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16 16:57:34

구석의 노인

Old Man in the corner

파일:external/images.betterworldbooks.com/The-Old-Man-in-the-Corner-9780486440484.jpg

엠무스카 옥시 남작부인(Baroness Emmuska Orczy)[1]이 쓴 추리소설탐정역 캐릭터. 셜록 홈즈가 인기를 끌 무렵에 등장한 캐릭터로 옥시 남작부인이 추리소설을 집필할 생각을 하게 된 계기부터가 합승마차 타고가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오도가도 못하는 와중에 눈에 들어온 셜록 홈즈 신작 홍보 포스터였다.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라는 앤솔로지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들이 포함되기도 했다.

오늘날 안락의자 탐정 캐릭터의 효시이자 대표적인 캐릭터로 꼽힌다. 추리과정에서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일은 없으며 신문 기사를 읽고 법정에 가서 피고인의 신문(訊問)을 보는 게 전부다. 하지만 직접 피해자 주변을 조사할 때도 있고 사건지역이 런던에서 먼곳에 있어도 재판은 빼놓지 않고 참관하며 심문과정을 지켜보며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마냥 안락의자 탐정이라고 하기 힘든 면모도 있다. 사건 이야기를 할때 쉴새 없이 끈을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이상한 매듭을 만드는 버릇이 있다.

첫화에서 오만하게 선언한 말이 '범죄에 수수께끼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이 풀려고 나선다면.'인데, 여느 추리소설과 진행방식이 좀 다르다. 엄밀히 말해 추리물로서의 완성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양차 대전 전후 추리소설의 황금기(The golden age) 작품들보다 조금 먼저 나온 시리즈인데[2] 추리면에서 후대 작품들에 비해 볼 게 없다. 트릭 재탕이 많고 배경과 인물만 다르지 동기와 양상이 거의 동일한 자기복제 작품들도 여럿 있다.

<펜처치 스트리트 수수께끼>, <리슨 그로브 수수께끼>, <퍼시 스트리트의 기묘한 죽음>, <폴턴 가든스 수수께끼>, <황무지 사건>은 공통적으로 범인이 피해자로 위장하는 트릭을 사용한다. 여기까진 단순한 트릭 돌려막기로 이해한다치자. 그런데 <더블린 미스터리>와 <메이다 베일의 구두쇠>는 두 형제중 한 명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유언장을 꾸며 재산을 가로채는데 성공하나 병으로 젊은 나이에 급사해 피해자인 다른 형제가 자기몫이었던 할 재산을 돌려받는 전개가 동일하다. <반즈데일 장원의 비극>과 <비숍스 로드의 기묘한 비극>은 범인이 피해자의 조카냐 아들이냐 차이만 있을 뿐 피해자의 사인, 범행동기, 피해자의 시녀가 범인의 아내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점이 동일하다. <상선 아르테미스 호의 위난>과 <진주 목걸이 사건>은 중요한 물건을 해외로 전달하라는 임무를 받은 군인이 이 물건을 노린 협박범의 협박에 시달리다 아내, 처남과 협력해 범죄를 가장해 물건을 안전하게 보내고 협박범이 다시는 얼씬도 못하게 만드는 전개가 동일하다. 물건이 군용지도와 진주목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인은 그저 식당 한켠에 앉아서 여기자에게 진상을 밝혀줄 뿐이라서 범인들은 처벌받지 않는다.[3] 그 진상도 명확히 물적 증거가 제시되는게 아니라 정황증거와 진술의 허점을 바탕으로 노인 혼자 '이런 멍텅구리들. 사실은 이렇게 된 거야.'하고 썰을 푸는 거라서 정말 그 추리가 맞는지 알 수 없다. 당연히 앨러리 퀸이나 반 다인처럼 독자가 추리를 해나갈 수도 없다.[4]

작중 왓슨 역을 맡은 폴리 버튼이라는 여기자가 있는데, 사실 둘 사이는 홈즈와 왓슨처럼 친밀하지 않다. 버튼이 식당에 식사와러 왔다가 노인쪽에서 갑자기 말을 걸어와 알게 된 사이인데 버튼은 철저하게 듣기만 하는 입장이다. 노인이 일방적으로 내뱉는 진상을 듣고 황망해 하거나, 노인에게 사건에 대한 무지를 지적당하는게 전부다. 유명인들 인터뷰도 여러번 해본 이름 꽤나 알려진 신문기자인데 사건 이야기로 운을 떼는 것도, 사건과 관련인들에 대한 설명도 전부 노인이 하는 경우가 많아서 신문기자라면서 신문을 안 읽는 모양이라는 비꼬는 감상도 나온다.

