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8 20:31:58

5개년 계획

1. 개요2. 예시

1. 개요

Five-Year Plan
Пятилетка

사회주의 국가나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주도 경제 발전 계획에 주로 붙은 계획명으로 일부 알려져 있으나, 프랑스 등의 사례를 볼때 전후 국가재건을 위해서 국가주도의 경제개발 프로젝트는 이념과 이데올로기와 무관하게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필요에 따라 적용하여 시행하는 효율적인 국가주도 경제재건 계획이다.

소련의 경우 소련서기장 스탈린이 시행한 것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이때문에 이러한 부류의 국가 주도형 경제개발 N개년 계획을 소련이 시초라고 일부 알고 있으나, 사실 인류 역사로 볼때 왕정국가가 성립된 시대에서부터 흔히 시행해왔던 국가주도 경제 개발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근현대이전에 부유했던 모든 왕정국가의 역사를 볼때 모든 기간산업개발과 경제개발은 모두 국가주도로 수십년간 지속 반복되었으며, 그 성과는 중국의 왕정국가의 역사에서 잘 알수 있다.

특히 중국 송(宋)나라의 사례를 볼때 앞서 한(漢)·당(唐)의 한족 국가에 비교할수 없는 경제부국이었다.새 왕조를 연 송나라는 새로운 인구가 유입한 강남을 적극 개발했다. 이러한 사례는 모든 왕조의 시작과 함께 했던 것으로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소련의 경우 스탈린이 강력한 중화학공업화를 내걸면서 시작한 것인데 이것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서 국제적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1]

앞선 인류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국가주도 경제개발 사업은 왕정국가시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근현대에 이르러 시민의식과 인권의식 성장 등으로 인해 주로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한 공산권 국가들에서 시행했다고 알려졌지만, 아시아의 신흥 독립국들 및 전후 국가재건이 필요한 국가에서도 흔히 시행됐다. 대한민국에서도 한국전쟁이후 국가재건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문민정부 시절까지 이러한 계획이 추진되었다.

현재에도 5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나라론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이들 국가는 과거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 경제성장 모델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 예시

2.1. 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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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획은 법,
달성은 의무,
초과달성은 명예!
소련의 5개년 계획 초과달성 독려 표어
소련 국가계획위원회에서 수립하고
소련 공산당대회에서 승인한 5개년 계획들
차수 연도 기타
1차 1928-1932
2차 1933-1937
3차 1938-1941
4차 1946-1950
5차 1951-1955
6차 1956-1958 1960년까지 계획되어 있었으나
도중에 중단
7차 1959-1965 6차 계획의 중단으로 인해
7개년 계획으로 변경
8차 1966-1970
9차 1971-1975
10차 1976-1980
11차 1981-1985
12차 1986-1990
13차 1991-1995 소련 붕괴로 인해 중단

주로 5개년 계획으로 알려진 것은 스탈린 집권 시절 (1922-1952)이지만 실제로는 소련 붕괴 직전까지 행해졌다. 총 13회차의 5개년 계획이 존재했으며 마지막 5개년 계획은 13차 5개년 계획은 1991년-1995년간 행해질 예정이었으나 전술했듯 소련 붕괴로 인해 도중에 중단되었다.

2.2. 대한민국

한국은 당시 국가 주도형 경제개발계획이건 그것이 아니건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 내 최고 경제 전문가들을 동원해 한국의 경제성장모델을 연구하고 이를 제시한다. 시기적으로 먼저 등장한 사람은 찰스 주니어 울프(Charles Jr Wolf, 1924-2016)를 들 수 있다.

