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25 22:39:55

서울, 1964년 겨울

1. 개요2. 작가 소개3. 요약4. 배경5. 등장인물6. 줄거리7. 주요 사건8. 특징9. 평가

1. 개요

김승옥의 단편소설. 제10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사상계1965년 6월호에 처음으로 발표되고서, 현재는 다양한 출판사에서 출판을 하고 있다. 단편소설 중에서도 고교 교육에서 잘 다뤄지는 단편 소설은 아니지만, 진도에 나가지 않더라도 심심풀이 삼아 교과서를 읽어 본 청소년들은 이 소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1] 또는 교과서가 아니더라도 작가의 대표작 무진기행이나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와 함께 실려있는 판본도 있다. 1964년 겨울 어느 날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우연히 만난 세 남자의 이야기가 수채화처럼 그려지고 있다. 한 사람의 불행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을 보여주면서, 당시의 어두운 시대상과 함께 서울의 어두웠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2. 작가 소개

김승옥은 1941년 12월 23일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자랐으며,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 1962년 소설 '생명연습'으로 데뷔했다. 1964년에 제 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8년에는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했고, 가장 최근의 수상 내역으로는 2012년에 제 57차 대한민국예술원상 문학부분에서 수상했다. '이차돈', '안개', '감자', '장군의 수염' 등의 영화 부분과 '무진기행', '서울의 달빛 0장' 등의 도서 작품도 있다. 김승옥은 1960년대 도시 소시민의 삶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받으면서, 감각적인 문체와 새로운 주제의식을 통해 소설의 신기원을 열었다.

3. 요약

육사 시험에서 미끄러지고 구청 병사계 직원으로 일하는 25세(1939~40년생)의 고졸자 '나'는 동년배의 대학원생 '안'과 포장마차에서 처음 만나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사람들은 모르는 자신만이 본 것, 자신이 남긴 행위 등을 말하며, 서울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관하여 저마다의 감상을 나눈다.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라고 말하는 안과 잘 모르겠다는 '나' 사이에 도서 외판원으로 일하는 30대의 사내가 끼어든다. 그는 아내의 시체를 카데바세브란스 병원[2]에 팔고 받은 돈[3]을 다 써버리고 싶어한다. 나와 안은 그가 달갑지 않지만 함께 식사를 하고, 여관에서 가명의 이름을 쓰고 각방에 들어가 헤어진다.[4] 다음 날 외판원 사내가 자살하자, 안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기 전에 서둘러 여관을 빠져나간다. 헤어지기 전 안은 나에게, "우린 스물다섯이지요?" 라고 묻는다.[5]

4. 배경

작품의 주인공 세 명이 살고 있는 서울을 배경으로 하였다. 가수 조용필은 그의 곡 <꿈>에서 서울을 ‘화려한 도시’이자 ‘춥고도 험난한 곳’이라고 표현했다. 1960년대에도 역시 서울은 가장 화려한 도시였지만 이면에는 춥고 험난한 모습이 있었다. 많은 부자와 가난뱅이들이 제 삶을 사느라 바쁜 도시, ‘안’이 말한 것처럼 온갖 욕망이 집결한 도시가 바로 서울이었다. 그리고 ‘겨울’은 무관심과 비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나타내는 배경이다. 즉, ‘서울, 1964년 겨울’이라는 제목은 ‘겉으로는 화려하나 한편으로는 갖은 욕망이 들끓고 있는 공간, 누구도 깊은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던 시대, 무관심과 비인간적인 사회 분위기’를 말하고 있다.

5. 등장인물

  • 나: 김씨이며[6] 시골 출신이고 고졸이며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 후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고 있다. 사내의 일과 엮이지 않기 위해 숙박계에 거짓 정보를 쓴다.
  • 안: 대학원생이자 부잣집 장남이다. ‘나’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서로 자신밖에 모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내가 자살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고, 그 다음날 아침 ‘나’에게 사내를 두고 빨리 여관에서 도망치자고 한다.
  • 사내: 월부 서적 외판원으로, 급성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세브란스병원카데바로 팔고 죄책감을 느낀다. 카데바 값으로 받은 사천 원을 중국집에서 음식을 먹고, 귤을 사 먹고, ‘안’과 ‘나’에게 넥타이를 사주는 등에 쓰고, 나머지는 화재 현장에서 불길 속에 던져버린다. 아내를 판 돈을 다 쓰고 여관 방에서 자살한다.