직접적인 등장인물은 노인과 폴리 버튼 뿐 이지만 노인의 사건설명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아서 잉글우드가 있다. 실력이 굉장히 뛰어난 변호사로 치밀한 증거수집과 의표를 찌르는 언변으로 맡은 피고인들을 무죄로 이끈다.

첫 등장 때 초조하고 불안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1권 마지막 사건 퍼시 스트리트의 기묘한 죽음과 3권 마지막 사건 황무지 사건에서 이상한 매듭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되어 그가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5] 물론 확증은 없지만 노인이 범인이라면 이 수수께끼의 노인의 정체가 드러나게 된다. 본인이 '영리한 범죄자들에 더 공감한다'하고 얘기하기도 했고.

구석의 노인 시리즈는 1권 《구석의 노인The Old Man in the Corner》(단편 12개), 2권 《미스 엘리어트 사건The Case of Miss Elliott》(단편 12개), 3권 《풀 수 없는 매듭Unravelled Knots》(단편 13개)에 단행본 미수록 단편 글래스고 수수께끼[6]까지 총 38편으로 구성되어 있다.[7] 단행본 출간 순서가 연재 순서와 맞지 않는 특이한 케이스인데 1901년 첫번째 에피소드인 펜처치 거리의 미스테리를 비롯한 6편을 <로얄 매거진>에 투고하고 인기를 얻자 같은 해 6편을 추가로 투고했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들은 한참 동안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다가 1909년에야 런던 그리닝 사에서 《구석의 노인》이란 제목으로 간행된다.(원색의 노인 초상화를 한복판에 배합한 파란색 장정), 그보다 전인 1905년 <로열 매거진>에 연재된 제2 시리즈 《엘리어트 여의사 사건》이 <T 피셔 앤윈>사에서 출간되었다.(ABC숍에서 마주앉은 폴리와 노인이 들어간 빨간색 장정). 1909년 미국진출에 성공해 <도드 미드>사에서 구석의 남자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마지막 권인 《풀수 없는 매듭》은 시간이 꽤 지난 1925년 <해친슨>사에서 간행되었다.

국내에선 동서문화사(일어 중역)와 엘릭시르에서 《구석의 노인 사건집》, 왓북(E북)에서 《구석의 노인》이란 제목으로 번역본을 출간했으며 20세기 초 추리소설 황금기에 활동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1권 에피소드 5개가 실려있다.

3개 번역본 모두 단권에 12~14개의 에피소드만 선정해 수록했고 겹치는 에피소드가 존재해 38편 모두 번역되지 못하고 30편만 번역되었다. 동서문화사판은 수록한 14편의 에피소드를 전부 1, 2권에서 골랐는데(1권 5개, 2권 9개) 1977년 도쿄소우겐사(東京創元社)에서 후카마치 마리코(深町 眞理子) 번역으로 1~2권 에피소드 13개(1권 4개, 2권 9개)를 담아 출간한 《구석의 노인의 사건부(隅の老人の事件簿)》에 1권 에피소드인 <더블린 미스터리> 하나 끼어넣어 번역했다.[8] 끼어넣은 <더블린 미스터리>는 다른 13개를 번역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했거나 중역본이 없다고 대충 번역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다른 13개 에피소드에선 노인이 폴리에게 하는 말을 ~했소, ~것이오 하는 점잖은 높임말을 쓰는데 유독 이 더블린 사건에서만 갑자기 노인이 폴리에게 반말을 한다. 그러더니 중간 중간에 ~했소하는 높임말이 섞여 나오고 중반부터 다시 높임말로 돌아간다. 한 단편에서 한 사람이 길지도않은 시간에 동일인에게 말을 하는데 높임말과 반말을 왔다갔다 한다.

