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9 01:03:43

키루스

1. 개요2. 실존인물3. 시리아의 유적지
3.1. 네비 후리 모스크
4. 가상인물
4.1. 떠돌이용병 아레스의 등장인물4.2. 원신의 등장인물

1. 개요

Cyrus

고대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 고대 페르시아어 쿠루쉬, 고대 그리스어 퀴로스를 걸쳐 라틴어 키루스로 이어진다.

영어식으로는 사이러스라고 읽는다.

2. 실존인물

2.1.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황제

보통 대왕 키루스 2세를 칭한다. 성경에 나오는 '고레스'가 바로 키루스 2세이다. 참고로 키루스 1세는 그의 할아버지이다.

3. 시리아의 유적지

파일:Nebi_HuriNorth.jpg
유적지 북부와 시리아-튀르키예 국경 지대
파일:키루스 시리아.jpg
키루스 (후루스) 유적의 로마 극장 유구

Cyrrhus / Κύρρος / حوروس

시리아 서북쪽의 유적. 아자즈 서북쪽에 위치한다. 기원전 300년경 셀레우코스 1세에 의해 세워진 도시로, 지명은 마케도니아의 도시 키로스 (Κύρρος)에서 유래되었다. 기원전 83년 일대는 아르메니아 왕국티그라네스 대왕에게 점령되었다가 기원전 69년 폼페이우스의 원정 후 로마 제국령이 되었다. 로마 시기 키로스는 안티오크와 유프라테스 도하처인 제우그마 사이의 교통, 상업, 군사 요충지였고 제10 프레텐시스 군단이 주둔했으며 자체적인 주화를 주조할 정도로 번영하였다.

3세기 이래로 사산 제국에 의해 수 차례 점령된 도시는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요새화되었고, 동시에 독립된 대주교구로 격상되었다. 다만 637년 이슬람 제국군에 점령된 후 쇠퇴하였고, 중세 시기에는 후루스 (حوروس) 네비 후리 (نبي هوري) 혹은 코로쉬로 불렸다. 십자군은 주교구를 복원하고 코르키에 (Coricié)라 불렀으나 1150년 누르 앗 딘에게 점령되었고, 13세기 무렵에는 거대한 유적지로 변모해 있었다. 다만 유적지 내의 네비 후리 모스크는 현지인들에게 성지로 여겨져 금요 예배 등을 위해 자주 왕래된다.

3.1. 네비 후리 모스크

파일:NebiHuriMausoleum.jpg
파일:hq720후리.jpg

아랍어 مسجد النبي هوري
터키어 Peygamber Huri Camii
영어 Mosque of the Prophet Huri

현지인들이 수피 성인 혹은 다윗 (다우드)의 부관 우리아 (Uriah)의 무덤이라 여기는 곳에 세워진 모스크. 나름 성지에 준하나 실상은 셀레우코스 왕조 혹은 로마 제국 시기 한 장군의 무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페니키아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6각형 탑 형식의 무덤은 십자군령이던 1140년에 지진으로 훼손되어 방치되다가 맘루크 왕조기인 1303년에 현지인들이 후리 무덤 소문을 바탕으로 탑을 보수해 이슬람 성지로 삼았다. 이후 탑 앞의 경사지는 인근 무슬림들의 묘지가 되었고, 지금도 많은 중세 묘비들이 남아있다. 1314년에는 알레포 총독 알라 앗 딘 이븐 알튼부가가 탑을 중심으로 모스크를 세웠다.

