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3 21:08:09

소마하


진서(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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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권 「은행전(恩倖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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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79권 「이맥전(夷貊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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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권 「적신전(賊臣傳)」
후경 ,왕위, · 웅담랑 · 주적 · 유이 · 진보응
(1) 본명이 주철호(周鐵虎)로 당태조로 추존된 이호(李虎)를 피휘하여 무(武)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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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평가

1. 개요

蕭摩訶(532? ~ 604)[1]
남북조시대 후기, 진나라의 장군으로 남조 마지막 맹장으로 일컬어진다.

2. 생애

난릉 소씨 양나라 시흥군승 소량의 아들로 어려서 아비를 여의고 매형 채노양에게서 자라났다. 후경의 반란이 터지고 진 무제 패선이 수도 건강부를 구원할 때 채노양이 무제를 막아섰는데 이때 불과 10대 소년임에도 출전하여 3군 제일의 용맹을 떨치니 당해낼 자가 없었다.[2]
창업주답게 병법에 능한 무제에게 패하기는 하였으나 무제의 후원자이자 개국공신인 후안도가 그를 거두어들이면서 항상 정벌에 따랐고, 후안도는 소마하를 아꼈다. 왕승변의 일파였던 임약, 서수휘가 북제군을 끌어들여 진나라의 북방을 약탈하자 무제가 이를 막도록 후안도에게 명했는데, 격렬하게 싸우다가 말에서 떨어진 후안도가 적에게 포위되자 소마하가 크게 소리치며 단기로 돌진해 적을 무너뜨리자 적들이 무너지고 물러났다.
이렇듯 경력의 전반기에는 후안도를 따랐으나 후안도가 진 문제에게 숙청[3]된 이후로는 오명철을 따라다니며 활동한다. 진 선제가 즉위한 이후 반란한 구양흘을 진압하는 데에도 공을 세웠다.

북제의 정치가 어지러워지고 곡률광도 모살되어 국방력이 약해진 틈을 타 진나라는 573년부터 북벌을 계획하여, 이에 출정하여 도독 오명철의 휘하에서 북제의 진주(秦主)를 공략했는데, 이에 제나라는 대장 울파호가 통솔하고 창두(蒼頭), 서각(犀角), 대력(大力)이라는 깃발의 신장 8척에 완력이 절륜한 선봉들과 궁술이 뛰어난 서역호(외국용병)를 동원한 10만 구원군을 보내니, 사람들은 특히 서역호를 두려워했다.
소마하는 오명철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신 후, 말을 타고 제군에 돌진하였고, 서역호가 앞으로 나와 활을 당기나 쏘지 못하였다. 소마하는 멀리서 끌(끝이 넓은 송곳)을 던져 서역호를 쓰러뜨렸다. 그 후에도 제군 대력이 십수명 출진하자 소마하는 그들을 베어버렸고 이에 제나라 구원군 10만은 퇴각했다. 군공으로 후작으로 작위가 상승한다.
575년에는 다시 오명철을 따라 적을 포위, 왕진덕이 이끄는 제군을 격퇴하였으며 577년에는 여량(呂梁)에서 7기만을 이끌며 선봉에서 돌진하여 제군의 깃발을 빼앗아오니 제군이 크게 무너졌다. 군공으로 지절, 무위장군, 초주자사로 전임한다.
제를 멸망시킨 주나라가 여량을 빼앗으러 오자, 12기를 이끌고 주군을 돌파하고 다니며 많은 적을 베었다
578년, 주나라가 상대장군 왕궤(王軌)와 원군을 파병해 여량 하류를 쇠사슬로 봉쇄시키려 하자, 소마하는 이를 파괴할 것을 건의하나 거부당한다. 열흘 만에 수로는 봉쇄됐고, 주나라의 군세는 계속해서 불어났다. 이에 소마하는 밤에 적을 돌파할 것을 건의하자 오명철은 소마하의 계책을 인정하며 후방에 가고, 소마하가 선봉에 서기로 한다. 소마하는 80기를 이끌고 밤에 출발해 적과 충돌하며 아침에 회남까지 이르렀지만 오명철은 결국 왕궤에게 잡혔고 북주에서 대장군, 회덕공에 봉하였지만 분통함으로 머지않아 사망했다. 진나라의 북벌도 이것으로 사실상 좌절되었다.[4]

582년 선제가 붕어하고 진숙보가 제위를 계승할 때 이복동생 시흥왕 진숙릉이 후주를 찌르고 동부성으로 도주하자, 칙서를 받고 입궁한 소마하는 100여 보기를 이끌고 쫓아가 토벌하고 수급을 취하였다. 이때 세운 공으로 소마하는 수건군공에 책봉되고 산기상시, 거기대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시흥왕이 보유하던 수많은 금과 비단이 전부 포상으로 주어졌다. 머지않아 시중, 표기대장군, 좌광록대부로 승진하였으며 딸이 태자 진윤[5]에게 시집갔다. 대우는 삼공에 준하여 황합을 열고 정무를 볼 수 있게 하였다.

