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고려 충숙왕의 제2비 조국장공주 | 曹國長公主 | |||
출생 | 1308년(충렬왕 34년) | ||
사망 | 1325년(충숙왕 12년) (향년 18세) | ||
재위기간 | 고려 왕비 | ||
1324년 ~ 1325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9d537><colcolor=#670000> 성씨 | 보르지긴 | |
휘 | 금동(金童) | ||
부모 | 부왕 - 위왕(魏王) 아무케(阿木哥) | ||
형제자매 | 형제 - 위왕 베이르테무르 | ||
배우자 | 충숙왕 | ||
자녀 | 슬하 1남 아들 - 용산원자 | ||
시호 | 조국장공주(曹國長公主) | }}}}}}}}} |
1. 개요
고려 제27대 국왕 충숙왕의 제2비.원 추존 황제 순종 다르마발라의 손녀이며 고려 제 31대 국왕 공민왕의 비 노국대장공주의 고모다.
2. 결혼
충숙왕은 첫 왕비인 복국장공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자주 부부싸움을 했다고 하고 충숙왕이 복국장공주를 때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결국 복국장공주는 자녀를 두지 못하고 죽었으며 충숙왕은 새로 조국장공주와 결혼한다.3. 출산과 사망
1325년 조국장공주는 충숙왕의 아들을 낳았는데 용산(龍山)[1] 인근을 지나다가 낳았기 때문에 왕자는 용산원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조국장공주는 용산원자를 낳은 지 얼마 안 되어 17세의 나이로 요절했고, 용산원자 또한 1341년에 16세의 나이로 요절했다.만약 용산원자가 더 오래 살아서 충혜왕 왕정과 공민왕 왕전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다면, 말 그대로 혈통이나 정체성이나 모두 몽골인인 고려국왕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충숙왕도 몽골계의 피가 더 많이 흘렀는데, 충숙왕과 원나라 공주의 사이에서 태어난 용산원자는 말할 것도 없다. 공민왕이 반원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 중에 하나가 어머니 명덕태후 홍씨가 고려인이라는 것이었는데, 만약 용산원자가 보위를 이었으면 고려는 원나라의 일부가 되어 국가 정체성을 상실하고 종속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충숙왕은 또 다시 원나라 공주인 경화공주와 새로 결혼하지만 경화공주와의 사이에서도 자녀를 두지 못하고 죽었다. 그래서 고려인인 덕비 홍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왕정이 대를 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