오스만 제국기인 1875년, 기존 모스크가 허물어지고 새 모스크가 세워졌다. 이후 인근 마을들의 금요 사원으로 쓰였고, 자금도 현지인들이 복을 바라며 방문한다. 시리아 내전 중인 2018년, 자유 시리아군아프린의 쿠르드 군을 몰아내고 일대를 장악할 때에 탑형 영묘는 보물을 찾는 군인들에 의해 일부 훼손과 약탈을 겪었다. 이후 반군을 통제한 튀르키예 정부는 2020년 모스크를 전면 보수했는데, 그 와중에 목재 발코니를 더하고 민바르 (설교단)를 오스만 양식으로 교체하는 등 에르도안신오스만주의에 입각하여 시리아의 문화유산을 '오스만화'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4. 가상인물

4.1. 떠돌이용병 아레스의 등장인물

붉은 눈의 기사의 수제자로 처음에 이름만 언급되었다가 스승처럼 후드와 로브를 뒤집어 쓴 모습으로 등장했다. 붉은 눈의 기사는 키루스와 아레스를 대결시킬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길을 막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길을 막는 상대는 그게 설령 군대라고 해도 대적하는 이해할 수 없는 성격을 지녔다[1]. 대 아이시리스 전쟁 초기에 실로니카 전선에 있던 아틀라스 장군을 자기 길을 막는다는 이유로 간단히 발라버리고 10만이나 되는 아이시리스 대군 사이를 뚫고 지나려고 시도하며 계속 병사를 학살해, 그가 실로니카의 검성 체르노를 죽일 정도의 실력자라는 걸 알게 된 간부들이 쓸데없는 전력 손실을 피하고자 결국 길을 내주게 된다. 사령관이 끔살당하고 10만 명이 한 명에게 꼼짝 못한 이 사건 때문에 아이시리스 군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아이시리스 군은 일주일 뒤 리키온의 부대에게 대파당한다.

하쿠나전이 끝난 직후 하쿠나에 도착한 템플 용병단, 그리고 거기에 와 있던 검성 카이저와 마주쳤다. 키루스는 카이저에게 흥미를 보였으나 그와 싸우고 싶어한 아레스가 덤벼들어 즉각적인 전투를 개시했다. 두 사람의 실력이 막상막하라 누구 하나가 죽기 전엔 끝나지 않을 듯하자 아레스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걸 염려한 바루나가 적극적으로 만류해 중단되었다. 카이저의 평가로는 그 당시 아레스보다 조금 위인 실력. 즉 아레스도 위에서 키루스가 한 짓을 다 할 수 있다...

이후 등장하지 않는다 싶더니 크레도스라는 이름으로 다라크 왕국 흑기사단에 들어가 랜스를 들고 대 아이시리스 전쟁에서 연합군측으로 활약했다. 이때의 전투 방식이 좀 흠좀무한데, 랜스로 상대를 꿰뚫은 뒤 손잡이를 땅에 꽂아서 그대로 조형물(...)을 세우며, 이를 위해 옆의 부하가 여러개의 랜스를 들고 따라다닌다. 전쟁 종결 직전 성문을 여는 아레스를 도와주고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준 뒤 스승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등장이 없어 묻히는 인물이 되는 줄 알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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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시작부터 등장한 은발 미남의 정체가 바로 키루스. 존대말이나 유해 보이는 모습은 전부 연기였다.

수제자로 있을 때 자신을 시기한 사제들에게 기습을 당했었다. 그 후 루시드가 붉은 눈의 기사에게 키루스가 죽었다고 거짓말하고 수제자 자리를 가로챈 사이 키루스는 홀로 떠돌며 수제자를 그만두고 여행이나 다니기로 작정했으나, 붉은 눈의 기사 사냥에서 이번에야말로 자신을 처치하기 위해 사제들이 몰려오자 오히려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아레스와 싸우는 붉은 눈의 기사에게 깔끔하게 하직 인사를 남긴 뒤 떠나 버린다.

붉은 눈의 기사는 키론의 제자인 아레스는 십여 년 전 스승의 원수를 갚으려고 죽기살기로 달려드는데 자신의 제자는 그걸 보고도 스승의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거리낌없이 돌아서는 모습에 마음의 평정을 잃어, 결과적으로 키루스는 붉은 눈의 기사가 아레스에게 패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4.2. 원신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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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레스가 키루스를 도발할 때 쓴 방법도 길을 막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