엘릭시르판은 동서문화사판과의 중복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수록한 13편 중 8편을 3권에서 뽑았다.[9] 구석의 노인 시리즈 2, 3권은 폴리의 1인칭이고 1권은 출판하며 1인칭이었던 걸 3인칭으로 개작했는데 엘릭시르 판본은 연재본을 기준으로 삼은 것인지 1권 에피소드들도 전부 폴리 버튼 1인칭으로 번역했다.

2022년 시점에 판매중단된 왓북 역본은 시리즈 1권을 통째로 번역한 역본으로 3인칭에 원문의 에피소드 배열과 단편 하나당 2개씩 존재하는 소제목들까지 고스란히 옮겨 가장 원본에 충실한 번역을 했다. 결국 한국어로 온전히 읽을 수 있는 구석의 노인 시리즈는 1권 뿐이다. 2권에서 2편, 3권에서 5편에 미수록 에피소드가 아직 번역되지 못한 상태다. 2~3권 정도의 시리즈물로 발매해야 전편 수록 가능하겠지만 영어권에서도 잊혀져가는 고전 추리물이 국내에 수요가 있을 리가 없으니 완역은 요원하다.[10]

이 작가는 본래 추리소설가가 아닌 역사 모험소설가였기 때문에 추리가 약한 것은 어쩔 수 없고, 서양에서도 추리 그 자체보다는 후대 추리물에 영향을 미친 캐릭터리티[11]의 확립에 대해서 기억될 따름이다.
<티비츠>라는 1페니짜리 주간지가 1880년 창간되었다. 이 주간지는 이름 그대로 여기저기서 모아온 '재미있는 화제'를 독자에게 던져주었는데, 이것이 크게 히트하자 재빨리 모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시릴 피어슨의 <피어슨스 위클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따라서 나는 평범한 사람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잘 안다."
이것이 <티비츠>를 창간한 조지 즈라는 사나이의 신조였다. 1891년 그는 주간지의 수익으로 좀더 규모가 큰 출판에 손을 댔다. 미국에서 그 무렵 유행한 잡지 <허퍼>며 <스크리브너> 등을 참고로 하여 페이지마다 거의 그림이나 사진을 싣고 누가 보든 재미있는 기사를 가득 실으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젊은 편집자 글린호 스미스드를 중심으로 4개월에 걸쳐 사우샘프턴 거리에 있는 즈의 사무실은 바쁘게 움직였다.
이리하여 1891년 1월 스트랜드 거리의 사진을 표지에 실은 <스트랜드 매거진>이 창간되었다. 모험소설을 비롯하여 유명한 배우며 오페라 가수와의 인터뷰 및 유명 인사의 가정 탐방기 등 어쩐지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보는 주간지를 생각케 하는 내용이었는데, 맨 처음 한 달 동안 30만 부를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창간된 지 얼마 안 되는 이 잡지에 7월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였다.
연재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트랜드 매거진>은 부수가 50만 부로 늘었다. 작품에 빛을 더해준 시드니 파제트의 삽화도 호평을 얻은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이렇게 되자 다른 잡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홈즈와 같은 탐정이 나오고 잡지마다 남에게 뒤질세라 홈즈와 같은 길이(대부분 5천 단어 이내의 단편이었다)의 이야기를 다투어 싣게 되었다.
여기에 등장한 명탐정들이야말로 바로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이었다.
이륜마차가 달리고 가스등이 켜져 있는 빅토리아 왕조 끝 무렵부터 에드워드 7세 시대의 런던을 무대로 갖가지 개성을 지닌 명탐정들이 차례차례 태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바다 건너 유럽이나 미국에까지도 파급되었다.
그 가운데 'ABC 숍' 한구석에 앉아, 온 런던의 기괴하고 풀기 어려운 사건을 산뜻하게 해결해 보이는 기묘한 노인이 있었다. 이 노인이 바로 '안락의자 탐정'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 에무스카 바로네스 오르치(Emmuska Baroness Orczy)가 창조해 낸 명탐정이다. 오르치는 그 무렵 이런 라이벌들을 만들어 낸 작가 가운데 오직 한 사람뿐인 여류작가이다.
