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3:51:04

고요적



태화관(泰華館)에 손병희(孫秉熙) 등과 함께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강우규(姜宇奎) 의사의 총독 저격사건으로 일본 헌병에 검거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 조만식(曺晩植)과 함께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을 조직하고, 최고 고문에 추대되었으며, 사재를 털어 평동중학교(平東中學校)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힘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태화관(泰華館)에 손병희(孫秉熙) 등과 함께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계속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강우규(姜宇奎) 의사의 총독 저격사건으로 일본 헌병에 검거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 조만식(曺晩植)과 함께 조선민주당(朝鮮民主黨)을 조직하고, 최고 고문에 추대되었으며, 사재를 털어 평동중학교(平東中學校)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힘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