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1-26 15:46:51

강평국

파일:강평국.jpg
성명 강평국(姜平國)
이명 강년국(姜年國)
세례명 아가다
생몰 1900년 6월 19일 ~ 1933년 8월 12일
출생지 제주도 제주군 제주읍 일도리
사망지 제주도 제주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평국은 1900년 6월 19일 부친 강도훈과 모친 홍소사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천주교인이었으나 그녀가 태어난 지 1년 뒤인 1901년에 신축항쟁(辛丑抗爭)때 처단되었다. 이렇게 고아가 된 강평국은 오빠 강세독과 가톨릭 신부의 보호 아래 자랐고 '아가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후 성장하면서 고수선, 최정숙과 의기투합한 그녀는 제주 신성여학교에 친구들과 함께 입학하여 1914년 제1회로 졸업했다. 세 사람은 신성여학교 졸업 후 서울로 유학을 떠나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1918년에 졸업했고, 최정숙과 고수선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고 강평국은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로 유학을 떠나고자 했다.

그러던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발발하자, 강평국은 최정숙, 고수선과 함께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가서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러를 다니면서 근위회 등 여러 단체에 가담해 한인 민족운동에 뛰어들었지만 늑막염에 걸려 운신이 불편해졌다. 그녀는 불편한 몸을 무릅쓰고 학업에 정진하면서 한편으로는 동경조선여자청년동맹을 창립하는 등 민족운동에도 헌신했지만, 건강이 점점 악화되자 어쩔 수 없이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평국은 1924년 제주도 조천부인회를 창립해 발기인으로 가담했으며, 1926년에는 제주여자청년회 집행위원이 되었고 일본 동경 동부노동조합 부인부위원, 1928년 근우회 동경지회 집행위원 및 정치문화부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1933년 1월 광주에서 비밀 결사 활동을 한 일이 발각되어 광주 경찰서에 체포되었고, 조사를 마친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33년 8월 12일에 사망했다. 향년 33세. 그녀는 제주읍 황사평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되었지만 당시 묘비를 세우지 못해 현재까지도 무덤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평국의 절친한 친구였던 최정숙(세례명: 베아트리체, 1902~1977), 고수선(세례명: 엘리사벳, 1898~1989)는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아 포상을 받았지만[1], 강평국은 요절하는 바람에 독립운동 사실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2019년에서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1] 최정숙은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고 고수선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