그는 미국의 대표적 전략 씽크탱크 중 하나인 랜드사(RAND)의 국제경제 연구원이자 후버 재단의 수석연구원이었다. 그는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 불리는 장면 내각의 개발계획 작성에 큰 도움을 주었다. 당시 장면 내각의 계획은 지난 글에서 미국 하원 보고서를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빈곤의 늪에 빠진 한국 경제를 정상화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소비재 위주의 경공업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이승만 정부의 경제개발 3개년 계획이 장미빛 환상에만 치우쳐 있을 뿐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고, 한국이 가진 거의 유일한 자산인 노동력을 생산요소로 하여 산업의 기반을 쌓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는 한국 뿐 아니라 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경제성장모델을 연구, 제안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는 각 국가의 상황에 맞는 모델을 제시하는데 일가견이 있었고, 이승만 정부의 경제 실패가 현실성 없는 계획이었음을 간파하고 노동력 기반의 산업 체제로 나아갈 것을 주문한 것이다. 아래 랜드사에서 발간한 그의 전기에서 일부분을 발췌해 싣는다.

he designs alternative development strategies for China’s Hainan Province in light of the development experiences of South Korea, Taiwan, and Hong Kong.

그는 한국, 대만, 홍콩의 경제개발 경험으로부터 중국 하이난성의 대체 개발 전략을 수립했다.

And, viewed from the perspective of a specialist in Asian affairs, Charlie’s wide-ranging analyses of issues from the two Koreas, to China, to Southeast Asia have enriched our understanding of processes of economic development and defense policy.

아시아 지역 전문가로서 그는 남북한, 중국, 동남아시아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을 통해 우리에게 경제 개발 과정과 국방 정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


<출처 : RAND, https://www.rand.org/pubs/corporate_pubs/CP813.html>

찰스 울프가 아시아지역 경제개발전략 및 국방 분야 전문가로서 장면 내각 당시 1차 경제개발계획의 모델을 제시하였다면, 구체적으로 한국에 적합한 수출주도형 모델을 연구, 적용해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실질적으로 큰 공로를 세운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얼마 아델만(Irma Adelman, 1930~2017)이다. 그녀는 존스홉킨스대 교수, 메릴랜드대 교수, 세계은행 선임연구위원 등을 역임했고 버클리대 교수로 재직했던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한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1972년 동탑산업훈장을 수여 받았다. 1971년 박정희가 직접 훈장을 수여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름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녀의 업적은 한국 경제의 어머니라고 해도 무방하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찰스 등의 도움으로 장면 내각이 준비했던 것을 박정희가 쿠테타로 집권한 후 일부 수정해 적용한 것이었다면, 한국의 드라마틱한 경제성장을 견인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야말로 우리가 교육 받고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수출주도형 산업으로의 경제체질 개선이었기 때문이다.

버클리대학 홈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Irma’s major policy contribution was her work in Korea, where she wrote a proposal for institutional reform and for a change in priorities. Among her recommendations were a shift toward export-led growth, a reduction of tariffs, and the doubling of interest rates to reduce inflation. This policy was incorporated into Korea’s Second Five-Year Plan and became an essential element of Korea’s upward economic growth swing. In 1972, Irma’s contribution was recognized by a presidential decoration, the Order of the Bronze Tower, from President Park Chung-hee.

얼마 교수의 정책은 한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녀는 제도적 개선과 우선순위 변경을 위한 제안서를 작성했다. 그녀는 한국 정부에 수출주도 성장으로의 전환, 관세 감면, 인플레 방지를 위해 이자율을 두 배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정책들은 한국의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적용되었고 한국경제가 크게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1972년 그녀의 공적이 한국 정부로부터 인정 받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동탑산업훈장을 수여 받았다.

The citation reads : With deep interest in the wellbeing of the Korean people, Mrs. Irma Adelman, Professor at Northwestern University, has devoted her efforts with superb competence to the economic develop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reby greatly contributed towards attaining the goals of economic self-sufficiency pursued by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er valuable donation and service has gained for her the appreciation and admiration of the Korean people.

동탑산업훈장 수여 당시 한국 정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인들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진 얼마 아델만 여사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놀라운 실력과 열정을 쏟아 부었고 이를 통해 한국 정부가 추구했던 자급자족 경제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녀의 값진 기여와 노력으로 인해 한국인들로부터 깊은 감사와 존경을 받게 되었다."