오르치는 1865년 헝가리의 타르나 에르슈의 전통 있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 집안의 역사를 더듬으면 노르망디 공 윌리엄 1세의 영국 정복(1060년)보다 2백 년쯤 전 국민적 영웅이라고 일컬어진 앨퍼드와 그 휘하 기사들에 의한 헝가리 창건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그녀는 작곡가 겸 지휘자로서 알려진 휄릭스 오르치 남작과 바스 백작 집안 출신인 엠마 오르치 사이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바그너와 리스트, 구노, 마스네 등 아버지와 친히 사귀는 음악가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1867년 농업 기계를 들여오는 데 분개한 집안의 소작인들이 농작물이며 헛간 등 온 농장에 불을 질렀다. 오르치의 가족들은 난리를 피하여 부다페스트에서 브뤼셀로 옮겨 살게 되었다. 그녀는 브뤼셀과 파리에서 교육을 받은 뒤 1881년 런던의 헤절리 미술학교에 입학했다. '15살까지 그녀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고 하워드 헤이클래프트는 《20세기 저술가 사전》과 《오락으로서의 살인》에서 쓰고 있으며, 스타인블래너와 펜츠터가 함께 엮은 《미스터리 백과사전》 및 버던과 테일러가 공동으로 만든 《범죄 카탈로그》에서도 그렇게 씌어 있으나, 단 한 사람 휴 그린만은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 제1집 해설에서 '그녀가 8살 때 가족들은 런던으로 옮겨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미술학교에서 오르치는 영국국교회 목사의 아들 몬터규 퍼스토를 만나 1894년에 결혼했다. 그로부터 5년 뒤 두 사람은 존 몬터규 오르치 퍼스토라는 외아들을 얻었다. 그는 뒷날 스위스의 로잔에서 영어 교사가 되어 어머니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만든 《빨강 별꽃》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을 흉내낸 존 블레이크니라는 필명으로 소설도 썼다. 오르치는 남편과 함께 삽화가 들어 있는 어린이 책을 썼다. 첫작품 《매혹적인 고양이(The Enchanted Cat)》는 1895년 결혼 다음해에 출간되었다. 1890년대 끝 무렵부터 그녀는 단편을 쓰기 시작하여 대중 잡지에 발표하였다. 1901년 <로열 매거진>에 처음으로 <구석의 노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을 불멸의 것으로 만든 것은 다음해인 1902년 남편과 함께 쓴 《빨강 별꽃》이었다. 런던의 적어도 12군데 저명 출판사로부터 이 작품을 출판하고 싶다는 제의가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사정인지 이 작품이 출판된 것은 1905년이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이것을 무대에 올리기로 계획하여 같은 이름의 희곡을 만들어 1903년 노팅엄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그 뒤 1905년 1월 5일부터 런던의 <뉴 시어터>에서 프레드 테리와 줄리아 닐슨 주연으로 막을 올리자 크게 성공했다. 그리하여 4년 동안 장기 공연을 하게 되었다. 첫날의 성황 소식을 들은 출판사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무슨 일이 있어도 원작을 출판하게 해달라고 굉장한 소동을 벌여 결국 <그리닝>사로 낙착되었다. 그 뒤 여러 번 영화화되었으며 소설도 속편이 간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5년 동안 몬테카를로에 살았으며 그곳에서 영주하려 생각하고 있었는데, 1943년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데다 별장이 영국 공군의 폭격을 받아 그녀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헨리 언 템즈의 집에서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다 1947년 11월 12일 세상을 떠났다.
오르치는 '구석의 노인'을 창조한 작가로서 잊을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빨강 별꽃 시리즈> 작가로서 기억되고 있다.
《빨강 별꽃》은 영국 국민 문학으로서 오랫동안 계속 읽히고 있다. 작자 자신도 자서전 《인생이라는 사슬의 고리(Links in the Chain of Life)》 가운데 대부분을 《빨강 별꽃》에 얽힌 추억에 대해 쓰고 있으며, 《구석의 노인 사건집》에 대해서는 두 번, 《런던 경시청의 몰리 부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자서전에 의하면 《구석의 노인 사건집》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은, 그녀가 탄 런던의 합승마차가 짙은 안개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고 한다. 어둑어둑한 어둠 속에 한 장의 종이가 붙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셜록 홈즈의 최신작 선전 포스터였다. 이 순간 그녀는 연속물 미스터리소설을 쓰려고 결심했다고 한다. '셜록 홈즈를 전혀 연상시키지 않는 독자적 개성을 지닌 탐정'을 만들어내야겠다고.
