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10:32:16

신조협려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10131><tablebgcolor=#010131><tablecolor=#ffc224> 김용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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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svg 김용(金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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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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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협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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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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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女劍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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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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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천룡팔부》와 《사조삼부곡 시리즈》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B] 《설산비호외전 시리즈》와 《서검은구록》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C] 《벽혈검》과 《녹정기》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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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령 홍콩 기.svg 홍콩소설
신조협려
神鵰俠侶
[1]
The Return of the Condor Heroes
<nopad> 파일:신조협려 광동어 초판 표지.png
▲ 신조협려 광동어 초판 제16권 표지[2]
<colbgcolor=#9CA5AA,#021D2D><colcolor=#053D5F,#F0F0F0> 저자
[[홍콩|]][[틀:국기|]][[틀:국기|]] 김용(金庸)
공개 1959년 ~ 1961년 (명보)
언어 중국어 (광동어)
종류 소설
장르 무협물, 가상역사물
배경
시간
CE 1237년 ~ 1260년
(몽골 툴루이 칸 ~ 몽케 칸[3] / 송말원초)
공간
몽골 치하의 중원, 남송 치하의 강남
등장인물
분량
글자수
97만 9천 자 가량[4]
권수
8권 (한국어 단행본)[5]
시리즈 사조삼부곡(射雕三部曲)
출판사
[[홍콩|]][[틀:국기|]][[틀:국기|]] 명하사(明河社)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김영사
ISBN 9788934985808
2차 창작
영화
3편
드라마
8편
게임
2편
애니
1편
1. 개요2. 특징3. 등장인물4. 설정5. 평가6. 2차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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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름하느뇨
問世間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안구사의 첫 소절.
소설가 김용이 쓴 4번째 소설. '사조삼부곡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다. 1959년 5월 20일부터 1961년 7월 5일까지 홍콩명보(明報)에서 독점 연재됐으며, 개정판은 2003년에 나왔다.

제목인 '신조협려(神鵰俠侶)'는 '신조협(神鵰俠)과 그 짝(侶)', 즉 주인공 양과소용녀를 지칭한다.[6]

대한민국에서의 별칭은 '소설 《영웅문》 - 제2부. 영웅의 별'. 1986년에 공식 라이센스 없이 출판된 해적판으로, 대한민국 내에서는 인식 수준이 높은 이름이다.

2. 특징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용 소설 독자들 사이에서 "최고의 무협소설은 아니더라도, 최고의 연애소설"이라는 찬사가 붙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그의 모든 소설 가운데서도 가장 낭만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무협물 팬이 아닐지라도 연애물 팬이라면 충분히 읽어 볼 만한 작품이다. 김용도 자신의 소설 중에서도 특히 애정을 많이 갖는 작품 중에 하나로 꼽고 있으며, 그의 제자인 ‘예광’도 뛰어난 애정소설이라고 호평했다. 주인공이 불구자라는 점도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다고 평가받고 있다.

사조영웅전으로부터 약 20년 정도 후의 세계가 배경이며, 양과가 금기시되던 사랑(사부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온 중원을 들쑤시며 소요를 일으키는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가 된다.[7] 작품의 구성이나 등장인물들의 깊이와 상징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김용소설 전편에서도 가장 인정의 세계를 치밀하게 묘사했다는 평이 많다. 훗날 김용 못지 않은 명성을 얻은 무협소설계의 걸출한 작가 고룡이 김용의 모든 소설 가운데서도 특히 감동을 준 작품으로 손꼽고 있다. 그의 대표작 다정검객무정검은 많은 부분에서 신조협려에서 보여준 치밀한 인정묘사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 사랑에 대해서 한 가지 이상의 사유에 도달하게 될 정도로, 여기서 그리는 사랑은 지극히 심오하다. 또한 어두운 과거로 인해 사람의 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가운데 선과 악의 경계 가운데서 지극히 불안정한 행보를 걷는 등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주인공 양과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굉장히 치밀하고 극적으로 전개되어 독자로 하여금 강한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다.

