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02:03:36

술타나호 침몰 사고


역대 사망자별 해상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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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비전시 상황 한정. 전쟁 중 일어난 선박 침몰은 제외.
<rowcolor=#ffffff> 순위 이름 날짜 사망자 수 사고 원인 발생 위치 비고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1 도냐 파즈호 침몰 사고 1987년 12월 20일 4364명도냐 파즈
11명벡터
선박간 충돌 타블라스 해협, 필리핀해 비전시 해상사고 사망자 수 1위
20세기 해양사고 중 최다 사망자
2 르 줄라호 침몰사고 2002년 9월 26일 1863명 과적
정비 불량
감비아 연안 21세기 해양사고 중 최다 사망자
3 스파이스 아일랜더호 침몰 사고 2011년 9월 10일 1573명 과적 잔지바르 해협, 탄자니아 연안
4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2년 4월 15일 1514명 빙산 충돌 북대서양
5 태홍호 침몰 사고 1822년 2월 5일 1500명추정치 암초 충돌 벨비더 여울, 남중국해 19세기 해상사고 중 최다 사망자
6 술타나호 침몰 사고 1865년 4월 27일 1168명 보일러 폭발 미시시피강
7 토야마루호 침몰 사고 1954년 9월 26일 1159명 악천후 쓰가루 해협
8 제너럴 슬로컴호 화재 1904년 7월 15일 1021명 화재 이스트 강
9 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호 침몰 사고 1914년 5월 29일 1012명엠프레스 오브 아일랜드
2명스토스타드
선박간 충돌 세인트 로랜스 강
10 알 살람 보카치오 98호 침몰 사고 2006년 2월 1012명 화재 두바 연안, 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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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이후

1. 개요

Sultana Sinking

1865년 4월 27일 미국 테네시멤피스 인근의 미시시피강에서 일어난 증기선 폭발 침몰 사고.

2. 사고 당시

술타나호는 1719톤에 길이는 79m, 폭 13m의 증기 외륜선으로, 오하이오신시내티의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1863년에 첫 출항을 했다. 대형 보일러 4개로 동력을 얻는 술타나 호엔 승무원이 85명 있었고 객실은 70여개에 고급 의자까지 설치됐다. 선주는 원래 따로 있었으나 전쟁 때문에 징집되면서 실질적인 선장은 제임스 메이슨 대위가 맡았다.

당시 남북전쟁이 끝나고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 포로들이 술타나 호를 타고 이동 중이었다. 포로들이 너무 많아 안에 승객 탑승자 명단은 없었다. 술타나 호의 최대 승원 인원은 376명이었으나 당시 군인 2,300여 명과 부녀자 100여명, 총 2,400여명에 달하는 7배 가까운 인원이 탑승한 상태였다. 거기다 설탕과 석탄, 술, 가축 등도 많이 실린 상태라 과적이었으며 상부의 요청 때문에 북부 사람들이 많이 탔다. 군인 1명당 5달러, 장교는 10달러를 지불하고 탑승했다. 거기다 당시 4월이라 눈이 녹으면서 강물이 불어나 일부 지역은 범람하는 등 출항하기에 여러모로 알맞지 않았다. 당시 사람이 너무 많이 탑승한 데다 보일러 1대가 얼마 전 문제를 일으킨 상태라서 배 기술자는 '배 보일러 1개에 큰 문제가 있는데 이 만큼 많은 인원이 탑승하지 못한다.'고 경고했으나 상부에선 처리만 빨리 하고 출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술타나호는 4월 24일 빅스버그에서 출항했다. 하지만 배는 엄청난 과적과 불어난 강물을 버티지 못하고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4월 26일 배는 아칸소주의 헬레나에 잠시 섰는데 당시 사진가 토마스 뱅크스가 승객들을 촬영했다. 오후 7시엔 멤피스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화물을 하역했다. 승객 200여명은 잠시 배에서 내려 해변에 갔다가 다시 탑승했다. 배는 석탄을 다시 실고 출항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상류 10km 지점에 당했을 때 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기 시작했고 보일러를 최대 전력으로 올렸으나 증기 압력은 여전히 낮은 상태였다. 그렇게 전력을 올렸으나 보일러는 버티지 못했고 4월 27일 오전 2시 3번 보일러가 폭발했다. 폭발은 곧 이어 다른 보일러들도 폭발하게 만들었고 선실 근무자들이 폭발에 휘말리면서 사망, 배 굴뚝이 무너지면서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다. 얼마 안 가 큰 화재가 일어나면서 나무로 만들어졌던 배의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는데 화재가 얼마나 빨리 번졌는지 배는 구조신호를 보내지도 못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미시시피강 인근 지역에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와 사람들을 구조하려 했다. 폭발 30분 후 온 증기선 보스타나호도 승무원들을 동원해 사람들을 구조했다. 하지만 눈이 녹으면서 강물이 불어나 사람들이 휩쓸려갔고 폭발로 강물이 끓어 버리면서 사람들이 죽어갔다. 배에 탑승한 군인들 상당수는 탑승 전부터 전쟁으로 지친 상태였던지라 빠른 유속을 버티지 못했다. 당시 760여명이 구조됐으나 이들 중 31명은 결국 부상으로 사망했다. 당시의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아직까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 많이 탄 상태였고 승객 명단도 없어서 정확히 몇 명이 탔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추정 사망자 수는 약 1,700여명이다. 선장 제임스 메이슨 대위를 비롯한 다수의 승객들은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았다.

이 사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선박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안타깝게도 이 사고는 얼마 전 일어난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과 그 사건의 범인 존 윌크스 부스 사망 사건의 충격이 너무 큰지라 잊혀졌다. 사건과 관계 있던 선박회사와 군 관계자들의 처벌도 없었다.

사망자가 너무 많은지라 일부 지역에선 '남부인들이 북부에 복수하려 벌인 일이다.' 는 음모론이 나오기도 했다.

사고 이후 미시시피강에선 같은 보일러가 설치된 증기선의 운항이 금지됐다.

아칸소 주 매리온에는 술타나 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박물관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