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9 05:46:07

티모시 가이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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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가이트너
Timothy Geithner
파일:Timothy_Geithner_official_portrait.jpg
<colbgcolor=#00001b>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61년 8월 18일 ([age(1961-08-18)]세)
미국 뉴욕 주 브루클린
학력 다트머스 대학교 (정치학 / B.A.)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경제학 / M.A.)
직업 75대 미국 재무장관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티모시 가이트너는 오바마 정부 시절 제75대 미국 재무장관으로 취임하였다. 재임 기간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재무장관으로 재직하기 전에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로 일했다.

2. 생애

티모시 가이트너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직과 재무장관직을 수행하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처리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는 베어스턴리먼 브라더스 그리고 AIG[1]의 문제를 처리하는 역할을 하였다.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는 책을 발간하였다. 제목은 <스트레스 테스트>. 그는 이 책에서 경제 위기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도덕 근본주의적 접근[2]을 해서는 안 되고 실용주의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보 성향 민주당 유권자들에게 가장 비판받는 오바마 행정부 인사이기도 하다. 요점은 경기부양 정책의 예산 규모를 축소[3]하고, 월가 구제에 치중하면서 경제위기 대처와 월가 심판에 실패했다는 것. 비슷한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았던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4]도 비판받고 있다. 반면 서머스와 가이트너, 그리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미국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지않게하기 위해서는 월가 구제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가 구제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정치•경제 성향에 따라 분분하기 때문에 어느쪽이 맞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다만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월가 구제로 인해 소위 '월가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심판을 부르짖던 당대 미국 서민층이 실망했고, 이것이 티파티 운동월가 점령 시위를 거쳐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불러왔으니 민주당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3. 기타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사태와도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당시 그는 미 재무성 차관보였는데,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하여 임창열 경제부총리 등을 만나 IMF 구제금융 신청을 촉구했던 것이다. 당초 한국 정부는 미국 등으로부터 개별 지원을 제공받아 위기를 넘기려 했지만, 가이트너의 방한을 기점으로 결국 IMF 구제금융이라는 극약처방을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1] 3개 회사 모두 금융위기를 초래한 당사자들이자 금융위기로 인해 파산위기에 몰렸던 금융사들이다.[2] 당대 미국 서민층이 외쳤던 소위 '구약적 정의'를 말한다. 경제적 실리에따라 파산한 은행들을 구제하기보다는 금융가의 도덕적 해이를 심판해야한다는 것.[3] 당초 크리스티나 로머등 백악관내 케인스주의자들은 적극적인 확장재정을 주장했지만, 가이트너는 이를 거부했다.[4] 이쪽은 경제 정책 관여보다도 타 백악관 인사들과의 분쟁이 주된 비판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