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9 13:25:07

스마랑

스마랑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어: Kota Semarang, Semarang
네덜란드어: Samarang(역사적 표기), Semarang
자바어: Kutha Semarang
영어: Semarang
중국어: 三寶壟[1]
1. 개요2. 역사3. 관광4. 교육

1. 개요

인도네시아 중부자바주의 주도로 시 인구 1,815,729명(2018년 기준), 도시권 약 730만 명(2018년 기준)이 거주하는 인도네시아의 대도시이다. 도시 인구 기준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여덟 번째[2], 자바에서 일곱 번째로 인구가 많지만, 도시권(스마랑 남쪽의 스마랑군, 서쪽의 큰달Kendal군, 동쪽의 드막Demak군과 그로보간Grobogan군, 그리고 스마랑군이 감싸는 살라티가시Kota Salatiga를 포함)으로 보면 스마랑 도시권은 자카르타 도시권, 수라바야 도시권, 반둥 도시권에 이어 인도네시아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다. 특히 메단은 도시 인구는 스마랑보다 많지만 도시권 인구로는 밀린다.

이곳 방식으로 만드는 인도네시아식[3] 춘권인 '룸피아'(Lumpia)라는 음식이 특히 유명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스마랑식 룸피아[4]를 맛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스마랑은 '룸피아의 도시'(Kota Lumpia)라는 별명을 얻었다.

연고 축구팀으로 PSIS 스마랑이 있다.

지역 주민 대부분이 자바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화인의 비중도 적지는 않으며 자바섬의 화인들은 언어적으로 동화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일상언어로도 자바어가 많이 쓰인다. 사무언어로는 국어인 인도네시아어가 사용된다.

2. 역사

15세기 초 정화의 원정에서 정화 함대의 분함대가 현재의 스마랑 인근에 도착한 기록이 있으며 이 지역은 그 이전에도 자바 중부의 항구로서 기능하였지만, 현재와 같은 대도시는 아니었다. 스마랑이 본격적으로 항구로서 개발된 것은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중반의 드막 술탄국 시대로, 스마랑과 인근이 군(kabupaten)의 지위를 획득한 시점은 공식적으로 1547년 5월 2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 스마랑은 마타람 술탄국의 항구로 번영하였는데, 1678년 1월 15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마타람 아망쿠랏 2세의 채무 지불 과정에서 스마랑과 인근의 영토를 마타람으로부터 조차해 갔다. 1705년, 제1차 자바 왕위 계승 전쟁(1704–1708) 과정에서 마타람의 파쿠부워노 1세(푸그르 공Pangeran Puger)는 자신의 편에서 싸운 대가로 동인도 회사에 스마랑을 영구히 양도하였다. 이 시점부터 스마랑은 공식적으로 동인도 회사령에 편입된다.

이슬람 시대와 식민 시대에는 자바 중북부의 물류 요충지이자 주요 무역항으로서 개발되어 자바 중동부의 농산물이 스마랑을 거쳐 동인도 타 지역 및 세계 전역으로 수출되었으며, 이를 감안하여 네덜란드 식민 정부가 자바에 철도와 도로 등 근대적 물류 시설을 도입할 때 스마랑은 최우선 순위에 놓였다. 1867년 8월 10일 자바 최초로 개통된 철도 노선은 스마랑과 탕궁(Tanggung)을 잇는 25km의 노선이었다. 이렇게 물류의 중심으로 개발되며 19세기 말 스마랑은 점차 근대 도시가 되어 갔으며, 병원, 도로, 전신선 등 근대적 인프라도 조금씩 구비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에는 공업도시로도 개발됨에 따라 인도네시아의 여러 도시들 가운데 특히 노동조합, 노동운동이 발달하였으며,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주요 거점으로서 '적색 도시'(Kota Merah)로 불리기도 했다.

