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1 09:15:22

오미란

<colbgcolor=#ddd><colcolor=#000> 오미란
吳美蘭 | O Mi ran
파일:오미란 프사.jpg
출생 1954년 8월 28일
평양시 중구역 오탄동[1]
사망 2006년 6월 27일 (향년 51세)
북한
전직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배우
학력 평양연광고등중학교
주요 서훈 공훈배우, 인민배우, 국기훈장 제1급, 김일성상
가족 남편 함관섭, 아버지 오향문[2], 여동생 오금란
활동 1972년 – 2006년

1. 개요2. 소개3. 출연작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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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배우.

2. 소개

파일:오미란곡절.jpg
1989년 '곡절많은 운명'에서(36세)
1954년 평양에서 아버지 오향문의 밑에서 태어났다. 오향문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출신으로서 월북하여 오미란을 낳았다. 평양연광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립연극단 배우양성소를 다니며 19세이던 1972년 평양예술단에 들었다. 북한에선 어느 한 예술단에서 화술배우로 활동했다고 설명한다. 처음엔 부친의 출신 때문에 불이익도 받았다는 증언이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 오향문 역시 배우로, 국립연극단 배우였으며 인민배우의 자리에 올라 김일성상을 받은 유명 배우로, 오미란이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후로는 오히려 자랑거리가 되어 예술인 가정으로 잡지에도 실리곤 했고 부친과 함께 TV 공연 무대에 나와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를 부르기도 했다.

연극배우로 시작했다가 25세이던 1978년 조선 2·8예술영화촬영소의 영화 '축포가 오른다'의 간호원 역으로 데뷔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오미란의 연기를 못마땅해 했기에 일회성에 그칠뻔했으나 이 영화를 본 김정일이 연기를 잘하니 오미란이 영화배우를 지망하면 영화배우를 시키라고 지시하여 26세이던 1979년부터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前 조선 2·8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내내 20여번이나 여주인공을 맡을 정도로 꾸준히 활동하며 인지도를 올렸다. 이미 80년대 초중반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33세이던 1986년작 '새 정권의 탄생'에서 남성스럽고 거친 성격의 여주인공을 맡아 1987년 1월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도라지꽃에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어 그 해 열린 제1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도라지꽃은 홰불금상을, 오미란은 금(金) 연기상을 받았고 1990년 남북영화제에서 영화인 상을 수상했다.

36세이던 1989년작 '생의 흔적'도 김정일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받았다고 하며 김일성이 후속편 창작을 지시할 정도로 성공해서 1990년 2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또 연기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80년대 후반 들어 보여준 성공작들은 오미란 특유의 사근사근한 화술과 부드러운 연기, 유순한 캐릭터로 '조선여성의 전형, 도라지꽃 같은 배우'라는 찬사를 받게 되었는데, 1992년 민족과 운명에서 권력을 위해 사는 야망있는 여성 홍영자를 연기해 굉장한 인기를 끌었고 김정일도 '조선의 배우 중에는 여왕이다', '가장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오미란을 국민급 여배우로 추앙한것은 비단 김정일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모습에서, 도라지꽃, 생의 흔적, 민족과 운명 등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연기와 이미지로 대단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동시대에도 홍영희, 김정화 등 사랑받는 여배우도 많았지만 인기는 오미란이 압도적이었다. 오죽하면 김정화는 오미란을 부러워하고 '왜 오미란처럼 되지 못하는가'하는 고민도 했다는 인터뷰도 있을 정도이니 가히 북한 여배우 중 김씨일가나 북한 주민들이나 전부 호평하는 최고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에 병상에 누워있다가 49세이던 2002년 김정일이 촬영소를 찾아 '생의 흔적'의 후속편을 창작할것을 지시한것을 듣고 암치료를 받는 상태였음에도 촬영을 강행했다고 한다. 이 영화 '이어가는 참된 삶'도 당시 부진하던 영화계에서 흥행하여 김일성상을 받았다.

이후 2006년 6월 26일 유방암으로 53세의 나이에 타계했다. 6월 28일자 로동신문민주조선에 부고가 났다. 다른 영화배우들과 마찬가지로 기관장으로 치뤘을것으로 예상된다.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사후 그녀를 추억하는 소개편집물이 2편에 걸쳐 제작되었다. 죽은지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북한의 영화계가 사실상 멈췄고 옛날 영화가 방영되므로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있다.

3. 출연작

  • 축포가 오른다(1978) - 간호원 역
  • 한 당일군에 대한 이야기(1981) - 춘희 역
  • 종군기자의 수기(1982) - 혜경 역
  • 새별(1983) - 영희 역
  • 흔적을 따라서(1983) - 유선녀 역
  • 철길을 따라 천만리(1984) - 정희 역
  • 영원한 청춘(1984) - 명주 역
  • 그들의 모습에서(1985) - 서진아 역
  • 포화속의 청춘(1985) - 분희 역
  • 새 정권의 탄생(1986) - 룡매 역
  • 잊을수 없는 나날에(1986) - 선녀 역
  • 도라지꽃(1987) - 진송림 역
  • 군안전부장(1987) - 순옥 역
  • 혁명전사(1987) - 심정 역
  • 삶의 권리(1988) -보금 역
  • 별무리(1988) - 경임 역
  • 곡절많은 운명(1989~1995) - 림소연 역
  • 생의 흔적(1989) - 서진주 역
  • 음악가 정률성(1991) - 정설송 역
  • 민족과 운명(1992) - 홍영자 역
  • 8련대 정치위원(1994) - 련실 역
  • 어머니는 포수였다(1994) - 리순덕 역
  • 비행사 길영조(1998) - 수경 역
  • 민족과 운명 최현편(1999~2000) 김설란 역
  • 이어가는 참된 삶(2002) - 진주 역[3]
  • 타발병 - 복실 역

4. 수상

  • 평양국제영화축전 금 연기상(1987)
  • 평양국제영화축전 연기상(1990)



[1] 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평안남도 평양시 황금동[2] 인민배우, 김일성상까지 받은 배우[3] 유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