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3 22:55:32

노먼 헌터

잉글랜드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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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노먼 헌터
Norman Hunter
출생 1943년 10월 29일
잉글랜드 타인 위어주 게이츠헤드 에이튼뱅크스
사망 2020년 4월 17일 (향년 76세)
잉글랜드 웨스트요크셔리즈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3cm
직업 축구 선수(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선수 리즈 유나이티드 FC (1959~1962 / 유스)
리즈 유나이티드 FC (1962~1976)
브리스톨 시티 FC (1976~1979)
반슬리 FC (1979~1982)
감독 반슬리 FC (1980~1984)
로더럼 유나이티드 FC (1985~1987)
국가대표 28경기 2골 (1965~1974 / 잉글랜드)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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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축구 감독이다.

2. 클럽 경력

2.1. 리즈 유나이티드 FC

리즈에서 태어나 지역팀 리즈 유나이티드 FC에서 전성기를 보낸 로컬 유스 출신 레전드로, 1962-63 시즌에 돈 레비 감독에 의해 1군으로 콜업된 뒤 빠르게 주전 멤버로 자리잡으면서 빌리 브렘너, 잭 찰턴 등과 함께 오랜기간 리즈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14년간 무려 726경기를 뛰었다.

또한, 그는 리즈에서의 선수 커리어 동안 1부 리그 2회 우승, 2부 리그 1회 우승, FA컵 1회 우승, 풋볼 리그 컵 1회 우승 등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리는데 기여했으며, PFA 올해의 선수 초대 수상자이기도 하다.

2.2. 브리스톨 시티 FC

1975-76 시즌을 끝으로 정들었던 리즈를 떠난 뒤 1976년 10월 28일, 브리스톨 시티에 입단했다. 당시 브리스톨은 66년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한 상태였다.

입단 당시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노장이었지만 클래스는 어디 안 가는지 오자마자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면서 주전으로 발돋움했고, 1976-77 시즌과 1977-78 시즌에 2연속 브리스톨 시티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팀의 간판으로 자리를 잡았다.

브리스톨에서 있던 세 시즌 동안 총 리그 108경기를 출전했다.

2.3. 반슬리 FC

말년에 접어든 헌터는 1979년 6월 반즐리에 입단했다. 당시 반즐리는 4부 리그에서 3부 리그로 막 승격된 팀이었으며, 감독은 선수 시절 그와 리즈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앨런 클라크였다.

첫 시즌은 리그 24경기를 출전했으며, 두 번째 시즌에는 클라크가 리즈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1980년 9월 16일에 선수 겸 감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팀을 준우승으로 2부 리그에 승격시키는 좋은 지도력을 보여주었고, 다음 시즌에는 감독직에 집중하기 위해 선수 은퇴를 했으나 1982-83 시즌 중 팀이 부상 병동에 시달리면서 피치 못해 1경기를 치른 뒤 이 경기를 끝으로 확실하게 선수로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성인 대표팀 데뷔 이전 잉글랜드 U-23 대표팀에서 3경기를 치른 경력이 있었고, 리즈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자 1965년에 당시 성인 대표팀 감독이었던 알프 램지에 의해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그리고 1965년 12월 8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친선 경기를 통해 데뷔전을 가졌다.

성인 대표팀에 데뷔하기는 했지만 당시 대표팀에는 바비 무어잭 찰턴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주전 자리를 넘보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듬해 자국에서 열린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 참가하여 단 한 경기도 뛰지 못 했지만 그래도 역사상 첫 월드컵을 들어올리는 영광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후, 스페인과의 UEFA 유로 1968 예선 2차전에서 대표팀 데뷔골이자 결승골을 넣으며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본선 4강 경기와 3·4위전 모두 풀타임 선발로 출전하며 3위를 이끌었다.

그러나 2년 뒤에 열린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는 1경기 출전에 그쳤는데, 서독과의 8강전에서 교체로 39분을 출전한 경기였다. 그리고 대표팀은 서독에게 패하면서 2연속 우승 도전에 실패했다.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주전 멤버로 중용받기 시작하다가 1973년 10월 17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폴란드 서독 월드컵 지역예선 최종전에서 선발 출전을 했는데, 승리없이는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외나무다리 승부에서 헌터는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파일:NormanHuntermistake.gif파일:poland_vs_england_1973_10_goal.gif
헌터의 뼈아픈 실책과 실점 장면

0-0으로 맞서던 후반 12분, 하프라인 근처에서 잘못된 볼터치로 그제고슈 라토에게 공을 빼앗겼고, 이후 골키퍼 피터 쉴튼의 유명한 옆구리 알까기 실책까지 겹치면서 선제골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잉글랜드는 곧바로 동점골을 터트렸지만 경기 종료 때까지 야신 모드였던 상대 골키퍼 얀 토마제프스키를 뚫어내지 못 하고 1-1 무승부로 끝이 나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폴란드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치명적인 실책으로 본선 진출권을 헌납하는데 일조한 헌터는 경기가 끝난 후 많은 비판에 시달렸고, 잠시동안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다가 1974년 5월에 A매치를 앞두고 자신의 은사인 돈 레비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래로 처음 발탁되었다. 그리고 북아일랜드전과 스코틀랜드전에 출전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30일에 열린 체코슬로바키아와의 UEFA 유로 1976 예선 경기를 끝으로 더 이상 대표팀에 발탁되지 않았다.

4. 사망

2020년 4월 17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걸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