20세기 초 다양한 개발 사업이 이루어지며 스마랑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1910년대 말 증가하는 주택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네덜란드 건축가 토마스 카르스턴(Thomas Karsten)의 설계로 스마랑에 찬디바루(Candi Baru, 오늘날 찬디사리[Candisari] 지역)라는 계획 지구가 건설되었는데, 부유한 유럽계, 중국계, 자바계 주민을 대상으로 하여 계급적 엘리트주의를 보였지만 흥미롭게도 지구 내 인종적 분리는 그다지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트적 도시 계획만으로는 급증하는 인구를 수용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식민 정부는 식민 치하에서 동인도가 번영하는 모습을 전시하기 위해 1914년 스마랑에서 식민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때 박람회에는 동인도의 자바, 발리, 아체, 스마랑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관들이 설치되었으며, 해외에서는 중국, 일본, 호주, 그리고 일본 제국 치하 대만이 박람회에 참가해 전시관을 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일본이 자바를 점령하고 통치하던 1944년 2월, 일본군 장교 등이 이곳에 설치한 '위안소'로 네덜란드계 여성 35명을 강제 연행하여 감금하고 강간하거나 성매매를 시킨 사건이 있었다(스마랑 강간 사건 또는 스마랑 위안소 사건). 이 사건으로 전후인 1948년의 바타비아에서 열린 전범 재판에서 일본군 장교 7명과 군속 4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일본 정부 역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이를 추인하였다. 1994년의 네덜란드 정부 후속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제 하 네덜란드령 동인도 각지의 위안소에서 일하던 200–300명의 네덜란드계 여성 가운데 최소한 65명은 확실한 성매매 강요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3. 관광

자바 대도시 가운데 스마랑은 반둥과 함께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을 짙게 느낄 수 있는 도시로 꼽히고 있다. 자카르타, 수라바야, 반둥 등과 달리 상대적으로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덜 휘말려 도시가 잘 보존된 것도 한몫한다.

대표적인 스마랑의 콜로니얼 랜드마크는 작은 네덜란드나 다름없는 스마랑 구시가지(Kota Lama Semarang), 동인도 철도회사 건물이었던 식민지 건축 양식의 박물관 라왕 세우(Lawang Sewu) 등이 있으며, 식민지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곳곳에 있는 다양한 건물을 순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753년에 지어진 블렌둑 교회(Gereja Blenduk)는 스마랑 최초의 네덜란드식 개신교 교회로 오늘날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스마랑은 가톨릭에서 자바 중부를 관할하는 스마랑 대교구의 중심지인데, 시내에 있는 주교좌 스마랑 대성당(Gereja Katedral Semarang) 등 여러 성당들도 가볼 만한 곳이다.

15세기 초 정화 함대가 도착한 역사와 관련이 있는 중국 사원 삼포콩(Sam Poo Kong, 三保洞)도 역사가 깊은 관광지로, 15세기 이래 여러 번 개축된 역사를 겪으며 중국과 자바 건축 양식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1955년에 세워진 부다가야 와투공 사원(Vihara Buddhagaya Watugong)도 인도네시아 불교도들이 즐겨 찾는 중국 양식 불교 사원이다. 중부자바 대모스크(Masjid Agung Jawa Tengah)는 최근에 지어진 모스크인데, 자바 건축 양식을 베이스로 아랍 양식을 조화시켜 좋은 평가를 받는다.