6. 줄거리

구청 병사계에서 일하는 말단 공무원인 ‘나’는 선술집에서 대학원생인 ‘안’과 만나 구운 참새를 먹으며 이야기를 한다. 그러던 중 ‘나’가 먼저 안에게 질문한다. “안형, 파리를 사랑합니까?” 질문에 ‘안’이 머뭇거리자 나는 “날 수 있으니까요. 아닙니다. 날 수 있는 것으로서 동시에 내 손에 붙잡힐 수 있는 것이니까요.”라고 대답했다. 나의 대답에 이어 ‘안’은 "김형, 꿈틀거리는 것을 사랑하십니까?"라고 질문했고 ‘나’는 버스에서의 이야기를 한다. “시간이 조금 가고 내 시선이 투명해지면서부터 나는 그 여자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르내린다는 건……호흡 때문에 그러는 것이겠죠?"[7] 그들은 질문에 이어 사소하지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의미 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선술집에서 일어나려 하자 한 무기력한 사내가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부탁했다. 그 사내는 '나'와 ‘안’을 중국집으로 데려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자신은 월부 서적 외판원이다, 결혼 후 아내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하지만 오늘 아내가 죽었고 그 시체를 병원에 팔았다는 것. 그리고 그 돈을 오늘 밤 동안 모두 써버릴 것이니 함께 있어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와 ‘안’은 사내에게 동의하고 그들은 중국집에서 나온다. 그 때 소방차가 지나간다. “택시! 저 소방차 뒤를 따라 갑시다” 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불구경을 하기로 의견을 합친다.

하지만 불구경에 대한 세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달랐다. ‘안’은 불구경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흥미가 없어 안이 하는 말에 성의 없이 대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사내’는 불길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환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별안간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손수건에 싸서 불길 속으로 던져버린다. 불구경 후 사내는 자신과 함께 여관에서 잘 것을 부탁한다. 그들은 여관에서 숙박계를 거짓으로 작성한 후 각자 따로 방을 잡는다. 화투라도 하자는 ‘나’의 말을 ‘안’이 거절한 후 그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 ‘안’이 ‘나’를 깨웠다. “그 양반 역시 죽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여관에서 도망친 후 서로 너무 늙어버린 것 같지 않냐는 말을 한 채로 헤어진다.

7. 주요 사건

“어떤 꿈틀거림이 아닙니다. 그냥 꿈틀거리는 거죠. 그냥 말입니다. 예를 들면...... 데모도......”
“데모가? 데모를? 그러니까 데모......”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모르겠습니다.”라고 나는 할 수 있는 한 깨끗한 음성을 지어서 대답했다.
그 때 우리의 대화는 또 끊어졌다.
사내가 나타나기 전 안이 하는 말. 이촌향도가 시작된 시기 서울에 집중되는 한국사회의 특징도 설명한다.
“평화 시장 앞에서 줄지어 선 가로등 중에서 동쪽으로부터 여덟 번째 등은 불이 켜져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가 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자 더욱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화신 백화점 육층의 창들 중에서는 그 중 세 개에서만 불빛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내가 어리둥절해질 사태가 벌어졌다. 안의 얼굴에 놀라운 기쁨이 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략)
“그건 얘기가 됩니다. 그 사실은 완전히 김 형의 소유입니다.”
우리의 말투는 점점 서로를 존중해 가고 있었다. “나는 ....“하고 우리는 동시에 말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번갈아서 서로 양보했다.
“나는..” 이번에는 그가 말할 차례였다. ”서대문 근처에서 서울역 쪽으로 가는 전차의 트롤리가 내 시야 곳에서 꼭 다섯 번 파란 불꽃을 튀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건 오늘 밤 일곱 시 십오 분에 거길 지나가는 전차였습니다.“
“안 형은 오늘 저녁엔 서대문 근처에서 살고 있었군요.”
“예 서대문 근처에서만....”
“종로 이가 쪽입니다. 영보빌딩 안에 있는 변소문의 손잡이 조금 밑에는 약 이 센티미터 가량의 손톱 자국이 있습니다.”
하하하하, 하고 그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건 김 형이 만들어 놓은 자국이겠지요?” 나는 무안했지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어떻게 아세요?”하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요.”그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별로 기분 좋은 기억이 못 되더군요. 역시 우리는 그냥 바라보고 발견하고 비밀히 간직해 두는 편이 좋겠어요. 그런 짓을 하고 나서는 뒷맛이 좋지 않더군요.”
“난 그런 짓을 많이 했습니다만 오히려 기분이 좋았.....” 좋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내가 했던 모든 그것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서 나는 말을 그치고 그의 의견에 동의하는 고갯짓을 해버렸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이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약 삼십 분 전에 들은 말이 틀림없다면 지금 내 옆에서 안경을 번쩍이고 앉아 있는 친구는 틀림없는 부잣집 아들이고 높은 공부를 한 청년이다. 그런데 왜 그가 이래야만 되는가?
“안 형이 부잣집 아들이라는 것은 사실이겠지요? 그리고 대학원 학생이라는 것도.....”내가 물었다.
“부동산만 해도 대략 삼천만 원쯤 되면 부자가 아닐까요? 물론 내 아버지 재산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대학원생이라는 건 여기 학생증이 있으니까.......” 그러면서 그는 호주머니를 뒤적거리면서 지갑을 꺼냈다.
“학생증까진 필요 없습니다. 실은 좀 의심스러운 게 있어서요. 안형 같은 사람이 추운 밤에 싸구려 선술집에 앉아서 나 같은 친구나 간직할 만한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스럽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습니다.”
그건.....그건...... 그는 좀 열띤 음성으로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김 형이 추운 밤에 밤거리를 다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습관은 아닙니다. 나같은 가난뱅이는 호주머니에 돈이 좀 생겨야 밤거리에 나올 수 있으니까요.”
“글쎄 밤거리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숙방에 들어앉아서 벽이나 쳐다보고 있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밤거리에 나오면 뭔가 좀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뭐가요?”
“그 뭔가가. 그러니까 생(生)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김 형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내 대답은 이렇습니다. 밤이 됩니다. 난 집에서 거리로 나옵니다. 난 모든 것에서 해방된 것을 느낍니다. 아니,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느낀다는 말입니다. 김 형은 그렇게 안 느낍니까?”
“글쎄요.”
“나는 사물의 틈에 끼여서가 아니라 사물을 멀리 두고 바라보게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글쎄요. 좀......”
“아니 어렵다고 말하지 마세요. 이를테면 낮엔 그저 스쳐지나가던 모든 것이 밤이 되면 내 시선 앞에서 자기들의 벌거벗은 몸을 송두리째 드러내 놓고 쩔쩔맨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없는 일일까요? 그런, 사물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는 일이 말입니다.”
“의미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난 무슨 의미가 있기 때문에 종로 이가에 있는 빌딩들의 벽돌 수를 헤아리는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그렇죠? 무의미한 겁니다. 아니 사실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난 아직 그걸 모릅니다. 김 형도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우리 한번 함께 그거나 찾아볼까요. 일부러 만들어 붙이지는 말고요.”
“좀 어리둥절하군요. 그게 안 형의 대답입니까? 난 좀 어리둥절한데요. 갑자기 의미라는 말이 나오니까.”
“아 참, 미안합니다. 내 대답은 아마 이렇게 된 것 같군요. 그냥 뭔가 뿌듯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밤거리로 나온다고.” 그는 이번엔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했다. “김 형과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같은 지점에 온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지점이 잘못된 지점이라고 해도 우리 탓은 아닐 거예요."