이리하여 <펜처치 거리의 수수께끼>를 비롯한 6 편이 1901년 <로열 매거진>에 실려 호평을 얻자, 다시 6편이 그 다음해에 같은 잡지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단행본으로 나온 것은 1909년이었다. 1905년, 그동안 <로열 매거진>에 연재된 제2시리즈가 한 걸음 먼저 《엘리어트 여의사 사건(The Case of Miss Elliott)》이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 없으며, 엘러리 퀸도 '나중에 씌어진 작품집이 처음에 씌어진 것보다 일찍 간행된 유일한 예'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따라서 갖가지 오해가 생겨 《엘리어트 여의사 사건》이 미국에서는 간행되지 않았던 점을 들어 나중에 나온 《구석의 노인(The Old Man in the Corner)》이 틀림없이 제1단편집이라고 믿었던 모양이다. 헤이클래프트도 구석의 노인 시리즈는 이것이 제1단편집이고 다음에 나온 단편집(사실은 세 권째임) 《풀 수 없는 매듭》이 제2단편집이라고 여기저기에 쓰는 형편이었다.
《엘리어트 여의사 사건》은 런던의 <T. 피셔 앤윈>사에서 1905년 출판되었다. 표지는 'ABC 숍'의 테이블에 마주앉은 구석의 노인과 폴리 버튼이 도안된 빨강 크로스 장정으로, 전편이 폴리 버튼의 1인칭으로 엮여 있으며, 귀찮은 이야기지만 서지학적으로는 이것을 제1단편집으로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구석의 노인 사건집》은 런던 <그리닝>사에서 1909년에 간행되었다. 구석의 노인의 원색 초상화를 한복판에 배합한 파란색 크로스 장정.
같은 해 미국에서도 뉴욕 <도드 미드>사에서 출판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목이 《구석의 남자》로 바뀌어 있다. 표지를 장식한 H.M. 블록의 그림이 뛰어나 이것도 빼기 어렵다. 그리고 도로시 세이어스에 의하면, 그녀가 본 프랑스 판에는 엘러리 퀸을 흉내낸 독자에 대한 도전이 삽입되어 있었다고 한다.
《구석의 노인 사건집》은 모두 3인칭으로 씌어져 있다. 전체가 36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다루어진 사건은 12건. 하나의 이야기가 두세 장으로 나뉘어 있어 차례만 보면 장편으로 착각하기 쉬운 번거로운 구성이다. 그리하여 본 책에서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 사건 단위로 묶었다. 이것도 일단 제2단편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풀 수 없는 매듭》은 <해친슨>사에서 1925년에 간행된 제3의, 그리고 마지막 단편집으로 13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구석의 노인은 미스터리소설 사상 그 예가 적은 이름없는 인물이다. 더실 해미트의 콘티넨탈 오프 같은 예도 있지만 해미트의 탐정과는 대조적으로 자아가 그대로 드러나 강렬한 개성을 서로 다투는 고전 미스터리의 명탐정 가운데서는 아주 드문 존재라 해도 좋을 것이다. 본명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력이며 정체도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그 생김새와 기묘한 버릇뿐. '창백한' '말라빠진' '이상한 엷은 빛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허수아비 같은 노인'인 것이다. '옅은 물빛 눈'에 '큼직한 뿔테 안경'을 쓰고, '헐렁한 트위드 양복'을 입었으며 '커다란 주머니'에는 '사고(思考)의 부속물로서 절대로 필요한 끈'이 들어 있다. 그것을 '길고 뼈만 앙상한 희미하게 떨리는 손가락'으로 '맸다 풀었다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복잡한 매듭'을 만드는가 하면,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서 '지금까지 만든 매듭을 천천히 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매듭은 '항해술 교사도 무안하리만큼 복잡'하다고 한다. 조끼 주머니에는 언제나 '커다란 은시계'가 들어 있고 머리에는 '우스꽝스러운 모자'가 얹혀져 있다. 'ABC 숍'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치즈케익을 조급하게 입으로 나르며 무표정한 늙은 수고양이처럼 우유를 마신다. 처음에는 '거만한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차츰 흥이 나면 '높은 쇳소리'로 마구 떠들어댄다.
이 노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대충 이 정도이다.
구석의 노인은 <펜처치 거리의 수수께끼>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갑자기 모습을 나타낸다. 언제나 정해놓고 폴리 버튼이 앉는 테이블에 앉아서 강제로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사건 이야기를 하면서 해결을 제시하고 사라져버린다.