스마랑도 대도시이므로 다른 인도네시아 도시처럼 휴식이 필요할 때는 각종 쇼핑몰을 방문할 수 있다. 스마랑의 중심지는 대체로 심팡리마 광장 주변인 심팡리마(Simpang Lima, SLCC) 지역으로 꼽힌다. 심팡리마 지역, 심팡리마에서 대로를 따라 서쪽에 있는 청년 기념비(Tugu Muda), 북서쪽에 있는 가자마다로(Jl. Gajah Mada)와 청년로(Jl. Pemuda)가 만나는 곳, 이렇게 세 곳 사이가 스마랑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이 삼각형 지역에 파라곤 시티 몰(Paragon City Mall Semarang), 치푸트라 몰(Mal Ciputra), 심팡리마 플라자(Simpang Lima Plaza), DP 몰 등이 몰려 있다. 이곳을 왠지 자카르타의 골든 트라이앵글이 떠오르는 가자마다 골든 트라이앵글(Gajah Mada Golden Triangle)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 또는 인근에 위치한 스마랑 차이나타운(Pecinan Semarang), 파사르 조하르 문화 유산 지역 등도 축제가 열리거나 하면 관광 스팟이 된다. 특히 차이나타운 지역의 스마위스(Semawis) 야시장이 유명하다.

스마랑에 오래 머물거나 스마랑에 대해 깊게 알게 되면 대표 관광지 외에 색다른 곳을 찾아볼 수 있다. 번화가를 벗어나 스마랑 시내를 조감할 수 있는 언덕 지역으로 올라가면 여유로운 주택가와 고급 레스토랑 등이 나온다. 로컬처럼 다니고 싶다면 스마랑의 오랜 바틱 전통을 반영한 스마랑 바틱 마을(Kampung Batik Semarang)이나, 스마랑 에코 파크(Dusun Semilir Eco Park)도 방문을 고려할 수 있다. 교외로 나가면 브라운 캐니언(Brown Canyon)이라는 암석 지대와 칼리판추르 폭포(Air Terjun Kalipancur)가 있다. 근처에 스마랑 시민들이 즐겨 찾는 클리르산(Gunung Kelir)이 있는데, 상당히 멋진 뷰가 나오는 포인트가 많으므로 트레킹에 거부감이 없다면 잘 찾아보고 방문하는 것도 좋다.

스마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만 나가면 암바라와(Ambarawa)가 나오는데, 이곳도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시간을 내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특히 암바라와에 있는 빌럼 1세 요새(Benteng Fort Willem I, Benteng Pendem Ambarawa)가 19세기 네덜란드 요새의 폐허로 잘 알려진 관광지다. 암바라와 철도 박물관도 근처에 있다.

일반 여행자에게 그다지 추천하는 곳은 아니지만 자바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스마랑 시내의 랑가와르시타 박물관(Museum Ranggawarsita)도 흥미로운 곳이다. 다만 원활한 관람을 위해서 인도네시아어를 읽을 수 있으면 좋다.

단기 여행자에게 그렇게 추천하지는 않지만, 만약 시간이 넉넉하고 인도네시아어 의사소통이 기본적인 수준으로는 가능하다면, 자바 중부 내륙 고원 지역 워노소보(Wonosobo)와 디엥 고원(Dataran tinggi Dieng)을 방문하기에 스마랑은 접근성이 좋다. 스마랑에서 워노소보로 버스나 택시, 렌터카로 이동하고, 워노소보 일정이 끝난 후 다시 워노소보에서 디엥으로 이동하면 된다. 스마랑에서 워노소보까지는 버스로 약 4시간 반 정도 걸린다.

4. 교육

같은 자바 중부 권역에 욕야카르타가 있어 다소 묻히는 감이 있지만, 스마랑도 나름대로 교육으로 중요한 도시다. 스마랑에 다양한 명문 고등학교가 소재하며, 스마랑에 있는 디포느고로 대학교(Universitas Diponegoro, Undip)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상당히 인정받는 명문 대학이다.[5]


[1] 정화의 아명인 馬三寶에서 유래했다.[2] 자카르타의 위성도시 데폭, 탕그랑, 브카시 셋 모두에 단순 인구로는 밀린다.[3] 필리핀에서도 춘권을 '룸피아'로 부르는데 어원은 모두 민남어 '룬피아'(潤餅仔 lūn-piáⁿ-á)이다.[4] 스마랑식보다 담백하고 덜 단 수라바야식 룸피아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스마랑식이 더 인기 있다.[5] 대표적으로 하르토노 형제가 이 곳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