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16:40:30

사마량(후한)


사마진 추존 · 비정통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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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 추존 존령
사마량 | 司馬量
묘호 없음
시호 예장부군(豫章府君)
생몰 ? ~ ?
사마(司馬)
량(量)
공도(公度)
부친 정서부군
1. 개요2. 참고 항목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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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의 인물로 는 공도(公度), 사례 하내군(河內郡) 온현(溫縣) 사람으로 은왕 사마앙의 후손이자 후한의 정서장군(征西將軍)을 지낸 사마균의 아들, 서진을 세운 사마염의 5대조다.

생전 예장군태수(豫章郡太守)를 지냈으며, 그의 대를 지나 사마씨 가문은 무관(武官) 외에도 문사(文事)와 관련된 일을 했다고 한다.

266년, 5대손 사마염이 황제로 즉위하자 예장부군(豫章府君)으로 격상되어 위패가 칠묘에 안치되었으나 진혜제가 죽고 칠묘에서 제거되었다. 이후 동진원제가 즉위하자 다시 칠묘에 안치되었다.

2. 참고 항목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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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부군 이전[추존][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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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는 추존황제를 포함해서 자황색()으로 굵게 쓰고 팔왕은 빨갛게 쓴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종실은 갈색으로 쓴다.
※ 출계(出系)는 취소선을 치고 계자(系子)는 밑줄을 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추존] [2]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3] 친부는 의양성왕[4] 친부는 안평헌왕[5] 숙부(실제로는 종숙) 창무정후에게 출계(出系)[추존] [추존] [8] 친부는 진문제[9] 종숙(실제로는 숙부) 요동도혜왕에게 출계[10] 종숙(실제로는 숙부) 광한상왕에게 출계[추존] [12] 적장자나 두 살에 요절하여 혜제가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13] 친부는 회남충장왕[14] 여기까지 서진[15] 친부는 오효왕[16]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17] 숙부 성양애왕에게 출계[18] 친부는 사마유(동래왕)[19] 백부 진헌왕에게 출계[20] 적장자였던 비릉도왕처럼 한 살에 요절했으나 추봉(追封)되었기에 기재한다.[21]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22] 백부 진세종에게 출계.[23] 친부는 진무제[24] 친부는 제헌왕[25] 백부 성도왕에게 출계[26] 친부는 제헌왕[27] 숙부 연왕 경에게 출계[28]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를 넣는 시각도 있다.[29] 여기부터 동진[30] 친부는 진문제[31] 윤통(閏統)[32] 숙부 사마익에게 출계[33] 숙부 사마형에게 출계[34] 백부 사마랑에게 출계[35] 숙부 하비헌왕에게 출계[36] 숙부 안평왕에게 출계[37] 친부는 남궁현왕[38] 진안이 장사만 황제의 예로 올리고 시호는 왕으로 하였다.[39] 종조부 사마민에게 출계했다지만 이러면 소목에 어긋나 항렬이 꼬임[40] 종실에서 팔왕의 난에 아니 가담하고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41] 친부는 단수현후. 다만 종조부에게 출계하면 항렬이 꼬여서 친부가 법적으로 종형이 되는데 이 문제는 어찌 된 건지 몰?루[추존] [43] 아니 추존되었으나 칠묘에 동격배향(同格配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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