구르 돌아올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산타길레오 대성당을 정교 예배로 되돌려놓았다. 이후 경제를 회복하는 데 공을 들였고, 왕국을 잇따라 침략하는 베르베르를 상대로 수차례 원정군을 파견했다. 원정군은 베르베르인들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지만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491년 오도아케르와 테오도리크 대왕이 이탈리아의 패권을 놓고 맞붙은 틈을 타 시칠리아를 공략하고자 시칠리아 섬으로 파견했으나, 곧 이탈리아의 패권을 장악한 동고트 왕국에 의해 축출되었다.
496년 사슴 사냥을 하던 중 급사했고, 동생 트라사문드가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