주된 키워드는 정(情). 중반부까지의 또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이막수의 애창곡 안구사가 이 작품을 압축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꽤 명확하게 갈리는 작품이다. 싫어하는 이유는 주로 이 여자황용 아니야?[8] 때문. 좋아하는 사람은 바른 생활 청년과도 같았던 사조영웅전의 곽정에 비해 껄렁껄렁하고 좀 불량스러운 양과의 반항아 캐릭터가 독특해서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또 소용녀의 캐릭터성도 한몫하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어려보이고 순진한 누님 속성의 선구자격 캐릭터로 어지간한 모에 요소는 다 갖추었다. 첨언하면 김용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고 하며, 양과와 소용녀는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연인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고 한다.

참고로 곽정은 전작 그대로 바른 생활 중년으로 진화해 등장하는데 이게 양과 입장에선 은근히 잔소리를 해대는 역이라는게 문제. 여기에 더해 황용은 은근히 양과를 힘들게 만드는 골치아픈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자기도 강남칠괴한테 '요녀' 소리 들어가며 곽정을 쟁취했으면서 양과한텐.. 반면 사조영웅전의 최종보스였던 구양봉은 그야말로 폭풍간지의 포스를 내뿜으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다. 최종보스는 서역의 고수 금륜법왕이며, 금륜법왕을 비롯한 몽골 제국 세력이 주된 악역 취급당한다. 지못미.

한편 곽정 띄우기로 인해 희생된 실존 인물이 있는데 바로 곽정이 들어간 양양의 여문환-여문덕 사촌형제이다. 실제 역사에서 두 사람은 남송 말기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인물들로, 몽골의 강력한 공세에 맞서서 남송 최강의 방어선인 양양성을 온 힘을 기울여서 6년이나 지켜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양양이 함락된 것도 양양과 방어선을 연계한 번성이 함락되고, 성 밖 남송군의 지원이 끝내 실패한데다 성내의 물자도 다 떨어진 상태에서 몽골이 '당신같이 훌륭한 장수가 죽는 건 아깝다.'라며 항복할 것을 권고하자 여문환도 '우린 할 만큼 하였다.'라는 부하들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항복한 것이고, 여문덕의 경우는 막판에 몽고군의 책략에 속아 양양 공략을 위한 거점 건설을 허용해버린 큰 패착을 두기는 했지만 어쨌건 마지막까지 항복하지 않았던 것.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사촌동생인 여문환은 등장하지 않고, 여문덕만 나름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있지만 소심하고 겁이 많은 대장군으로 등장하며 실제 역사에서의 전공은 모두 곽정이 두 사람의 이름을 빌려 실행한 것으로 그려낸 것이다[9]. 말하자면 무협소설에 역사소설의 요소를 가미하는 과정에서 실제 역사 인물의 행적을 지워버리고 메리 수 행태를 좀 심하게 보인 셈인데, 사실 김용이 신조협려에서 이런 실수(또는 위험한 시도)를 조금 많이 한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여씨 형제는 직접적인 문제 제기 없이 넘어갔지만 실존인물로 전진교의 6대 조사까지 지낸 윤지평을 성범죄자로 묘사한 것은 그 후손들에게 항의를 받아 결국 개정판에서 견지병이라는 새 인물을 만들어 문제되는 행적을 그에게 몰아주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던 것.