[1] 구석의 노인 외에도 정체를 숨기고 이중생활을 하는 히어로 타입의 모태가 된 스칼렛 핌퍼넬로도 유명하다.[2] 황금시대에 활동한 작가들로는 반 다인, 존 딕슨 카, 아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 등이 있다. 이들 모두 일본의 본격 미스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가들로 크리스티를 제외하면 21세기엔 일본과 한국에서 더 유명하다.[3] 예외도 있다. 3권 첫번째 에피소드 카키색 튜닉의 미스테리에서는 경찰에 결정적인 증거물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경찰은 조언을 받아들였고 궁지에 몰린 범인은 사고를 가장해 자살한다.[4] 이마저도 작가의 다른 작품인 스코틀랜드 야드의 레이디 몰리와 비교하면 양반이다. 레이디 몰리는 주인공 직업이 경찰임에도 왜 그런 추리를 하고 범인을 알아냈는지조차 나오지 않는다. 농담아니라 정말 주인공이 설명을 안해준다. 추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무당놀음이다.[5] 1권 마지막 에피소드 퍼시 스트리트의 기묘한 죽음에서 폴리가 노인이 범인임을 짐작한 그 순간 노인은 어디론가 사리진다. 그리고 폴리는 동료 기자와 결혼했으며 두 번 다시 노인을 보지 못했다는 언급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다 3권 첫번째 에피소드 카키색 군복의 미스테리에서 20년만에 다시 만났다는 설정으로 재회하고 3권 마지막 에피소드 황무지 사건에서 역시 매듭을 통해 노인이 범인임을 깨닫는 순간 노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가끔씩 ABC숍을 찾았으나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독백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퍼시 스트리트의 기묘한 죽음 마지막 부분에서 분명히 폴리가 동료기자 리처드 프로비셔와 결혼했다고 했는데 3권에선 폴리가 노처녀 운운하는 장면이 있다.[6] 구석의 노인 시리즈에서 자주 등장하는게 검시배심이다. 재판에 앞서 피해자의 사인을 규명하는 절차로 여기서 배심원들이 관련 증언과 법의학적 증거들을 보고 사건성(살해여부)를 판단하는 절차다. 작중 노인이 자주 참석해 이때의 상황을 폴리에게 이야기해 준다. 글래스고를 무대로 한 이 작품에도 별 생각없이 등장시켰는데 연재 이후 글래스고에는 검시배심 제도가 없다는 독자의 지적을 받았다. 이때문에 단행본 구성에서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7] 구석의 노인은 전편 3인칭, 미스 엘리어트 사건은 전편 폴리 버튼의 1인칭으로 서술되어 있다.[8] 더블린 미스터리를 제외한 단편들의 순서와 제목번역까지 일치한다.[9] 1권 3개, 2권 2개, 3권 8개. 1, 2권 에피소드는 2권 에피소드 하나를 제외하곤 동서판과 중복[10] 고전 추리물에 대한 관심히 지대한 일본에선 1930년부터 번역본이 나왔고 2014년 단행본 미수록 에피소드인 <글래스고 미스터리>까지 포함하고 출간본과 잡지연재본의 차이 및 각 에피소드에 대한 해설까지 담은 완역본이 출간되었다.[11] 범죄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안락의자 탐정, 수상한 배경, 범죄자에 공감하는 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