안은 부잣집 아들이고 대학원생인데도 생면부지의 나와 어울리고 있는 점에 의문을 품은 질문. 안은 밤에 밖으로 나와 낮과 다른 감각을 느낀다는 데에 해방감을 느낀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중략)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학생들이 해부 실습하느라고 톱으로 머리를 가르고 칼로 배를 찢고 한다는데 정말 그러겠지요?”
당시 병원이나 의과대학에서 카데바(의학용 시체)를 구하는 방법은 첫째, 기증을 받는 것이다. 의학의 발전을 위해 자신의 시체를 기부한다고 의사를 밝힌 시체를 구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무연고자 시체를 찾는 것이다. 무연고자 시체란 길거리에서 신분증 없이 변사체로 발견된 후 연고자를 찾지 못한 시체를 말한다. 합법적으로 구하는 방법이 이 정도뿐이니 시체가 부족한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화장장에서 화장하기 전에 시체를 빼돌리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짜로 시체를 화장해 준다고 홍보를 하여 시체를 가져갔다. 또는 불법적으로 시체를 사기도 했다.
“택시! 저 소방차 뒤를 따라갑시다.”
그들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불구경을 하기로 의견을 합친다. 물론 ‘불구경’에 대한 셋의 생각은 다 달랐는데, ‘안’은 불구경이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다지 흥미가 없어 ‘안’이 거는 말에 아무렇게나 대답한다. ‘사내’는 불길 속에서 아내의 모습을 보고 그런 사내에게 ‘안’은 위로가 아니라 현실적인 말을 한다. 그들은 함께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질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서로에 대한 생각과 세 사람이 바라보고 있던 것이 서로 제각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구시죠? 술 취하신 것 같은데...”
“월부 책값 받으러 온 사람입니다.”
‘사내’의 직업은 외교원이었다. 외교원(外交員)이란 영업사원, 판매사원을 말한다. ‘사내’는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나’와 ‘안’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내의 돈을 다 쓸 때 까지 함께 있기로 한 계약 관계였기 때문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월부 책값을 받으러 간 것이다. 사내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내의 시체를 판돈까지 다 써버렸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나’와 ‘안’과 함께 있기 위한 돈을 구하는 것도 실패한 사내의 절망과 슬픔은 매우 깊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내는 그 자리에서 “여보”라고 중얼거리며 울 수밖에 없었다.
“숙박계엔 거짓 이름. 거짓 주소, 거짓 나이, 거짓 직업을 쓰고 나서 사환이 가져다 놓은 자리끼를 마시고 나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는 꿈도 안 꾸고 잘 잤다.”
숙박계는 일제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들을 색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생법’의 잔재로, 범죄예방과 범인 검거를 목적으로 1980년대까지 유지되었다.
‘나’는 이 여관에서 어떠한 일이 생겼을 때를 대비하여 거짓으로 인적사항을 적은 것이다. 거짓된 인적사항을 적으면 경찰의 수사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내’를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사내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는 거짓으로 인적사항을 적음으로 책임과 부담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것이다.