<출처 : 버클리대학 홈페이지, https://are.berkeley.edu/news/2017/02/memoriam-irma-adelman>
<출처 : https://brunch.co.kr/@aorigin/58>

1969년 발간된 그녀의 저서 '경제개발계획에 관한 실용적인 접근 - 한국의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무려 3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당시 한국 경제발전을 위해 사용된 경제학적, 사회학적 모델과 적용 방법 등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들어 있다. 연구진은 당연히 대부분 하버드대 교수 등 미국 전문가들로, 얼마 교수가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간간히 한국인들의 이름이 눈에 띄나 2차 경제개발계획 이전 한국 경제 상황에 관한 연구 등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그녀는 이 책 머리말에서 한국의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며, 그 경험은 자신의 학문적 소양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관점에서도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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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경제개발계획 1962년 1월 13일 1966년
제2차 경제개발계획 1967년 1971년
제3차 경제개발계획 1972년 1976년
제4차 경제개발계획 1977년 1981년
제5차 경제개발계획 1982년 1986년
제6차 경제개발계획 1987년 1991년
제7차 경제개발계획 1992년 1996년

2.3. 북한

김일성이 1954~1956년 사이 실시한 인민경제복구 3개년 계획을 수행한 후에 실시했던 경제정책. 북한 경제의 마지막 호시절이라고 할 수 있으나 김일성의 무리한 목표와 과도한 농민 수탈로 인해 슬슬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어거지로 이 계획을 수행한 김일성은 1차 7개년 계획을 실시한다.

2.4. 그 외

  • 중국 - 동구권 국가이며 사회주의 계획경제 모델을 채택한 국가답게 국공내전 승전한 1953년부터 5개년 계획들을 수립해 왔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14차 5개년 계획이 진행 중인데 이는 2021년에 수립되었으며 2025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 베트남 - 북베트남 시절인 1958년에 시작한 5개년 계획의 원조인 3개년 계획을 1960년까지 실행하였고 1961년 이래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왔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11차 5개년 계획(2021-2025)가 진행 중에 있다.
  • 인도 - 동구권 국가는 아니었으나 사회주의 계획경제 모델을 채택했던 인도는 1951년부터 계획위원회 주도로 5개년 계획들을 수립해 왔다. 이는 인도 국민 회의의 독주체제가 무너진 1980년대에도 이어졌으나 2017년에 끝난 12차 5개년 계획을 끝으로 계획위원회도 해산되면서 폐지되었다.
  • 말레이시아 - 마찬가지로 동구권 국가는 아니었으나 신흥 독립국으로 독립 직전인 1956년부터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왔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12차 5개년 계획(2021-2025)이 진행 중에 있다.
  • 파키스탄 - 마찬가지로 비동구권 국가이며 심지어 미국 주도의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에 가입했던 국가였으나 1955년을 기점으로 5개년 계획을 수립해 왔다. 총 8차례의 5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며 8차 5개년 계획(1993-1998)을 끝으로 중단하였다.
  • 네팔 - 물론 지금이야 공산당[2]이 집권 중인 국가이긴 하지만 왕정 시절인 1956년부터 5개년 계획을 수립, 실행해 왔으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최근에는 15차 5개년 계획(2019-2023)이 진행되었다.
  • 만주국 -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국이었으나 '만주 산업개발 5개년 계획'을 실시해 중앙의 관료가 주도하는 조직적인 공업건설, 도로와 철도 개통을 이루었고 많은 일본 농민을 만주로 이주시켜서 농지를 개척했는데 계획상 100만호 500만 명을 이주시켜 20년 후 동북 예상 인구 5천만 명의 1/10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30년대 일본 제국은 전쟁수행을 위해서 만주의 병참기지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괴뢰국 만주국에 소련을 모방한 산업개발 계획을 입안하였다.[3] 그리고 이것은 전후 일본의 경제재건으로 이어져 한국과 대만의 산업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테크노-파시즘: 광기는 어떻게 합리적으로 만들어지는가
  • 나치 독일 - 이쪽은 4개년 계획이라는 경제계획을 수립하여 진행했다.


[1] 당시 소련의 경제 성장률은 매년 20%에 이르렀다.[2] 네팔 공산당(마오주의 센터)네팔 공산당(통합 사회주의)[3] 이것을 주도한 것이 기시 노부스케 산업부 차관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 상공대신으로 군수공업을 지휘했고 전후에 일본 총리로 경제재건과 한일국교정상화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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