수나라의 하약필이 광릉에 주둔하자 후주는 소마하에게 수나라를 막게 하나 소마하가 건강부에 불려간 사이, 수나라가 도강하여 경구를 습격하였고, 다시 종산으로 진군하였다. 이에 소마하는 역습할 것을 건의하나 재차 거부당했다.
수의 대군이 건강부 외곽에 다다르고 나서야 출전하였지만 수군의 기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포로가 된다.[6] 목에 칼이 들어오나 안색과 어조가 바뀌지 않아 하약필은 감탄하여 그를 예우했다.

포로인 상황에서도 마지막으로 후주를 애써 만나 작별하기까지 군신의 예를 잃지 않았으니 주위에서 감동하였고, 관중으로 입조하여 개부의동삼사에 제수된다.[7]

차남 소세략이 강남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수 문제는 연좌하여 죄를 묻지 않았다. 이후 597년에는 병주총관으로 부임하는 한왕 양량을 따라갔다가 604년 양량이 진왕 양광에게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호응하여 진격하였다가 양소의 중앙군에 패하여 참수된다. 한때 심복이었던 진지심[8]이 직접 염하여 추모하고 장사지냈다.

장남 소세렴은 효성스럽고, 상을 마친 이후에도 추모함이 더욱 정성스러웠으며 평생 병장기를 잡지 않아 주위에서 이를 칭찬하였다고 전해진다.

3. 평가

어눌하였으나 믿음직스럽고 전시에는 기백이 분발하여 대적할 상대가 없었다고 한다.
중년에 이르러 북벌에 출진할 당시 이미 그 용명이 관우, 장비에 필적하였다고 한다. 북조에 곡률광이 있다면, 남조에는 소마하가 있었던 셈(단 이 둘은 각자 북주와의 전쟁, 남쪽의 반란 평정에 주로 활동하여 서로 맞붙을 기회는 없었다).
다만, 6세기 남북조사가 진경지의 활동, 후경의 난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북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소마하가 대부분의 군력을 보낸 진나라는 6조 최약의 왕조라 당대의 활약에 비하면 국내에서는 비교적 알려져 있지 않은 점이 많다.
[1] 와 동자로, 음을 나타내는 부분은 이고 따라서 '가'가 기본음이 되지만, 산스크리트어의 '하' 발음을 가차할 때 쓰이게 되면서 불교쪽 용어에서는 모두 '하'라 읽게 되어 있다. 그래서 '소마가'라 표기된 경우도 있는데, 이 이름은 불교용어 마하(摩訶)를 그대로 사용한 경우에 해당한다.[2] 북사에 표기된 향년이 73이라 이때쯤이면 17~18세인데 13세로 표시된 부분이 있다. 정확한 생년이 알려진다면 수정요청.[3] 개국공임은 물론 북주에 포로로 잡힌 무제의 장남을 제치고 조카인 문제를 옹립하는데도 큰 공을 세웠으나 공적과 권세가 무거워 오만해졌다. 마침 모반 혐의로 참소된 것을 빌미로 문제4년 사사된다.[4] 580년에 양견의 전횡에 반발한 울지형의 반란때 이에 동조한 사마소난의 귀순으로 마지막 북벌 시도가 있었지만 위효관에게 저지됨.[5] 후주가 장여화에게서 낳은 4남 진심을 태자로 삼으면서 폐태자된다[6] 일설에는 후주가 소마하의 처와 NTR로 인하여 지휘할 의욕을 잃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7] 다만, 이후의 기록이 미진한 것으로 보아 명예직이었을 뿐 대장군으로서의 병권은 주어지지 않고 사실상 강제 제대한 것으로 보인다.[8] 시흥왕의 반란을 평정할 때 직접 돌격하여 시흥왕을 낙마시키고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