세 사람은 서로 약속한 것처럼 숙박계에 거짓 인적사항을 적었다. 당시 숙박계를 거짓으로 쓰는 경우가 실제로도 많았지만, 작가가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한 것을 보면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소외감과 거리감, 진실 된 관계 맺기를 거부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방은 각자 하나씩 차지하고 자기로 하지요.”
“혼자 있기가 싫습니다.”라고 아저씨가 중얼거렸다.
“혼자 주무시는 게 편하실 거예요.”안이 말했다.
심리적으로 위태로운 사람에게는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심을 주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나와 안은 사내를 돌보지 않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고, 사내는 쓸쓸히 죽는다.

방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방은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둘 수 있는 장치, 사람들 사이의 마음을 가로막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함께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내를 외면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는 안과 나의 모습을 통해서 타인의 삶과 자신을 무관하게 여기고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김 형, 우리는 분명히 스물다섯 살짜리죠?”
“난 분명히 그렇습니다.”
“나도 그건 분명합니다.” 그는 고개를 한번 기웃했다.
“두려워집니다.” “뭐가요?”내가 물었다
“그 뭔가가, 그러니까......” 그가 한숨 같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너무 늙어 버린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린 이제 겨우 스물다섯 살입니다.” 나는 말했다.
“하여튼......” 하고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 여기서 헤어집시다. 재미 많이 보세요.” 하고 나도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마침 버스가 막 도착한 길 건너편의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서 창으로 내어다 보니 안은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고 서 있었다.

8. 특징

  •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안 형’, ‘김 형’, ‘사내’ 등으로 익명화시켰다.[8]
    • 등장인물들이 그 시대에 살아갔던 평범한 시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세 등장인물(근현대 도시인들)의 의사소통이 단절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 이름이 있다는 것은 어떠한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익명화를 통하여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박탈시켰다.

  • ‘안 형’ 은 사내의 죽음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를 결국 혼자 자게 한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산업화로 인하여 서로에게 매우 무관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갈 길만 찾기 바빴음.)
  • 비유적인 어휘를 사용하였다.
    • ‘사내’가 죽은 뒤에 여관을 나가려는 ‘나’의 발밑에 개미가 있다. 그 개미는 죽은 사내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혹은 나의 죄책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개미가 자신의 발밑에 가까이 오자 발을 다른 곳으로 디딘다. 이를 통해 ‘나’는 사내의 죽음에 관련되지 않길 바라고, 사내의 죽음에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생각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 화재 현장 앞에 걸터앉아 불구경을 하는 세 인물의 모습을 통하여 사람들이 이기적이고, 개인적임을 알 수 있다.
    • '안 형’과 ‘김 형’ 의 대화에서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대화는 어떠한 소통의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본인들이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데, 이는 대화를 통한 관계 맺기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9. 평가

김승옥 특유의 감각적인 문체와 건조한 묘사가 적절히 어우러졌다. 또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도입된 개인주의를 성찰하고, 이를 화합하지 않은 채 끝맺는 실험적인 구성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시대적 변화는 있으나 현대에도 통용되는 근대 문학의 한 표본이라고 볼 수 있다.

[1] 2025학년도 수능특강에 수록되었다.[2] 2009년 교육과정 창비 국어 II(문영진 외)에는 병원 이름이 나오지 않았으나 2020년 문학 해냄에듀 교과서에는 세브란스 병원이라고 서술되어 있다.[3] 4000원[4] 이때 ‘나’는 어떻게 해서든 동실을 하려고 설득하지만 안은 피곤하다는 둥 각방을 쓰게놔둔다.(소설 내내 안은 철저하게 제3자같은 태도를 취한다.)[5] 스물다섯의 혈기 왕성한 나이에도 세상 일에 무관심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6] 안이 김 형이라고 부른다.[7] 여자 아랫배 얘기는 내용이 고등학생들 보기에는 선정적인 부분이 있어서 교과서에서는 삭제되었다.[8] 무진기행 등에서도 조, 박 등으로 익명화가 된 인물들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