이 때의 실수를 거울삼았는지 김용은 이후에도 무협소설에 역사성을 가미하려는 시도는 계속하면서도 '실존하는 인물의 행적을 왜곡하거나, 직접적으로 모욕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보다 조심스럽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의천도룡기 같은 경우 명교와 주원장을 이용해서 상당히 대담하게 재창작된 대체역사를 보여주지만, 주원장이 본래 탁발승이었고, 백련교 군벌에 속했던 적이 있다는 점이나 다른 반원 한족 군벌들을 격렬한 세력다툼으로 꺾은 끝에 패권을 쥐게 되었다는 점, 또 가혹하고 잔인한 숙청행위를 벌인 적이 있다는 점 등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니 그 재창작된 대체역사가 주원장의 행적을 '왜곡하여 모욕한 것은 아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선은 지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결국 최후의 작품인 녹정기에 이르러 주인공인 '위소보는 온갖 깽판을 다 치며 온 천지를 돌아다니는데, 그래도 실제 인물들의 실제 행적은 왜곡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3.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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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설정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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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차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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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윳팽으로는 'san4 diu1 hap6 leoi5'이다. 간체자로는 '神雕侠侣', 한어병음으로는 'Shéndiāoxiá lǚ'이다.[2] 이 표지 속 삽화는 독고구패가 기르던 신조(神雕)가 을 사냥하는 모습을, 이 소설의 주인공 양과가 지켜보고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3] 남송 기준으로는 '이종 연간'에 해당된다.[4] 중국어(광동어) 글자수로 추정된다. 김용 저서 중에 글자수가 많은 작품은 녹정기(123만 자), 천룡팔부(121만 1000자), 신조협려 / 소오강호(97만 9000자), 의천도룡기(95만 6000자) 순으로, 신조협려는 소오강호와 함께 3번째로 글자수가 많다.[5] ISBN: 9788934985808[6] 김영사 정식 번역판 보도 자료의 공식 입장이다.# 한편 '신조(神鵰), 그리고 의기로운 한 쌍(俠侶)'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신조는 그 하나만 봤을 때 작품의 큰 키워드는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해석은 결국 약간 빗나간 셈이다.[7] 연재 전 고등학생과 선생의 연애로 인해 당시 홍콩 사회가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김용이 신조협려의 구상을 떠올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양과는 그가 지금까지 창조한 협객 중 가운데서 반항성이 두드러지게 강한 인물이다. 과연 신필.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사회의 고정관념과 유교사상에 대한 어느 정도 반발로 보여진다. 김용은 당시 서검은구록을 통해서 이미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진행형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었다.[8] 황용 역시 주인공인 양과를 오해하고 부당하게 대하여 힘들게 만드는 포지션을 맡았기 때문에 신조협려 팬, 특히 양과 팬들에게는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기는 하다. 이 때문에 사조영웅전부터 보고 신조협려로 넘어온 사람과 신조협려를 처음으로 본 사람(더 나아가 황용 팬으로 황용 쪽에 이입한 사람과 양과 팬으로 양과 쪽에 이입한 사람)사이에서 황용에 대한 인식이 갈린다고 할 정도. 하지만 그래도 황용이 양과를 대하는 태도에는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고, 지나치게 도를 넘었다고 할 정도까지는 아닌데다가 또 자신이 잘못한 것을 깨닫고는 후회하는 모습도 보여주기 때문에 양과 팬의 입장에서도 도저히 못 참을 정도의 인물까지는 아니라 할 수 있다. 좀 거칠게 요약하자면 황용 팬, 특히 사조영웅전부터 이어져온 황용쪽의 서사에 이입한 이라면 '황용이 저러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으니, 황용만 탓할 일은 아니다'라 할 것이고 양과 팬, 특히 신조협려에서 시작된 양과의 서사에 이입한 이라면 황용의 처사를 부당하다고 생각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주인공 양과가 극복할 수 있는 난관의 일부이지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악행이라고까지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 실제로 작중에서 양과도 이런 황용이 자신에게 잘해준 것과 잘못한 것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곽백모는 내가 크게 잘해준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는 양과가 아버지처럼 여기는 곽정만큼 황용을 믿고 따르지는 않는다는 않지만 그렇다고 크게 적대시하거나 원망할 필요도 없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그리고 신조협려 및 양과 팬들의 황용에 대한 관점도 대충 그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러니까 레알 개꼴통 인간발암물질 곽부에 비하면 당연히 어그로포인트가 확연히 낮다. 굳이 말하자면 곽부때문에 이미 열받은 독자들이 "생각해보니 황용도 꽤나 발암캐였지" 하고 짚고 넘어가는 정도.[9] 여문덕이 탐관오리였는지의 여부도 중요한 문제인데, 사실 작중에서 여문덕을 딱히 탐관오리처럼 묘사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정작 실제 역사에서의 여문덕은 (몽고를 막아낸 전공과는 별개로) 꽤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당대에 '석숭이 다 뭐냐'는 비판을 받았다고 할 정도이다.) 그러니까 군공은 너프시킨 대신 탐욕에 대한 묘사도 빼 준 셈인데, 또 이 점은 여문덕이 송나라 중앙군의 지휘관이라기 보다는 여씨 집안의 군사집단인 '여가군'을 이끌고 몽고의 진격을 막아냈다는 점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이다. 여문덕은 분명 가문의 이익을 위해 탐욕을 부린 인물이 맞기는 맞은데, 그 가문의 재산이 그래도 일단은 몽고에 맞서는 군사집단의 기반이라는 점은 감안해줘야 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